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서태수를 통해 본 가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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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의 서태수를 통해 가장의 아픔을 엿보다


 인기 주말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연이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황금빛 내인 생>은 부잣집과 서민집이 얽히는 그저 그런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의 다양한 등장인물을 폭넓게 다루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제각각의 갈등과 화해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지안과 서태수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지난 일요일에 방영된 <황금빛 내 인생 28화>에서 서태수의 독백 장면이 무척 가슴 깊이 들어왔다. 서태수가 한강벤치에서 홀로 소주병을 들고 한탄의 목소리를 내는 장면은 ‘실패한 사업가’가 아니라 ‘가장’의 모습이었다.


 가장. 국어사전 의미로 ‘가장’이라는 단어는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오래전에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가장’이라는 단어는 남편만 아니라 한 가정에서 경제적 역할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가장은 예전보다 더욱 힘들고, 더욱 외로워졌다.


 가장으로 살아가는 일은 짊어진 책임은 막중하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언제나 가정을 위해서 묵묵히 일해야 하고, 하다못해 최소한 ‘좋은 부모’ 혹은 ‘좋은 자식’이라는 이름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항상 평범한 수준, 혹은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가장으로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경기는 계속해서 악화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에서 실패하지 않고 가까스로 버티기 위해서 고된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가정 내에서 기대가 크면 클수록 회의감에 빠져 괴로움에 빠질 때가 잦다.



 <황금빛 내 인생 28화>에서 신세를 한탄한 서태수가 딱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때는 잘 나가는 사업가에서 사업 실패로 무너져 내렸지만, 그는 가정을 위해서 막노동까지 하며 최선을 다하며 노력했다. 하지만 가족 중에 그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그는 아내와 아이에게 외면을 받아야 했다.


 서태수가 한강을 앞에 두고 홀로 토로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다. 비록 나는 아직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홀로 나와 동생을 키우다시피 한 어머니의 모습이 서태수의 모습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아마 함께 드라마를 본 어머니도 그랬지 않았을까?



 우리 집은 사실 다른 집과 비교하면 정상적인 가정은 아니다. 우리 집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가정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어머니는 제대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못난 아버지 탓에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생하셨다. 별거를 선택해 시간이 흘렀어도 후유증이 적지 않다.


 어디에서 혼자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모르는 그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조금만 더 아버지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여자와 도박에 빠지지 않고, 일에 최소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면, 우리 집은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잘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어릴 때부터 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로 인해 주변의 편견을 견뎌야 했고, 홀로 사업을 하시면서 종종 행패를 부리는 아버지를 견디며 힘겹게 나와 동생을 책임지셨다. 어머니의 일을 곁에서 종종 도왔기 때문에 나는 그 고통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한 가정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가장은 괴로운 법이다. 괴로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어서 더욱 괴로운 법이다. 때때로 자식이 욱한 감정에 쏟아내는 말에 깊이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내색하지 못한 채, 홀로 아픔을 꿀꺽 삼켜야만 한다. 그렇기에 결혼하지 않는다는 말이 오늘날 흔해진 게 아닐까?


 드라마 속 서태수의 자식인 서지태, 서지안, 서지호 세 사람의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종종 “넌 여자친구 안 사귀냐?”라고 어머니가 물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나는 이런 환경을 내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라고 답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나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애초에 나는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고, 내가 나부터 사랑할 자신이 없다.)


 아마 많은 젊은 세대가 비슷할지도 모른다. 연애는 할 수 있어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연애와 전혀 다른 일이다. 더욱이 시대는 나아가 연애조차 짊어지기 어려워지고 있다. 치열한 스펙 경쟁 속에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결과는 애정과 평가의 기준이 되어 더욱 감정은 메마르고 있다.


 오늘날 종종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데이트 폭력도 나는 여기서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이트 폭력은 단순히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짊어져야 하는 무게의 부담감과 어릴 때 느끼지 못한 애정에 대한 욕심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타난 사회의 병든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 서태수와 자신의 체면과 경제적 여유를 원한 양미정,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많은 선택지를 포기해야 했던 서지태, 서지안, 서지호의 모습은 무심코 우리 사회의 모습과 겹쳐보게 한다. 오늘 당신은 이 등장인물들 중에서 누구로 살아가고 있는가?


 <황금빛 내 인생 28화>에서 본 서태수의 모습은 오늘날 앓는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묵묵히 추운 겨울 월요일 아침에 무거운 발걸음으로 길을 나서는 수많은 가장의 모습이지 않을까. 부디, 오늘도 자신을 위해서,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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