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문화의 전당 홈리스의 도시 기획 전시, 집과 삶
- 문화/문화와 방송
- 2017. 3. 13. 07:30
김해 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 '홈리스의 도시' 전시회 개최, 집과 삶을 논하다
우리에게 집이란 주거 생활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의미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오늘의 고단한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집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여유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갖는 일이 너무나 어려워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전세금과 부동산 가격은 내 집 마련을 머나만 꿈으로 만들었고, 집이라고 할 수 없는 집이 생기게 했다.
대학 개강을 맞아 작은 원룸을 구하는 대학생들의 사연은 너무나 뼈 아팠다. 한 원룸 건물에서는 좁은 건물을 타닥타닥 분리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변기와 부엌을 한곳에 놓은 일도 있었다. 이미 집이라고 말하기에 너무나 열악한 그 환경은 우리 사회가 헬조선으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주는 듯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부동산 업자는 '그래도 없어서 못 판다.'고 말할 정도로 벼랑 끝에 몰리는 대학생이 많다는 점이다. 집은 아무리 좁더라도 내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편안함이 있는 휴식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집은 그저 웅크린 채 잠만 잘 수 있으면 다행이라는 곳이 돼버린 것 같다.
끔찍한 공간, ⓒSBS 아침 뉴스
우리는 이렇게 집이 있더라도 너무나 열악한 곳에 살고, 집이 없거나 옥외 또는 여인숙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그리고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을 UN에서는 홈리스라고 말한다. 즉, 집이 있다고 해도 홈리스(homeless) 개념에 속할 수도 있다.
지난 3월 7일부터 김해 문화의 전당에서는 '홈리스의 도시'라는 특별 전시가 윤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홈리스의 도시'는 공간적 의미로서 집을 생각해보고, 심리적 의미로서 집을 생각해보는 전시였다. 입장료부터 신선한 '자율입장제도'를 통해 1,000원 이상의 입장료를 자율적으로 받았다.
상당히 신선한 기분으로 입장한 '홈리스의 도시' 전시회는 집의 의미와 함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조형물을 전시하거나 사진만 전시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전하는 독특한 전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꽤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중 내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 느낌을 받은 이야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한 빌딩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 또 하나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쥐 족'으로 불리면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집이 있는 홈리스는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위 사진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다. 솔직히 카라카스가 어디에 있는 도시인지 몰라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베네수엘라(사실 이 나라도 잘 몰랐다. WBC에서 만난 것 외에는)의 도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 나라의 수도는 밤이 되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멋진 야경을 만드는 건물과 함께 그 건물에 가려진 짙은 그늘이 지는 건물이 함께 하기 마련이다. 이번 '홈리스의 도시'전에서 본 카라카스의 한 빌딩은 수도에 위치했지만, 버려진 상태에서 범죄자들의 소굴이 되었다가 이주민들의 터전이 된 곳이었다.
지어지다 만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조금씩 만들고,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직접 물건을 옮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만으로 보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상을 통해 더욱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절대 행복해 보일 것 같지 않은 공간에서 그래도 그 사람들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조금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그들이 있는 곳은 그들의 집이었고, 두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에서 삶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영상이 틀어진 곳 앞에 서서 그들이 품은 새로운 꿈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여기서 소개할 수 없는 점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에서 해당 작품 작가의 이름인 'TORRE DAVIDE'와 'a 45 - story office tower in Caracas'를 검색해보았더니 여러 영상과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더 궁금한 점은 구글 검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길 바란다!
위 사진과 영상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쥐 족'으로 불리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하방에서 사는 그들은 하늘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위 영상의 주인공은 "미치지 않는 한 베이징에 오지 말라. 여기 오는 건 벌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자신이 사는 모습을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근데 집에 가고 싶진 않아요. 성공하지 않는 한, 집에 가지 않을 거예요."라며 끝까지 이곳에서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주관과 목표가 없는 이상 도저히 살아가는 일이 버티기 어려운 곳에서 사는 모습은 차마 내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삶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기에.
나는 베이징에서 쥐 족으로 불리는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한국의 서울을 떠올렸다. 서울에는 이미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10%도 안 되는 땅덩어리에 50%의 사람이 모여 있으니 부동산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공간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글의 제일 앞에서 언급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는 주거 환경이 생겨난 것이다. 같은 도시에서 누군가는 뛰어다닐 정도의 큰 공간에서, 누군가는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조차 지킬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간다. 어쩌면 집은 불행과 행복을 모두 보여주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김해 문화의 전당 윤슬미술관에서 본 '홈리스의 도시'는 단순히 우리가 사는 공간으로서 집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어느 곳에서 살아가는지 생각해볼 수 있게 했다. 대학에서 듣는 한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지금 당장 뭘 갖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넓은 집"이라고 답했었다.
우리가 내 집을 원하는 이유는 내 생활의 안정만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열악한 집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쥐 족처럼, 서울의 그늘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2017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증명한 것처럼, 어둠 속에 사는 옅은 빛을 지닌 사람들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커다란 욕심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곳에서 우리는 모두 살아가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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