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회복제가 일상인 한국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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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오늘도 피로회복제로 하루를 시작해 피로회복제로 마무리한다.


 얼마 전에 TV 광고로 어느 회사의 피로 회복제가 한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라고 홍보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면서 광고에 등장한 제품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보다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피로회복제를 꾸준히 섭취한 게 더욱 놀라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중학교 시절부터 피로 회복제를 먹은 것 같다. 아직 팔팔한 10대 녀석이 무슨 피로 회복제를 먹느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당시 시험공부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잠에서 깨어 지낸 시간이 길었다. 체력적으로 늘 피곤한 상태에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피로 회복제를 먹었다.


 지금도 TV 광고를 통해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고, 늦게까지 공부하는 자녀를 위해 부모가 홍삼 성분이 들어간 건강식을 챙겨주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홍삼을 통해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냥 이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피로회복제 종류에 해당하는 제품이다.


 우리 한국 사회는 이미 어릴 때부터 피로 회복제를 섭취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피로 회복제와 멀리할 수 없는 삶을 산다. 이러한 현상을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 한국 사회가 피로회복제 없이 버틸 수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유럽처럼 여가를 갖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잔업에 시달리면서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하고, 심지어 휴일마저 반납하면서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연차를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면 큰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이니 할 말이 없다.


 피로 불감증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시작은 과거 경제개발 때부터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들은 노동법 수업에서 전태일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실제 상황이라고 말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고, 먹고 살기 위해서 회사가 강제로 놓는 각성제까지 맞으며 일했다.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법을 준수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직장인들의 야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 있고, 심지어 직장에 취직하지 않은 학생들도 야자라는 이름의 야근을 한다.


 '나만 아니라 모두가 공부하고, 모두가 일한다'는 그 가치관을 한국 사회는 쉽게 버리지 못한다. 여전히 '내가 잠잘 때도 적의 책은 넘어가고 있다'는 말이 통용되는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어른이 되어 달라질 수 있을까? 과도한 노동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피로불감증에 시달리며 일하는 동안 사람들은 휴식도 일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휴가 기간 때마다 어디를 가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여름 휴가면 남들처럼 계곡이나 바다는 가봐야 하고, 긴 추석 연휴가 되면 남들처럼 해외여행은 한 번 갔다 와야 한다.


 그렇게 빡센 휴가 일정을 소화하고, 마지막 날에 집으로 돌아와 "역시 집이 최고다!"라면서 뒤늦은 잠을 청한다. 당연히 다음 날에 시작하는 평범한 일상에서 활기를 띨 수 있을 리가 없다. 휴가 동안 재충전을 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에너지를 단기간에 소비하여 지친 상태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다시 또 피로회복제를 찾고, 함께 피로회복제를 나눠 마시면서 "야, 이제는 쉬는 것도 힘들어서 못 쉬겠다."라고 말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휴가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휴식을 위한 시간이 또 다른 이름의 일을 위한 시간이 된 건 아닐까?


 워낙 쉬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회는 쉴 수 있는 날에 쉬는 일조차 일(Work)이 되어버렸다. 휴식을 취하는 일도 똑바로 쉬어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법이다. 마치 직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10대 시절에 수능만 바라보고 공부한 것처럼 해서 보내는 게 휴식이 아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8월 15일 광복절이었던 어제, 어머니는 집에서 좀 쉬고 싶다고 하시더니 또 산악회에서 참석하는 행사에 가셨다. 매번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와 "아이고, 디 죽겠다. 집이 최고다."라고 말씀하시면서 항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신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참,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국의 많은 성인이 너무 안타깝다. 누구에게나 공통으로 주어지는 휴일에 제대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하니, 늘 피로회복제를 먹으면서 살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피로회복제가 없어지는 건 죽음이 아닐까?


 오래전에 본 어느 TV 광고에서는 야근할 사람을 정할 때 박카스를 돌리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피로회복제를 하나 마시면서 야근을 해야 하는 당연한 습관. 우리가 진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당연한 습관으로 여겨지는 일에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회사에서 지나친 잔업과 야근을 하다 자살한 사건이 벌어지자 일본 사회 전체가 야근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앞장 서고 있다. 덕분에 일본은 사람들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뚜렷한 경기 회복을 해나가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질이 높아져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잘못된 관습을 여전히 당연하게 여기고, '내가 했으니 너도 해야 한다'라거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당면한 최저임금 만 원 문제 또한 비슷한 취지의 문제다.


 과연 한국은 피로회복제 없이 잘 쉬고, 잘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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