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죽음이 다가오는 나이에 써 내려간 감칠맛 나는 일기

 마지막으로 일기를 적었던 때가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 시절에 작은 다이어리에 '오늘도 필요 없는 과목에서 필요 없는 수업을 들었다. 왜 이렇게 우리는 필요 없는 과정을 들어야 하는 걸까?' 식의 회의적인 글을 적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일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종종 내가 겪는 일 중 일부를 항상 글로 남겼었다. 일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냥 작은 기록으로 분류하더라도 오류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블로그에도 과거에 올린 글을 찾아보면 그런 기록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숨고 싶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아무렇지 않게 썼던 그 시기가 어쩌면 순수하게 글을 적는 것을 즐겼던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블로그에 글을 적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전만큼 순수하게 글을 적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일종의 의무감을 가지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을 간략히 소개하고, 내가 본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의 이야기를 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혹은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 있다가 우연히 들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멍청한 정치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지금 내가 적는 글이다.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

 이렇게 글을 적는 나에게 '프로의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있을지도….'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프로처럼 멋진 글을 적어서 팔리는 글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쓴 글을 좀 더 많은 분야에 노출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만날 기회를 찾고, 경험을 글로 옮기고 싶을 뿐이니까.

 그래서 종종 내 글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글이 되기도 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이 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자!!!'는 원칙 하나는 분명하게 지키고 있다. 아무리 원고료를 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마음에 드는 소재가 아닌 이상, 나는 절대 그 글을 블로그에 적지 않는다.

 프로 작가는 아니지만, 매일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가지고 있는 어쭙잖은 자존심이다. 아마 이런 자존심이 있기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도 종종 포털 메인에 걸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때때로 욕을 먹으면서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대단한 일이 아닌가?

 오늘 갑자기 내가 '글쓰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에 인터넷 서점 블로그에서 서평단을 모집했던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이라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제목이 이끌려서 신청했지만, 운 좋게 읽게 된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상당히 마음에 든 책이었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노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의 저자 찰스 부카우스키는 당대 미국의 가장 저명한 시인이자 산문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읽는 책의 범위는 언제나 내가 눈이 가는 범위 내였기에 그 밖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평단 활동이 좋은 이유가 이렇게 내가 알지 못하는 작가와 작품을 만나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만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서평단 활동을 눈여겨보고 꾸준히 신청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읽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긴 장편이 아니라 일기 형식의 에세이를 엮은 책으로, 찰스 부카우스키가 지닌 독특한 문체를 즐길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찰스 부카우스키의 독특한 표현은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강한 문체가 상당히 강하게 독자를 매료시키는 힘이 있게 다가왔다.

사진쟁이들의 호구가 된 적도 몇 번 있다. 그들은 알 만한 연줄을 대고 사진 샘플도 보낸다. 그리곤 배경 스크린, 배경 천, 플래시 등을 들고 조수를 데리고 찾아온다. 그들도 가고 나면 소식이 없다. 내 말은, 사진 한 장도 보내주는 법이 없다는 거다. 한 장도. 생거짓말쟁이들이다. "완벽하게 한 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느 사내가 말했다. "풀 사이즈 사진을 보내드리죠." "무슨 뜻이오?" 내가 물었다. "세로 7, 가로 4 피트 크기 사진을 보내드리겠어요." 그게 몇 년 됐다.

내가 늘 하는 얘기지만, 작가의 일은 글을 쓰는 거다. 이따위 가짜들, 씨방새들 때문에 내가 소모된다면, 그것도 내 잘못이다. 그런 자들과는 이제 다 끝났다. 잡것들, 엘리자베스 테일러한테나 가서 알랑 거려보라지. (p79)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단순히 가벼운 수필보다 중수필에 가까웠고, 문학 용어로 설명하자면 '익살스럽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고 생각한 점은 작가 찰스 부카우스키가 글을 쓰는 데에 품은 작가 자신의 철학이 거칠면서도 덤덤히 돋보였다는 점이다. 

살아가노라면 우린 갖가지 덫에 걸려 찍긴다. 아무도 그 덫을 피하진 못한다. 어떤 사람은 덫과 더불어 살기도 한다. 덫을 덫으로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덫에 걸렸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간 끝장이다. 난 내 덫을 대개는 알아봤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들에 관해 글도 써왔다. 물론, 모든 글이 죄다 덫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것들도 다뤄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삶 자체가 함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글쓰기도 사람을 덫에 빠뜨릴 수 있다. 어떤 작가들은 지난날 자기 독자들의 마음에 들었던 걸 또 쓰는 경향이 있다. 그랬다간 끝장이다. 대다수 작가들은 창작 수명이 짧다. 그들은 찬사를 들으면 그걸 믿어버린다. 글쓰기의 최종 심판관은 딱 한 명, 작가 자신밖에 없다. 작가는 평론가, 편집자, 출판업자, 독자에게 휘둘리는 날엔 끝장이다. 그리고 작가가 명성과 행운에 휘둘리는 날엔 강물에 처넣어 똥 덩이리와 함께 떠내려 보내도 물론 괜찮다. (p36)

 이런 글이 적힌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매일 내가 쓰는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풋내기 실력으로 사진 한 장에 적는 짧은 글과 '엿이나 먹어!'하고 말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비판과 내가 사는 삶에 대한 회고를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면 좀 더 신랄해도 되지 않았나 싶다.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를 잘 아는 사람은 그가 말년에 일기 형식으로 적은 이 에세이를 읽고 싶은 마음이 애초부터 강하겠지만, 나처럼 찰스 부카우스키라는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번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어보면 그가 보여주는 독특한 문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찰스 부카우스키는 73세에 백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91년 일흔 한 살부터 기록한 글을 엮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과연 나도 일흔의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이렇게 글을 쓰면서 보낼 수 있을지 상상해보았지만, 아직 너무 멀어서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나는 그냥 오늘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처럼 이렇게 신랄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보여주기 위한 글'과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차이는 바로 글에 담긴 솔직함과 단어와 문체에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배움이 더 필요하다는 것만 느꼈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 나는 감기몸살을 앓은 탓에 코를 훌쩍이면서 책을 읽었다. 감기약을 먹었더니 졸음이 밀려오기도 했고, 책을 읽는 동안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괜히 미국 서점에서 책을 가장 많이 도둑맞는 작가가 아니었다!

 여기서 더 칭찬하는 일은 그만두자. 그냥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지루함을 느낀다면, 이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어보자! 색다른 문체가 주는 독특한 독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문장을 남긴다.

그래, 올핸 내 생애 중 가장 생산적인 한 해였다. 포도주는 제대로 나이 들면 더 좋은 맛이 난다.

난 어느 누구와 시합을 벌이고 잇는 것도 아니고, 불멸의 명성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따윈 전혀 관심 없다. 중요한 건 살아 있는 동안의 행동이다. 햇빛을 향해 활짝 문이 열리면서 말들이 빛 속으로 뛰어들고, 작은 몸집에 환한 비단옷이 멋들어진 기수들이 모두 한판 승부를 벌인다. 영광은 활기차게 덤벼드는 자의 것이다. 죽음 따윈 엿이나 먹어라. 오늘, 또 오늘, 그리고 또 오늘이다. 그렇고 말고. (p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