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다름이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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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단지 다를 뿐, 높고 낮음이 없다.


 한국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아마 내일까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이상적인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임원보다 많은 돈을 벌지 못하고, 스스로 창업하여 사업가가 되어 자기 일을 하는 것보다 보람이 없더라도 일단 무조건 공무원은 최고의 직업이다.


 지금 공무원 시험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왜 공무원이 되고 싶으세요?'이라는 질문을 한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어릴 때부터 어떤 모습에 감명받아 공무원이 되려고 한 사람은 아주 적지 않을까 싶다. 절대 공무원을 꿈으로 하는 것을 나무라는 건 아니다. 생각해보자는 거다.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첫 공판에서 검사가 뭔가를 질문하자 그녀는 대답 대신 "여기 계신 판검사님들은 정의감 때문에 사법고시를 보신 건가요, 아니면 그냥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고 부모님이 원하니까 판검사가 되기로 하신 건가요?"라고 물었다. 결국 법정모독죄로 감치 명령 7일을 받았고, 그 결과 검찰과 법원만 꼴이 우스워졌다.

불쌍한 담당 검사와 판사는 아무 잘못도 없이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됐다. 두 번째 공판부터는 와이두유리브닷컴 회원들이 방청석에서 조직적으로 세화를 옹호하거나 검사를 야유하는 발언을 해 법원 경위에게 붙들려 쫓겨나기도 했다.

(p327, 표백)


 과연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목적으로 하려는 걸까? 부모님이 원하니까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걸까,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싶지 않아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공무원을 하는 것이 먹고 살기 편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서 그런 걸까?


 솔직히 나는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는 어떤 일에 성취를 느끼기보다 위와 같은 이유가 많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어머니 친구분의 자제가 고등학생인데도 공무원 시험 합격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모습이 당연하게 그려지는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계급 제도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사실 계급은 여전히 남아있다. 직업으로 공무원을 하려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다운 대접이 빠질 수가 없다. 우리가 평범한 직장인이 되거나 조금 허드렛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면,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차별 속에서 상처를 입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jtbc 뉴스


 며칠 전에 20살이 막 되려던 한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 작업을 하다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청년의 공구 가방에는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해 시간이 날 때 먹으려고 했던 컵라면과 수저와 각종 공구가 들어있었다. 그의 유품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업체 측은 '보고를 하지 않은 청년의 과실'이라고 말하며 책임을 오히려 피해자에게 씌우고 있다. 이런 주장을 몇 언론을 통해 보도하는 모습은 <나쁜 뉴스의 나라>에서 읽었던 대로 프레임을 다시 짜면서 논쟁의 쟁점을 바꾸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다. 힘없는 사람은 이렇게 철저하게 무너진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가 사망한 사건은 이번 한 건이 아니다. 과거에도 발생했었고, 그때마다 문제점을 개선하겠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하지만 겉으로 열심히 꾸며서 보여주는 모습과 달리 안에서는 여전히 문제가 고쳐지지 않았고, 이번에도 같은 실수로 또 한 명이 슬프게 눈을 감았다.


 이렇게 직업과 위치에 따라 사람이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번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가 울면서 말씀한 "책임감이 강하고, 지시를 잘 따르면 그 사람에게 남는 것은 개죽음뿐입니다."이라는 말이 너무 아프다. 과연 우리 중에서 누가 이 말을 부정할 수 있을까?


부모님 직업 차별, ⓒjtbc 뉴스룸

 올해 초에는 뉴스 보도를 통해서 부모님 직업 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갖은 고민을 한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어떤 부모님의 직업은 어떤 기업의 고위직에서 일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건설업체에 다니면서 건설 일을 할 수 있다. 그저 다를 뿐인데, 여기서 아이들 간의 차별이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누구의 아빠는 어디에 있고, 아이들에게 비싼 밥을 사줬다고 하더라'면서 아이가 그 모습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 괴로워할 수가 있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면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차별을 먼저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은 점차 편견으로 자리 잡아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김제동의 톡투유> 버스 편에서 송길영 부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직업은 다 다른 거지, 높고 낮은 게 없는데. 왜 우리는 거기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인지. 그뿐만 아니라, 애들한테 부모가 없을 수도 있는데 부모의 직업을 물어보는 야만적인 행정 형태도 화가 나가요. 요즘은 그런 모습이 줄었는데…."


 과연 우리는 이러한 형태의 교육과 가치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모두 저마다 착하게 살려고 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가슴에 있는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다름을 인정할 줄 알고, 서로 존중할 줄 아는 사회는 공무원과 건물주가 선호도 1위인 우리에게 요원한 과제인 것 같다.


ⓒ직썰 만화


 오래전에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을 보고 어떤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너도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말한 사건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를 낸 사람도 있겠지만, 솔직히 자신도 한 번은 그런 말을 듣거나 한 적이 있어 불편하지 않았을까?


 저 장면에서 만화 또한 조금 구설에 올랐었다.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가리켜 "너 공부해서 저런 분들도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야 해."라고 말하는 대사를 넣어 또 하나의 차별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만화는 네티즌에 의해 "어떻게 하라고 했지?"라고 아이에게 물어보고, 아이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어떤 높낮이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람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직업의 높고 낮음을 나누고, 갖은 다른 요소를 차별하면서 편견과 갈등을 초래하는 일은 절대 옳지 못하다. 차별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권장되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인간성을 제대로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정말 밤낮 가리지 않고, 그런 차별을 조장하는 말을 학교와 가정 내에서 자주 들었다. 학교에서 '공부 못하면 너희들은 다 공장 가야 해.'라는 말은 일상다반사였고,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시절에는 '성적이 오르면, 배우자의 얼굴이 바뀐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비상식적인 반 교훈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그 시절에 그러한 형태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차별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당연한 일로 여겼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서 미천한 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 개인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더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한 개인의 노력을 탓하기에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지 못했다. 경제 수준은 급격하게 상승했지만, 한 사람의 노동 가치에 대한 임금과 소득 수준은 상승하지 못했다. 10%도 되지 않는 대기업이 한 나라의 80% 이상을 삼키고 있어 불평등이 심각하다.


 이런 사회에서 혐오주의가 고개를 드는 일은 당연한 수순이고, 소득 수준과 대우의 차별에 따라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일은 당연한 현상이다. 요즘 아이들의 꿈이 되어버린 건물주는 가진 자본의 양에 따라 차별을 받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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