윤식당 2 영업 끝, 삶을 즐기는 가라치코를 담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8. 3. 17. 07:30
삶을 즐기는 여유를 가진 가라치코 사람들을 담은 <윤식당 2>, 그래서 더 행복했고, 즐거웠다.
<윤식당 2>가 어제 방송으로 스페인 가라치코 영업편이 끝났다. 이제 남은 에피소드는 영업을 한 가리치코에서 지내면서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다. 숨겨진 에피소드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해줄지 무척 기대된다. 분명히 영업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에피소드일 것이다.
<윤식당 2>가 두 번째 지점을 연 스페인 가리치코는 정말 작은 도시이자 낯선 도시였다. 왜냐하면, 살면서 ‘가라치코’라는 도시의 이름을 우리가 들을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에 조금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윤식당 2>가 아니었다면 절대 몰랐을 거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종종 일본을 방문해도 내가 모르는 일본 지역 이름과 도시 이름이 상당히 많다. 지난 겨울에 다녀온 일본 인턴 연수 또한 ‘모지코’라는 전혀 알지 못했던 지역을 방문했다. 이름은 알아도 나 스스로 절대 찾지 않을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도 일본 인턴 연수를 통해 갈 수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세계를 보려고 해도 우리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의 세계에 갇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내가 ‘20대라면 한 번쯤 방문해본다’고 말하는 ‘클럽’을 가지 않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고, 이때까지 한 번도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못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일은 무궁무진하다.
시간을 덧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데도 보지 못한 것과 경험하지 못한 것은 잔뜩 남아있다. 그래서 내가 미처 눈길을 두지 못하는 낯선 경험을 하는 것은 행운이자 최고로 즐거울 수도 있는 일이다. <윤식당 2>를 통해서 본 스페인 가라치코의 풍경과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는 금요일의 큰 즐거움이었다.
<윤식당 2>를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스페인 가라치코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한국처럼 답답한 잿빛 고층 빌딩이 늘어서 있지 않고, 자연을 해치지 않는 건물 사이에서 사람들이 여유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번 <윤식당 2> 가라치코 편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나는 가라치코에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그들의 사는 방식은 한국에서 ‘성공’을 좇아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는 사람들과 달리, 삶을 정말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식당 2>를 보면서 이런 부분에 눈이 흔들린 사람이 적잖을 거다.
어제 방송된 <윤식당 2 10화>에서 본 몇 가족의 식탁에서도 사는 방식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족의 식탁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일 하는 나라’라는 주제가 언급되었다. (여기서 한국이 노동 시간 1위라는 걸 알았다.) 아마도 딸인 듯한 여성은 어머니께 한국에 대해 설명하며 ‘대기업에 들어가서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하는 거지, 그것도 평생 동안....”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딸의 말을 들은 어머니는 “말도 안 돼. 정말 끔찍하다.”라며 한국의 노동 시간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라워했다. 딸이 이어서 “내가 생각하기엔 다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해. 난 그게 좀 의아했어. 왜냐하면, 난 조금 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거든.”라고 덧붙였다.
참,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순간적으로 얼마나 착잡했는지…. 이들이 말한 한국 노동의 현실은 그야말로 ‘끔찍하다.’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금요일에도 일찍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일하더라도 야근 수당과 휴일 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가고자 하고, 그 좋은 기업은 결국에는 ‘대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일하더라도 임금 격차가 없도록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다.
나는 한국이 ‘헬조선’으로 불리는 까닭은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이 심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큰 것만 아니라 삶의 질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과 삶의 질을 함께 고려해 균형을 맞추는 일이 한국에서는 잘 안 된다. 삶의 질을 화제로 꺼내면 ‘배부른 소리 하자마.’라는 핀잔이 오지 않는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비참해 깊은 한숨을 내쉴 수도 있는 한국의 현실과 너무나 대조되는 가라치코의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은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우리가 바라는 즐거운 삶이라는 건,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라는 것은 미친 듯이 일해서 미친 듯이 돈을 버는 거라고 한다면, 참, 삶이 너무나 서글프다.
우리의 이러한 현실과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였던 스페인 가라치코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한없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의 여유를 잊지 않는 상태로 ‘오늘’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을 즐기기 위해서는 “오늘 마시고 죽자!”라며 취해야 하는 한국의 풍경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본의 아니게 치열하게 삶을 살다 보면, ‘삶의 여유라는 건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걸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숨 쉴 구멍을 찾을 수 없는 한국에서는 ‘결국엔 전부 돈이다.’라는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지나친 병폐에서 답을 찾는다. 과연 그게 진짜 정답일까?
마지막 영업일에 야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한 가족의 대화에서도 “돈은 별로 안 좋은 거고, 돈은 행복을 못 가져준다고 생각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오로지 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생각을 쉽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책과 다양한 강연을 통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듣고, 우리 자신을 토닥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언저리에서 ‘결국엔 행복은 성적순이다’, ‘내가 조금 더 돈이 많으면 더 행복할 텐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나도 그렇다.)
모든 걸 결과 위주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형식적인 답을 벗어나기 어렵다. 조금이라도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쉽지 않은 각오를 해야 한다. <윤식당 2> 가라치코 편을 보면서 나는 살짝 그 답을 엿본 느낌이다. 작은 도시에서 소박하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멋진지 알 수 있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담은 <윤식당 2>. 힐링 예능이라고 말하기보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느낌이다. 사람들이 한식을 먹기 위해 오가는 모습과 ‘윤식당’을 통해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배우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고, 그들의 여유 있는 모습에 어깨의 힘이 풀렸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한국에서 돈과 성공에 목을 매는 삶이 아니라 가라치코에서 본 사람들처럼 ‘오늘’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조금 못 벌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만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삶. ‘루저’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나는 내가 추구하는 철학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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