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강을 맞이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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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생이라는 이름의 죄인입니다. 당신은 왜 대학에 다니시나요?


 내일(9월 1일)이면 내가 다니는 대학교의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강이 시작한다. 2학기 개강을 맞아 열심히 시간표를 구상하며 조금 여유 있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시간표를 짜고자 했지만, 들어야 하는 수업과 듣고 싶은 수업을 함께 짜 맞추다 보니 2학기 시간표는 무척 힘든 시간표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억지로 학교에서 더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틈만 나면 나는 책을 붙잡고 책을 읽지만, 집에서는 학교에서 한 수업 내용 예습은커녕 복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라는 건 평소 해두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걸 알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서울의 명문대에 가지 못하고, 남들이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다니고 있는 거다. 비록 내가 다니는 대학교가 서울의 이름 있는 명문대가 아니라고 해도 딱히 상관없다. 나는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 100% 만족은 하지 못해도 70% 이상은 만족하고 있다. 우리 학교도 제법 괜찮은 학교다.


 다만 개강을 앞두고 걱정인 것은 대학 등록금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1년에 천만 원에 이르는 서울 명문대와 비교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서울대와 부산대 같은 국립대학교와 반값 등록금이 실천된 서울 시립대와 비교하면 비싼 편이다. 더욱이 가난해도 소득분위가 어중간하면 더욱 부담이다.



 얼마 전에 광주에서 한 모녀가 바다에서 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있었다. 그 모녀는 대학 등록금 납부를 앞두고 도저히 등록금을 마련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과 별거하면서 경제적 원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어도 이혼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외계층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에 혀를 차면서도 남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쑤셨다. 우리 집 또한 부모님이 별거 중 이시지만, 따로 사는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력에 가깝다. 종종 집에 날라오는 것은 아버지가 사고를 쳐서 내야 하는 벌금 통지서뿐이라 정말 이를 갈 정도로 화가 났던 적이 있다.


 그 탓에 나는 이번에 뉴스를 통해서 접한 광주 모녀의 비극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는 이 소식을 들은 이후 꽤 긴 시간 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이라는 곳은 노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홀로 지금 나와 동생을 위해 애쓰시고 계시고, 가끔 도와드리는 게 나의 전부였다.


 지금 나는 절대 대학을 편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입장에 있다. 예전에는 블로그 광고 수익을 통해 등록금 절반 이상을 냈지만, 지금은 그 일이 불가능해서 등록금의 70%에 가까운 금액을 어머니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막말로 지금 이 상황에서 대학 생활에 불만을 가지면 나는 그냥 후레자식이다.



 나는 이 사실을 무척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남들처럼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거나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때가 되면 어떻게 될 거라며 버티는 상태다.


 추락 사고로 발목에 장애가 생겨 장시간 노동이 불가능한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더욱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글을 쓰는 일이 전부라 결과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공모전에 응모하더라도 입상을 하기보다 현실의 높은 벽에 부딪히며 늘 깊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절대 비관적으로 생각만 하지는 않는다. 이 사고방식이 남들에게 철이 없거나 아직도 세상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내가 사는 방식의 고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지금, 당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지만,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탈출하지 못한 남겨진 죄인으로 탈출을 꿈꾸고 있다. 대학을 통해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결론은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어머니가 목이 쉴 정도로 말씀하시는 행정 고시 공부를 하는 일이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포기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대학 개강을 코앞에 눈 상태에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보았다. 당장 눈앞에 마주한 대학 등록금을 홀로 다 부담하지 못하는 나는 죄인이다. 어머니의 도움에 기대면서도 어머니가 주장하는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죗값을 갚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잘 사는 수밖에 없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대학 개강을 준비하면서 마음이 무겁다. 웃으며 지내고 싶어도 그 웃음에는 항상 무거운 현실이 따라온다. 아마 많은 대학생이 나와 같은 처지이지 않을까? 아직 나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리에서 헤매고 있어서 당당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지금 여기서 멈춰버리는 순간, 우리의 삶은 거기서 끝나버린다는 거다. 스탠퍼드대의 기업가 정신을 읽을 수 있는 책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변했을 것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을 택하거나 남과 다른 방식을 시도해볼 때, 세상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의문을 품을 때 흥미로운 결과, 뛰어난 성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안전한 길에 머무는 것이 물론 더 쉽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바꿔보면, 우리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는 놀라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놀라운 기회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형태로 찾아온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 가한 제약이라는 뚜껑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잠재력을 믿을 때에만 기회가 온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기대치만 충족시키는 것을 뛰어넘어야 하고, 당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따라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면서 대학에 다녀야 하는 걸까? 무작정 취업만 바라고 대학을 다니기에 우리가 대학에 가기 위해 희생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우리를 위해 쓰인 부모님의 시간은 너무나 무겁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록 부모님과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내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일'이지 않을까?


 대학 개강을 앞두고 짧게 대학에 다니는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대학생이라면, 꼭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왜 대학에 다니고 있는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대학을 다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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