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떨어지는 벚꽃잎을 닮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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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자가 읽고 싶은 책 1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그녀와 나는 벚꽃 휘날리는 4월에 만났다


 이른 새벽 아침부터 봄비인지 여름비인지 알 수 없는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날, 아주 희한한 이름이 붙은 소설 한 권을 읽었다. 2016년 일본 서점 대상 2위의 작품이자 독서미터에서 조사한 결과 '일본 독자가 읽고 싶은 책' 분야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소설이었다.


 당초 대학 중간고사가 아니었다면 좀 더 이 작품을 일찍 읽었겠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지금 책을 읽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끝난 이후 다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와 잘 나오지 못한 성적, 하고 싶은 글쓰기, 읽고 싶은 책을 마주하는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책의 제목부터 묘한 흥미를 가지게 된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한 상태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서서히 알게 되는 책의 분위기는 비 내리는 하늘처럼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고, 책의 주인공인 너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가 눈앞에 그려졌다.


 책을 읽기 전에 주변에서 '정말 감동적인 작품이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이 책은 단순히 감동적인 작품이다'는 말로 감상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심지어 책을 읽은 이후에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느닷없는 장례식 장면에서 시작해 그 장례식의 주인공인 소녀와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은 주인공 소년.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접점이 '같은 반 클래스메이트'라는 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인공 소년은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고, 주인공 소녀는 타인에게 사랑을 받았다.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은 어디까지 순전히 우연이었다. 병원에서 우연히 의장에 남겨진 '공병문고'라는 이름이 붙은 일기장을 소년이 읽은 것.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년에게는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라는 수식어가 붙고, 일기장의 주인인 소녀 사쿠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두 사람이 연인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친구라고 말하기에 조금 애매한 관게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처한 상황에 대해 무심한 듯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 소년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로 불리기도 하고, 이윽고 후반에 이르러서는 XX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독특한 점은 책의 마지막에 이를 때까지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에서 '소설가의 이름을 합친 것 같아.'는 힌트는 나오지만, 그 답을 알아 맞추지는 못했다. (심지어 나는 현재 대학 수업에서 '일본 문학의 이해'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게 이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클래스메이트를 향해 뻔하게 이름이 아니라 다른 말로 그를 부르며 그의 존재감이 달라지는 걸 느끼고, 소녀를 향해 이름이 아니라 '너로 부르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서툰 모습이 그려져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한다.


단 한 가지, 어제부터 마음속에 잠복해있던 의문이 그녀의 의지에 촉발되어 불쑥 떠올랐기 때문에 그것만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기, 너 말이야."

"응, 뭔데?"

"정말 죽어?"

그녀의 표정이 일순 사라졌다. 그 표정만으로도 이런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았을 걸,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후회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의 표정은 다시 평소처럼 눈이 핑글핑글 돌게 변화했다.

처음에는 웃음, 그다음에는 난간함, 쓴웃음, 화남, 슬픔, 그리고 다시 난감한 얼굴로 돌아왔다가 마지막에는 내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응, 죽어."

".....아, 그렇구나."

그녀는 평소보다 눈을 더 많이 깜빡거리며 웃음이 깊어졌다.

"죽어. 벌써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요새는 의학이 발전해서 증세가 거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남은 수명도 길어졌어. 하지만 틀림없이 죽어. 앞으로 일 년을 버틸지 말지 모른다는 선고를 들었어."

딱히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똑똑히 내 고막에 와 박혔다.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너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너는 분명 나한테 진실과 일상을 부여해줄 단 한 사람일 거야. 의사 선생님은 내게 진실밖에는 주지 않아. 가족은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과잉반응하면서 일상을 보상해주는 데 필사적이지. 너만은 진실을 알면서도 나와 일상을 함께해주니까 나는 너하고 지내는 게 재미있어." (본문 79)


 윗글은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가 소녀의 병을 알게 된 이후의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눈 대화다. 이 대화를 잠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너의 췌장이 먹고 싶어>의 주인공 두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 상상해볼 수 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밝은 웃음을 짓는 소녀와 덤덤히 그녀의 곁에 있는 소년.


 서로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거나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봄의 끝자락을 맞아 떨어지는 벚꽃잎 같았다. '초속 5cm'로 떨어지는 벚꽃잎은 그 일순의 순간에도 아름다움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그러한 벚꽃잎 같았다.


 아마 나처럼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작품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벚꽃잎이 떨어지는 4월에 만나 밝은 얼굴의 소녀와 그 소녀의 영향을 받아 사랑을 알아가는 이야기. 바로, 많은 사람을 울게 했던 <4월은 너의 거짓말>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으면서 분위기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장면이 놀랍도록 닮았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아주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며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OP23 연주를 통해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돌연히 이별이 찾아와 무척 당황케 했다.


 여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책을 펼쳐서 읽은 첫 장면부터 이를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쇼팽의 발라드 G단조 op23 마지막 장에서 격렬히 건반이 요동치는 순간, 맥없이 피아노의 선이 끊어진 것 같은 결말을.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단순한 감성 소설, 연애 소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사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와 타인의 관계를 떠올려보고, 주인공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깊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정말 오랜만에 내면의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할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는 수요일(26일)은 비가 그친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여전히 비구름을 머뭄고 있다. 소설을 읽은 이후에도 여전히 어지러운 감정으로 뒤섞인 마음을 하늘이 대신 표현한 것 같다. 여기에 음악만 있으면 딱!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주인공만큼이나 현실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다. 내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타인 또한 나에게 불필요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추구하는 현실 속 인간관계는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고수한다. 딱 그 정도가 나라는 인간에게 맞는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나와 닮았다고 생각한 주인공이 사쿠라를 만나 바뀌어가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타인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 그 끝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에 도달한 이 이야기를 4월 말에 만날 수 있어 행운이었다.



 아직 이 책과 우연한 만남이 없었다면, 오늘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책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가오는 5월의 황금연휴를 맞아서도, 가깝게 오는 주말을 맞아서도 분명히 멋진 선택이 될 것이다. 정말, 다시 한번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 말을 남기면서 아래의 글을 남기고 싶다. 언젠가 나 또한 주인공 소년과 같은 우연으로 누군가를 만나 허한 공백을 메울 수 있기를 바란다. 살짝. 아주 살짝.


"산다는 것은……."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그런가.

나는 그걸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존재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시선이며 목소리, 그녀의 의지의 열기, 생명의 진동이 되어 내 영혼을 뒤흔드는 것 같았다.

"누군가를 인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싫어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다, 누군가와 함께 있음녀 짜증난다,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 누군가를 껴안는다, 누군가와 스쳐 지나간다.... 그게 산다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누군가는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하면 즐거운데 누군가와 함께하면 짜증난다고 생각하는 나, 그런 사람들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산다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잇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있기 때문이고, 내 몸이 있는 것은 다른 모두가 잡아주기 때문이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나는 지금 살아있어. 아직 이곳에 살아있어. 그래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본문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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