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 그는 유쾌한 천재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7. 11. 25. 07:30
오늘 당신에게 속 시원한 웃음이 필요하다면, 유병재 블랙코미디가 정답이다.
내가 작가, 아니, 코미디언 ‘유병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JTBC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당시 <말하는 대로>에서 시국 버스킹을 하는 유병재의 모습을 보면서 ‘와,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지?’라며 적잖은 감탄을 했었다. 그의 개그는 소위 말해 ‘뼈’가 있었다.
이번에 그의 책 <유병재 농담집 블랙 코미디>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살짝 김이 빠지는 부분도 있었다. 왜냐하면, <유병재 농담집 블랙 코미디>는 시집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적은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한 페이지에 글이 절반 이상 찬 페이지가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무슨 책을 장난으로 냈나?”라며 실망감도 적잖았는데, 책을 펼쳐서 읽은 여는 글에서 이미 빵 터지며 어떤 글을 적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각 장의 제목만 보면서 상상을 하기보다 일단 먼저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했는데, ‘변비’라는 단어로 쓴 딱 두 개의 문장에서 완전 무장 해제가 됐다.
변비
똥이 안 나온다.
난 이제 잘 하는 게 하나도 없다.
<유병재 농담집 블랙 코미디>는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읽으면 웃음이 나왔다. 또 다른 부분에선 뜻밖의 의미가 담긴 글에 공감하여 웃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말하는 대로>를 통해 본 모습과 유튜브에 공유된 스탠드 업 코미디 영상을 통해 본 모습이 그대로 책으로 옮겨진 듯했다.
책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읽으면서 그가 들려주는 코미디 아닌 코미디에 쉴새 없이 웃으며 페이지를 넘겼다. ‘블랙 코미디’ 장에서는 마냥 웃겼다고 말하기보다 살짝 ‘웃프다.’고 말할 수 있는 개그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유쾌하게 글을 적을 수 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인상에 남은 글 몇 가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잃으면
대개 명예와 건강도 잃는다. (본문 32)
빈손
빈손이 가장 행복하다고
많이 버릴수록 행복해진다고
부자들만 말하더라.
많이 버리려면 많이 갖고 있어야지. (본문 54)
통장
걱정, 근심, 게으름, 시기, 질투, 나태, 친일파, 자격지심, 악성댓글, 독재자, 뻔뻔함, 교만, 식탐, 성욕, 의심, 위선, 이기심, 군부세력, 불평등, 폭력, 성범죄자, 혐오, 피해의식, 적폐, 질투, 차별, 꼰대, 자기 혐오를 내 통장에 넣어두고 싶다. 거기는 뭐 넣기만 하면 씨팔 다 없어지던데. (본문 59)
윗글은 모두 제1장 블랙코미디에서 읽은 글이다. 글을 하나씩 읽으면서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윗글들에 끌린 이유는 역시 요즘 내가 처한 상황에서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20대는 돈이 없는 시기인 데다가 왠지 모르게 꼬인 시선을 갖게 되니까. (웃음)
얼마 전에 나는 처음으로 대출이라는 것을 받았다. 은행에서 없는 돈을 빌린 게 아니라 꼬박꼬박 연금 적금을 넣고 있던 보험에서 600만 원을 대출했다. 어머니가 급히 거래대금을 위해서 500만 원이 필요했고, 나도 마지막 대학 등록금 분할 납부 금액을 낼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하고 말았다.
한번 마이너스가 되면 플러스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대출을 하지 않고자 했지만, 역시 사람의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었다. 요즘 내가 처한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유독 ‘돈’과 관련된 블랙 코미디에 눈이 갔던 건 아닐까? 참, 사는 게 쉽지 않다. 아하하.
이렇게 블랙코미디 장르만 아니라 다른 장에서도 인상적인 문장을 몇 가지 만났다. 그중 대표적인 문장은 정치인 성추행과 관련된 논란에서 나온 “딸 같아서 만졌다.”라는 말에 유병재가 덧붙인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라는 글이다. 정말 이 글을 읽으면서 미친 듯이 웃었다.
어쩌면 이렇게 속 시원하게 상대방을 디스하면서 글을 읽는 사람도 불편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매번 글을 쓰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해 답답함을 자주 느낀다. 어제 블로그에 발행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도 굉장히 답답해하면서 글을 썼다. 분명히 머릿속에 그려진 이야기가 있었는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또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괴감도 들었다.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는 속이 답답할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정말 글 하나, 문장 하나에 빵빵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고, 어떤 글에서는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긴 한숨을 내쉴 수도 있다. 책이라는 것은 이렇게 독자와 공감할 수 있으면 ‘좋은 책’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거면 된 거다. (웃음)
오늘 기분전환을 위한 책 읽기가 필요하다면, <유병재 농담집 블랙코미디>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장면에서는 잊고 지낸 사건을 떠올리며 “C팔!” 욕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장면에서는 나를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이 궁금하다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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