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언어 성희롱 사건, 인간성은 성적이 아님을 보여주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6. 6. 15. 07:00
고대 카톡 단체방 여학생 성희롱 사건은 처참한 오늘의 현실
대학가에서 성(姓) 문제와 관련해서 논란이 일어나는 일은 솔직히 드문 일이 아니다. 매해 초마다 신입생들이 처음으로 대학에 발을 내딛는 OT 현장에서 비슷한 사건이 입방아에 오르고, MT 현장에서는 술과 성(姓) 문제가 포함되지 않으면 'MT'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학가는 좀 번잡하다.
애초에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성 문제를 겪는 청소년들이 많지만, 외부 어른들에게 말하는 일이 어려워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일이 대부분이다. 특히 조금 더 자유롭게 문이 열리는 대학가에서는 이런 문제가 너무 쉽게 발생한다. 당당하게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음주와 엮여 피해가 늘어나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일을 하거나 즐긴다면 모르지만, 그렇게 저질스러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강압 때문에 사건에 얽히면 얼마나 괴로울지 우리는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학가의 학생들은 자유라고 말하지만, 자유가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때가 있어 큰 문제가 된다.
이번에 터진 고려대 일부 남학생이 단체 채팅방을 통해 여학생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먹었니, 안 먹었니 혹은 작업을 할 거니 말 거니 하는 이야기는 딱 그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고려대가 어떤 곳인가, 한국에서 SKY 대학 중 하나로 불리면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가는 명문대학교로 꼽힌다.
그런데 그 대학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은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인간의 됨됨이가 좋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말하는 평가 기준은 이미 틀렸다는 사실이 여러 사건을 통해 속속 증명되고 있다. 과연 이래도 인간성보다 공부 성적이 먼저일까?
나는 이번 고려대 카톡 단체방 언어 성폭력 사건은 인간성보다 성적을 먼저 챙긴 우리 교육이 만든 처참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없고, 오로지 외부적인 요인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태도는 절대 올바른 인간성을 지니기 어렵게 한다. 성적을 좋더라도 인성은 엉망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발생했던 외국인 근로자에게 440만 원 치의 밀린 임금을 동전으로 지급한 사건이 그 사례 중 하나다. 근로자에게 동전으로 밀린 임금을 지급한 사장은 '괘씸해서' 그렇게 주었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괘씸해서 그렇게 줄 수밖에 없었던 걸까?
아래에서 손석희 아나운서가 지난 화요일(13일)에 한 앵커브리핑 중 한 장면을 읽어보자.
괘씸하다.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식당 사장이 아르바이트생 혹은 배달원에게 품은 괘씸하다는 그 마음. 나보다 조금 약하다고 혹은 우습다고 여겨지는 사회적 약자가 감히 나에게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그 까닭없는 역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중략)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고기 안 사줘도 좋으니 우린 급여를 달라고 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괘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 또한 차별을 당연하게 여겨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줬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챙기지 못하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모습으로 비치는 이런 사건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씁쓸하게 한다. 사람은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사람일 수가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사이에서 어른들의 이기심과 차별에 상처를 받고, 이미 편견이 뿌리깊게 박히는 우리 사회의 오늘 모습에서 어쩌면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해주는 모습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고대 남학생들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세간의 비판을 받는 고려대 남학생들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자신과 똑같은 사람으로 본 것이 아니라 그저 희롱의 대상으로 보았다. 차마 입으로 옮기는 일이 민망스러운 언어 폭행을 일삼은 명문대학교 학생들. 그들이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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