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정치인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알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7. 5. 27. 14:45
28살의 나는 비로소 노무현을 바로 알게 되었다
오늘 토요일 오전 10시 45분 영화관에서 <노무현입니다>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나오면서 꼭 보겠다는 의무감은 없었지만, 토요일 아침에 문득 그 영화를 보러 가고 싶었다. 일주일 간의 피로로 눈이 늦게 떠진 토요일 아침,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하다가 김해 CGV 상영 시간표를 검색해보았다.
때마침 오전 10시 45분에 영화 스케줄이 있어 아침에 영화를 보고 오기로 했다. 다른 시간대에는 늦은 오후라 밖에 나가기가 조금 꺼려졌고,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밖으로 나가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찰을 최대한 피하면서 이 영화만큼은 온전히 여유를 가지고 보고 싶었다.
영화관의 상영관으로 들어갔을 때는 몇 사람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우리가 좋아하는 액션 판타지 영화가 아닌 다큐 영화이기에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약 20명 남짓 사람이 채워졌을까?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스크린 영상에 내가 모르는 노무현이 비쳤다.
비록 90년에 태어났지만, 내가 '깨어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산 시간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내가 모르는 정치와 사회의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보면서 바보 노무현의 시작점을 알게 되었다. 나와 큰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고, 어느덧 뺨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2001년과 2002년을 비추기 시작했다. 당시 중학생으로서 중2병을 겪으면서 나 나름대로 세상과 치열하게 살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사회 과목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작은 관심을 두기 시작했지만, 나는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었다. 대선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이 중요했고, 혼자서 하는 게임이 중요했고,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녀석들을 남몰래 욕하는 게 중요했다. 그 당시의 나는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문학 시간 작문을 통해 우리 사회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한낱 아이에 불과했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나는 2002년 당시 치열하게 치러진 새천년민주당의 경선 과정을 보았다. 지금 '피닉제'라는 별명이 붙은 이인제가 어떤 인물인지 살짝 엿볼 수 있었고,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에서 아직도 이겨내지 못한 '빨갱이다.'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구정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노무현이 살았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노무현 주변 사람이 기억하는 노무현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번 대선에서도 경쟁력을 보여줬던 안희정 지사, 작가로서 활약하는 유시민 작가,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까지.
사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울 이유는 없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노무현을 알고 싶었기에 영화를 보았을 뿐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어떤 접점이 없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 철없는 학생에 불과했다. 그 이후 성인이 되어 첫 선거권을 가졌을 때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이명박을 찍은 어린 성인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입니다>를 보는 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지지율 5%에서 시작하여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는 과정까지의 치열함, 한때는 배신당했다며 대통령을 욕했던 열정적이었던 노사모들, 그 어떤 무엇 하나 나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가슴이 너무나 뜨거워졌다. 너무 이상했다.
영화를 통해서 그동안 지나가는 기사로 접한 "그렇다고 이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정의, 언론을 장악하지 않으면서도 언론에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강한 신념의 현장을 보았다. 나는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 뿐인 노무현을 <노무현입니다>를 통해 보았고, 진짜 보아야 했던 걸 본 느낌이었다.
<노무현입니다>는 그 치열한 과정을 보여주면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서 취임식을 하고,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들고 천천히 이동하는 퍼레이드를 보여주면서 암전된다. 그 암전 이후 우리가 본 것은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이후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나는 내가 나름 깨어있는 시민이자, 선구적인 의식을 지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는 걸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냥 어린놈이었다.
분명히 나는 20살 때도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와 여러 사회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내가 겪은 학교폭력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우리 사회가 교육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보기를 바랐고, 교육이 똑바로 되어야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갓 20살이었던 나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우리 정치가 지금 어떤 상황이고, 우리 시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어떤 인물인지. <노무현입니다>는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이 아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짓누르는 슬픔과 무게감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뒤늦게 온 노무현의 시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잘난 체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늘날 우리 시민은 시민의 힘이 모여 구정치의 대표적 사례인 인물과 국정 농단의 주범을 물리쳤지만, 여전히 그 기반은 악성 종양처럼 뿌리내리고 있다.
지금도 어떤 공영 방송 출신 아나운서는 빨갱이 운운하며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 좋은 대학을 나와서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지?'라는 의심을 하게 하고, 503번 재판 법정 앞에서 여전히 태극기를 흔들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집단이 있다. 아직 우리 한국 사회는 바로 잡아야 할 과제가 그만큼 놓여있는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다. 그런 부분조차 끌어안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오늘 청와대에 입성한 노무현의 자랑스러운 친구 문재인 대통령은 다 이루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꿈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과정을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확신한다.
<노무현입니다>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 그때와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끝까지 함께 한다.'는 의미의 중요성을 알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오늘 평범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이번에는 끝까지 제대로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다.
그것이 오늘 한국 시민으로서 의무이자,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20대 청년으로서 가져야 할 철학이자, 앞으로 자식 세대를 위해 지킬 수 있는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율 5%에서 시작해 다시 시민의 품속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은 <노무현입니다>. 지금 그가 없지만, 그가 살아 숨 쉬는 시대를 살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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