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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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들의 세계에 들어간 '병'의 초밀착 관찰기


 우리나라 소설은 일본 소설과 다르게 제법 무거운 소재를 다룰 때가 많다. 이번에 읽은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라는 이름의 소설도 그렇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생계 문제로 대한민국 상류층이 모인다고 하는 사우나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보고 들은 이야기다.


 처음 이 소설을 읽게 된 이유는 제목에 들어간 'JTBC' 때문이다. 아마 나와 같은 20대는 대체로 그렇겠지만, JTBC 채널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채널로 여기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태블릿 사건을 최초로 터트렸고, 다른 언론이 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홀로 진실을 추적한 언론이었다.


 덕분에 JTBC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되었고, JTBC 사장이자 뉴스룸의 메인 앵커인 손석희의 지지도는 뜨겁게 올랐다. 하지만 자칭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JTBC를 곱게 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극우 매체는 JTBC 보도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언론은 좌파라면 JTBC를 보고, 우파라면 MBC와 TV조선을 보는 그림이 그려졌다.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의 제목은 바로 이런 모습을 담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가지 책을 구매하면서 함께 구매했고,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처음부터 딱 느낌이 오는 소설이었다.


 겨우 11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에서 주인공은 이런 혼잣말을 한다.


'나는 젊다. 그건 살면서 한 번쯤 뒤통수를 맞아도 웃어넘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열정의 힘이다.'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순박했다. 지금의 나라면 마지막 단락을 이렇게 바꿨을 거다.

'나는 아직 젊다. 그건 이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털어 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게 그들이 지닌 열정의 힘이다.' (본문 11)


 소설 속 주인공 태권은 '젊음, 이 시대가 만든 사회적 절름발이의 오타 아닌가?'라는 말까지 하는 그를 통해서 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았다. 기성세대는 젊음은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젊음을 가진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에 의견에 동의하지 못한다.


 청년 세대는 끊임없이 인턴 돌리기를 당하면서 취업을 위해서 고생하고, 저명한 대학을 나오더라도 계약직을 전전하다 노량진으로 돌아와 공무원 시험공부가 아닌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렵다. '나는 아직 젊다. 그건 이 사회에서 누군가 나를 털어 갈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라는 말이 딱 알맞았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진 주인공 태권이 헬라홀이라고 부르는 사우나에서 일하면서 보고 들을 이야기는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대한민국 상위권이라고 말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 인물들을 대하는 팀장과 동료의 이야기가 주요 소재인데, 인상적인 부분이 제법 있었다.


 태권에게 사우나에서 주의할 점을 가르쳐주는 팀장은 "우와, 여기서 우리는 완전 을이네."라고 말하며 얼굴을 찌푸리는 태권에게 "무슨 소리! 우리는 여기서 을이 아닙니다. 그냥 병이에요. 자, 찌푸리지 말고 얼른 스마일."라고 말한다. 참, 이 장면을 보면서 서비스업에서 겪는 을과 병의 고초가 느껴졌다.


 나는 을과 병의 입장에 놓이는 아르바이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종종 어머니를 도와 납품을 가면 을의 입장에서 갑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경우가 있었다. 어떤 기업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서로 돕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어떤 기업은 고작 겨우 1~2단계 위임에도 엄청 뻔뻔하게 갑질을 했었다.


 당시, 나는 어머니의 거래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몰상식한 태도에 무심코 화를 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 날을 떠올리면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그때,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은 커다란 기업의 회장만 아니라 상대방보다 조금이나마 위라는 자만에 취한 옹졸한 사람이 더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소설 족 주인공이 사우나에서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우나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헬라홀에서 개인 물품이 아니라 공유 물품을 악착같이 사용하고, 노년이 되어 어기적어기적하면서도 힘껏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곳에서 없는 사람처럼 일하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미 겉은 추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부정이라도 하기 위해서 헬라홀을 찾아 흠을 지적하고, 태권과 같은 사람을 종종 함부로 대하는 곳은 사람이 버티기 어렵다. 헬라홀 사우나의 팀장이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법은 참 웃픈 방법이었다.


팀장은 창고방에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는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감추었다.

"아니, 뭘 보고 있는데 얼굴이 빨개져서 그러세요?"

"아니, 개..... 영상입니다."

"개처럼 하는 거요?"

"아니, 아니. 애완견 영상."

팀장은 부끄러운 듯 스마트폰을 보여주었다.

화면 속에서 치와와 한 마리가 주인이 준 간식을 잽싸게 받아먹고 있었다.

"태권 씨도 보세요.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난 여기서 일하면서 사람에 질렸어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마음을 다스립니다." (본문 142)


 소설 속의 한 장면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장면을 읽으면서 고양이와 개 영상에 환호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셜 미디어 채널을 운영하는 기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가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의 모습이라고 할 정도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반려동물은 버티기 위한 필수 요소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영상을 통해 본 반려묘와 반려견을 무심코 기르게 되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죄책감 없이 유기해버린다. 사람이 질려버린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의존하려고 하지만, 반려동물에 질려버리는 일도 한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흐름의 반복은 사람을 허무하게 한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에서 읽은 팀장의 이야기는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에서는 또 한 가지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사우나 매니저 태권의 후임으로 들어온 영수가 사우나와 족발집에서 투잡을 하다 오토바이 사고가 난 장면이다.


당연히 헬라홀은 영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영수 또한 복직하는 대신 그가 배달 일을 하는 족발집에 산재 신청을 했다. 하지만 족발집 사장은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영수의 사고가 헬라홀과 족발집 사이의 도로에서 일어났으니 족발집에서 처리해줄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어느 날엔가 헬라홀로 영수의 전화가 걸려왔다. 영수는 자신의 상황이 억울한지 한참을 떠들었다.

"나 어떻게든 산재 처리 받을 거야. 악착같이. 내가 헬라홀 남자들한테 배운 게 그거야. 악착같이 챙기는 거."

하지만 영수가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이지 악착같이 챙겨야 하는 권리가 아니었다. 그게 좀 슬펐다. 당연한 권리를 위해 악착같이 굴어야만 한다는 현실이. 겉으로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잇속을 챙기려고 뒤에서 악착같이 구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본문 182)


 한국 사회에서 산재 처리를 인정받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도 우체국 배달 기사가 사고가 났지만, 우체국에서 실시하는 무사고 프로젝트를 위해서 산재 처리를 해주지 않은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더욱이 우체국은 배달 기사에게 출근할 것을 종용하면서 기어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해버렸다.


 기사가 자살하고 언론에서 집중포화가 떨어지자 우체국은 빠르게 산재 서류를 유가족에게 내밀었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악착같이 챙기지 않으면 보답 받을 수 없는 사회를 과연 정상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프랜차이즈 빵집은 제빵사를 불법 파견 형태로 고용하며 악착같이 챙기는 데 말이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에서 영수의 장면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다. 지금도 우리 노동 시장에서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을 주지 않는 악덕 업주에게 악착같이 저항하여 최저임금을 받아내는 청년이 있고,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악착같이 싸우는 노동자들이 비일비재하다.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는 한물간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갑질이 아니다. 자칭 타칭 상위 1%라고 말하는 그들이 사우나에서 알몸으로 보내는 모습을 통해 '누구나 벗으면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겉치레가 아닌 감춰진 속내를 보여준다.


 주인공 태권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통해서 하는 생각을 따라 읽으면서 냉소적인 현실을 본 듯한 느낌이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마지막에 이르면 태권이 헬라홀이 떠나던 날과 우연히 겹쳐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된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 장면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날 헬라홀의 노인들은 내내 침통한 표정으로 로커룸과 목욕탕을 돌아다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거운 먹구름이 헬라홀에 잔뜩 껴 있었다. 그들은 아랫것인 국민들의 항의에 중간관리자인 국회의원들이 표결로 1퍼센트의 권력자를 밀어내는 현실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세상이 바뀐 거니까. 더군다나 헬라홀의 노인들은 스스로를 평범한 국민보다 대통령에 가까운 특별한 존재로 착각하고 있으니까.

그날 일꼬 회원님은 옷을 갈아입다 말고 한숨을 내쉬며 내게 말을 붙였다.

"나라 꼬라지가 이게 뭐냐! 이게 말이 돼? 어떻게 강남 아줌마가 나라를 뒤흔들어?"

"회원님도 선거 때는 탄핵당한 대통령을 뽑지 않으셨어요?"

"당연하지. 나는 보수니까. 하지만 보수가 왜 보수인지 알아? 썩은 것들을 재빠르게 도려내는 게 보수라고. 여기서 보수가 망할 순 없어. 안 그래? 도려내버리면..... 그럼 된 거 아냐?"

나는 이왕 떠나는 마당에 한마디 하기로 했다.

"뭐, 도려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잖아요. 그러다 다 도려내는 거 아니에요? 결국 아무것도 안 남고."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헝클어진 옷가지를 접었다.

"하, 소설가가 참 뭘 모르게. 보수가 사라지진 않아요. 사람들은 원래 보수를 좋아해. 나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면 좋은 게 보수야. 물론 남이 잘되는 건 배 아픈 게 보수지만. 그리고 꼴 보기 싫은 것들 그냥 다 쓸어버리는 게 보수고. 그게 보수야. 얼마나 깔끔해. 나는 부자 되고, 보기 싫은 놈들은 다 싹 쓸어서 환경미화하고. 겉보기에 점잖고 폼 나고. 당연히 사람 마음은 원래부터 다 보수에 끌리는 거지. 그럼, 된 거 아냐?" (본문 238)


 실제로 대한민국의 한물간 상류들이 주로 드나드는 피트니스 남자 사우나의 사우나 매니저로 잠시 일한 경험으로 소설을 쓴 덕분인지, 이 장면에서 확실히 자칭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본 듯했다. 지금도 한물간 상류층이나 상류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똑같을 것이다.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을 방해하기 위해서 안팎으로 부지런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종북 좌파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제는 정치판에 다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꺼내 들면서 양심과 협치 없는 옹졸한 이기주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서서히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저지른 정치 개입과 언론 장악 시도는 그들에게 큰 불안감을 퍼뜨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들은 JTBC를 외면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해주는 미디어워치 같은 매체를 선호할지도 모른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소설 같은 게 오늘 우리 한국의 현주소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을 읽으면서 여전히 JTBC 뉴스룸을 보지 않고, 찌라시 극우 언론을 접하며 마치 드라마 <구해줘>에서 볼 수 있었던 사이비에 현혹된 사람들이 벌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를 외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한국 사회와 정치는 어떻게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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