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매점에서 권력에 물드는 법을 배웠다
- 일상/사는 이야기
- 2016. 11. 8. 07:30
어렸을 적 학교 매점에는 권력의 횡포가 있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시절, 쉬는 시간이 되면 항상 매점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아침을 거르고 온 학생들이 맛있는 빵을 선점하기 위해서 달려드는 그곳은 마치 생존을 벌이는 전장과 같았다. 내가 남중·남고 출신이기 때문에 공학이나 여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학교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모두가 잠시 쉬는 시간 혹은 사람이 붐비는 점심시간에 매점을 뚫기 위해서 몸싸움을 하는 장면은 대단히 놀랍다. 마치 학생들은 이 짧은 시간을 위해서 학교에 오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수업시간에는 쉽게 볼 수 있는 초롱초롱한 눈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웃기지만, 그게 현실이다.
매번 전쟁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 명씩 줄을 서서 차례대로 가는 게 제일 빠를 텐데.'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그림이 그려지는 일은 좀처럼 쉽게 볼 수가 없다. '멍청하게 줄을 왜 서? 내가 먼저 사면 장땡이지.'이라는 일종의 이기적인 모습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흡사 무한경쟁에 가까운 이곳 매점에서 그런 모습이 무너질 때가 있다. 최고 학년인 3학년 중 힘이 좀 있는 인물이 나타나 경상도의 시원스러운 욕설과 함께 "줄 서! 새끼들아."라는 말 한마디면 모두 얼음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 인물에게 모두 불평을 쏟아내지 못하고, 한 줄로 줄을 서게 된다.
웃긴 일은 그렇게 당당히 나타나 고함을 친 3학년이 제일 먼저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물품을 매점에서 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는 점이다. 한순간 절대적인 권력에 가까운 힘을 행사하는 인물의 등장으로 학교 매점 앞은 질서가 생겼지만, 금방 또 무너지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당한 권력에 순응하는 법과 그 권력이 미치지 않을 때 일탈하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저학년일 때는 속으로 그런 상급생을 욕한 적도 있지만, 상급생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과 그런 짓을 벌인 적도 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다.
학교라는 건물은 단순히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집약체로서 학교에서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배우게 된다. 선량한 미풍양속에 준거하여 사람의 도리와 가치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학교는 성적에 연연하느라 사람에 있어 중요한 것을 뒤로 미룰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학교 폭력은 치밀하고, 아주 악랄하게 이루어진다. 매번 전장이 벌어지는 매점은 그나마 모두가 공평하게 겨룰 수 있는 장소일지도 모르지만, 때때로 그곳에도 '권력'이라는 지위가 등장하여 공평한 경쟁을 막어버린다. 기회를 분배하는 게 아닌, 오직 자신을 위해서!
지금은 떠올려야만 볼 수 있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지만, 매점에서 본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모두가 공평하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때 누군가는 새치기하고, 그 사람을 막아서려고 하면 '나는 이런 사람이야!'이라며 감히 대들지 말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내보인다.
우리는 속으로 '이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부당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저런 일은 없어야 돼!' 하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비슷한 입장이 되면 저도 모르게 같은 일을 벌인다. 잘못을 수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되풀이는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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