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족 40만 시대,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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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믿을 건 9급 공무원 뿐인 헬조선


 최근 나라가 어지럽다 보니 종종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 친구 몇 명과 연락을 주고받게 된다. 오래전에 연락했던 한 명은 제 아버지의 학원에서 선생님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고, 우연히 버스에서 만났던 친구 한 명은 공무원이 되어서 해운대에서 잘살고 있고, 다른 한 명도 공무원이 되어 진주에서 근무를 한다.


 참, 주변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우리가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부모님이 조금 돈이 되는 사업을 하면 그 사업을 물려받고,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일식집)을 하기 위해서 대학에서 뛰쳐나온 친구도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직 대학생이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대학에 늦게 복학하는 바람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다니고 있지만, 나는 공무원이 된다거나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나는 내가 어떻게 살지 고민하며 글을 쓰는 일을 택했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순위 중 1위가 공무원이고, 2위가 건물주라고 한다. 그와 달리 먹고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은 장래희망이 되지 못한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많은 걱정을 하고 있고, 종종 어머니와 공무원 시험을 치내마내 하며 티격태격한다.


 한국에서 공무원 시험은 낯선 타인의 일이 아니다. 서울 노량진에는 재수하는 학생과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으로 넘쳐난다고 한다. 특히 지방에서도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각 학교에서도 공무원 시험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장학금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오늘 읽은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책의 제목부터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잠시 어릴 적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정말 어렸을 적에 지금처럼 공무원 하나를 꿈꾸는, 건물주가 되어서 꿈 없이 사는 것을 꿈꾸지 않았다. 우리는 호기심이 넘쳤고, 모두 해보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넘치던 호기심과 의욕, 내 꿈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전에 본 <한끼줍쇼>에서 만난 한 청년은 "청춘은 포기하는 과정이다."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가슴이 아렸을 것이다.


 우리 청춘은 그렇게 하나둘 포기를 알아가며 슬픈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월 150만 원 일자리를 통해서 먹고 사는 일이 쉽지 않더라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면 되고, 힘든 일을 하다가 불평을 하면 "아니꼬우면 공무원 시험이나 쳐!"라는 소리에 살길을 찾아 노량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우리의 그런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 같은 소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눈앞이 깜깜하게 막힌 듯한 기분이 든다. 지금 책을 읽는 나도 등장인물과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책이 전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적나라했다.


'돈'이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학점 좀 관리하고 영어점수 높다고 해서 50만 원 내고 '기업에 따른 적합한 자기소개서 작성법을 첨삭받은 자보다 '뛰어난' 글을 쓰긴 어렵다. 운 좋게 서류전형에 합격해도 취업전문학원에 100만 원을 지불하고 '압박 면접' 예행 연습을 한 경쟁자를 이기긴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돈과 시간의 문제요, 고로 아무리 효심이 지극하다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부모 '탓'을 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이런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원망하지 않았을' 부모님이지만 시대는 완전히 변했다. (본문 47)


 윗글을 읽으면서 나는 지금 한창 논란이 되는 최순실의 자녀 정유라가 떠올았다. 과거 정유라는 부모의 재력도 능력이라면서 부모를 탓하라는 식의 글을 SNS에 올린 사실이 밝혀져 사람들에게 커다란 비판을 받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해 하지만, 어쩌면 한 편으로 인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 서글픈 일이다. 우리는 그래도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을 꿈꾸고자 하고, 부정한 방법으로 사회 속의 각종 혜택을 누리는 사람의 조사를 요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실제로도 우리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한국 사회는 불만을 표현하는 일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대책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금방 이념 논쟁이 붙는다. 이념 논쟁이 붙는다는 건 토론이라도 짧게 한다는 뜻이지만, 오히려 말 한마디 쉽게 꺼낼 수 없는 냉랭한 분위기가 될 때가 많다. 그리고 거기서 답은 하나로 모인다.


"그렇게 불평불만이 많으면 직접 정치해서 바꿔. 아니면, 대기업을 가든, 공무원이 되던가."


 그렇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많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신입생들은 그래도 자신은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점차 대학에서 주변의 선후배 모습을 보며 초조해지기 시작해 토익 공부를 하고, 취업과 공무원 요강을 살핀다.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이 되는 일은 탈출구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기 위한 탈출구가 아니라 지옥 밑바닥에서 지옥의 위로 올라가기 위한 탈출구다. 갑과 을로 나누어지는 세상 속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지 않기 위해서 9급 공무원에 달려드는 것이다.


ⓒ명경만리


 해운대에서 9급 공무원을 하는 친구는 일하면서 7급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 어머니께서는 "너도 얼른 해라. 너라면 행정고시 합격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공무원 하기 싫다. 공무원하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못하는데!"라며 반항하는데, 스물일곱을 먹고도 나는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일까?


 인간의 가치를 훼손 받지 않기 위해서 이런 한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 내가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내 삶을 포기하면 희박한 확률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공무원의 삶을 위해서 우리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다. 때때로 '이것밖에 못 해줘?'라며 싸우기도 하고, 서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는 그러한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한층 더 나아가서 우리가 고민하고, 마주해야 할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쉽지 않다.'는 말을 조용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고민을 멈추지 않는 것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는 이 땅의 20대로 살아가는 한 명의 청춘이자, 아직 어머니의 뜻과 대립하는 철없는 한 명의 청춘으로서 헬조선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답이 최선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자 아직은 발버둥 치고 있다. 모두 이 헬조선에서 살아남기를 응원한다.


 더 나는 삶을 꿈꾸는 블로거 노지를 응원하는 방법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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