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 존중하지만 아쉬워

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에 반대하지만, 그래도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싶다.


 새벽에 배가 갑자기 아파서 눈을 떴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잠시 누운 채로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니 더민주당이 필리버스터 중단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든 생각은 '드디어 여당이 꼬리를 내렸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읽어보니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다.


 더민주당의 지도부가 이대로 계속 필리버스터를 이어 가게 된다면, 슬슬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중단한다고 했다. 선거구가 확정된 상태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끌어도 소수당으로 무리가 있고,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판세가 기울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확실히 4월 13일 총선을 불과 42일 앞둔 시점에서 그런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을 이용한 여론 선동만이 아니라 더민주당 내에서도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볼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 판단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오히려 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압력과 당내에서 올라오는 '총선은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에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는 일은 결국 '정치'가 아니라 '정치공학'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정말 눈부셨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다. 과거 독재 시절에 학생 운동을 하다 당했던 아픔을 토해내기도 했고, 그동안 정부가 눈가리개를 씌워서 시민들에게 말한 거짓 정보를 철저하게 지적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환호를 끌어내기도 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외신에서도 무너져 가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으로 보도되었고, 국회 방송은 20배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현장에서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과정을 보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그야말로 옅어지던 민주주의가 생명을 되찾는 듯했다.


 필리버스터를 하기 위해서 국회의 단상 위에 선 국회의원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왜 이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는가?'는 이유부터 시작해서 기성 언론이 권력과 유착 관계를 맺고 보여주지 않은 대 테러방지법의 실태를 보여주었다. 시민들은 이제야 야당이 야당 역할을 한다면서 많은 칭찬을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필리버스터 중단을 하기로 한다는 발언이 나오자 누구나 당황했을 것이다. 슬슬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야당 스스로 먼저 꼬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절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이 모습이 더 역풍을 맞이할 수 있는 모습이다.


필리버스터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민들, ⓒ오마이뉴스 남소연


 임시 국회회기가 끝나는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게 되면, 선거구 확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데에 책임을 여당과 청와대는 야당에게 돌릴 수 있다. 아마 김종인 대표를 비롯한 당내 지도부 몇 사람은 그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컷오프로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이 시점에서 일반적 여론을 신경 쓰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3월 10일까지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여당에 부담감을 주기를 기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칫 이번 야당의 결정은 '결국은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게 해, 시민들이 다시 정치에서 등을 돌리게 할지도 모른다.


 우리와 정치 구조가 조금 다르지만, 벨기에에서는 정당 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512일 동안 무정부 상태에 놓였던 적이 있었다. 무정부 상태에서도 벨기에는 문제없이 사회 각 분야가 돌아갔는데, 오히려 벨기에 시민들은 "싸우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지 않으니 속 시원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사례를 참고하여 총선이 조금 연기될 수 있더라도 좀 더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면 어땠을까. 수정안을 여당이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니, 그것을 원인으로 말하며 야당은 자신들에게 쏟아질 책임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는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설마 먼저 중단 결정을 발표할 줄이야.


결국은 새누리당 의도대로?, ⓒ오마이뉴스 남소연


 현재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보는 시민들의 의견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잘했다.'는 의견과 '아쉽다. 갈 수 있는 곳까지 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의견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지는 사람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아쉬운 입장인데, 당신은 어떤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해서 가결된 대 테러방지법의 영역을 축소하는 보안법을 발의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는 여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반대할 수도 있다. 경우의 수와 확률적 정치의 수는 여전히 복잡하다. 걸어야 할 때와 죽어야 할 때가 있다. 지금 야당은 죽는 걸 선택했다.


 야당의 이 선택은 그동안 시민들이 보여준 필리버스터에 대한 지지가 정치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총선 승리를 통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이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당 지도부는 절대 필리버스터에 보여준 관심과 지지가 총선에서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하면 안 된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게 바로 사람의 마음이고, 정치가 흘러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여당보다 먼저 꼬리를 내린 야당을 해석하는 수구 언론들의 비판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겠는가. 조금 더 버텼다면, 공천 갈등이 강해질 여지가 있는 여당 스스로 한 수 물러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참 아쉽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국정교과서처럼, 대 테러방지법이 언제 우리들의 등을 찌르는 칼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칼은 언제나 등 뒤에 있다.'는 <나쁜 녀석들>이라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부디 이번 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 결정이 등 뒤의 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야당의 필리버스터 중단에 반대하고 싶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내린 결정이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필리버스터에 보여준 많은 시민의 관심이 4월 총선까지 식지 않고, 수구 언론의 선동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일 것이다.


 그동안 이어진 필리버스터를 위해서 밤을 지새우고, 오랫동안 겪은 아픔을 이야기하며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시민의 권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한 정치인과 보좌관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내고 싶다. 그들 덕분에 많은 시민이 눈과 귀를 국회로 돌리며 진짜 정치가 무엇인지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이 모습이 한순간의 일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정치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20대가 바라보는 국회의 모습이 2월에 보여준 이런 모습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사는 시민이고, 우리가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시민의 권리가 국가의 의무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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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2016.03.01 12:45 신고

    출구를 찾긴 찾았는데,
    그 출구를 나오니 절벽이네요. 외통수예요. 야당이 외통수에 걸려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어쩔 수가 없다 해도 삼일절에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은 아니네요.
    적어도 오늘만은 피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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