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까칠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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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기분을 신경 쓰느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20대가 된 이후에 나는 대화의 기술을 터득하고자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다.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을 해서 이상한 말이 튀어나오고, 사람과 만나는 일 자체를 꺼리는 동시에 두려워했기 때문에 타인과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사람과 만나는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분야를 넓히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대화의 기술'을 말하는 책을 읽으면서 경청하는 자세와 기본적인 예의를 배우고자 했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어느 정도 타인과 만나더라도 무난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어느 정도 안면이 있거나, 공통된 주제를 가졌거나, 내 앞에 사람이 적을 때 가능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발전일 수밖에 없다. 타인 앞에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종종 사람과 대화하거나 관계를 유지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부탁을 받을 때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처음 참석한 행사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과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으면 늘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되어버린다.


…… ⓒ니세코이


 아마 이런 모습은 앞으로 더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게 서툴다고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거의 대다수 사람이 평소 잘 모르는 타인과 대화할 때마다 어려움을 느끼고, 직장 내에서 같이 생활해도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여기에는 '내 행동이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함께 '상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같은 심리적 압박이 원인이 된다. 우리가 유명한 스피치 강사의 강의를 찾아 듣거나 상담을 하고, 인간관계를 말하는 책을 찾아서 읽는 이유는 이런 심리를 극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화의 기술'이라는 게 마치 선이 아니라 악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이런 대화를 함으로써 상대방과 하는 대화의 종점을 내가 유도한 대로 이끄는 것은 도저히 선이라고 말하기보다 악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책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은 이렇게 말한다.


대화 기술을 생각하는 당신은 이미 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대화 기술을 생각하는 것이 왜 악의 영역에 들어가는 일이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 말이 과장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말을 과장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당신의 인식 수준은 매우 얄팍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화, 즉 타인과 언어를 주고받는 것의 의미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당신의 의견을 전달하려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말한다면, 이를테면 생각나는 단어를 그대로 내뱉거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불쑥 던진다면 당신은 착한 사람 혹은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겠지요. 소박하고 순수한 자신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p14)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 ⓒ노지


 책의 제목처럼 책의 시작 부분에서 읽을 수 있는 저자의 말이 상당히 까칠하게 다가온다. 이 문장은 말 그대로 대화 기술이 악에 가깝다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 일부분이고, 나아가 저자가 책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의 중심 내용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뭔가 까칠하다고 말하는 어감 자체에서 우리는 조금 예의가 없거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 혹은 경외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소 우리는 항상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서 존중을 표해야 하고, 가게에서 손님을 맞는 접객을 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매뉴얼대로 예의를 갖춰야 하는 데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런 시스템에 익숙하기에 우리는 '가끔은 까칠하게 말하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당장 지금 내가 까칠하게 상사의 명령에 대답하게 된다면,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가뜩이나 험상궂은 얼굴을 한 상사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고함을 지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까칠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실수했을 때 일어나는 경우다. <가끔은 까칠하게 말할 것>의 저자는 비판과 험담의 경계를 비롯해 우리가 항상 착한 사람으로 상대방의 대화를 받는 게 아니라 때때로 까칠하게 말하는 법을 말하는 책이었다.


험담과 비판은 분별하기 까다롭지만 명확한 지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지적하는데 악의가 있느냐 여부에서 차이가 납니다. 험담은 악의로 뭉쳤고 비판은 선의에서 나온다는 말이 아닙니다. 험담은 악의를 자발적으로 드러내고 악의 자체를 즐기지만, 비판은 악의를 은폐하려 하고 은폐하는 방식 자체를 즐깁니다. 이렇게 본다면 험담과 비판의 차이는 노악(자신의 치부나 결점을 일부러 드러냄)과 위선의 차이가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은폐 방식의 차이는 꼬집을 대상이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에 대한 차이와도 통합니다. 비판은 그 위선적인 성격 때문에 객관적인 양상을 보이고 험담은 그 노악 때문에 주관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좀 더 말하자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누군가를 지적하는 말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악의적인가 여부에 따라서 내뱉은 말이 비판과 험담으로 나뉩니다. 마구 남발돼서 값어치가 떨어지는 아부를 제어하려는 의도로 험담한다면 비판의 성격을 강화해야 합니다. 악의를 꼭꼭 숨겨서 객관성을 가장해야만 합니다. 평가의 중립성을 주장하지 못하면 자신이 내뱉은 발언들이 지지대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p54)


 이 책은 평범하게 대화 기술을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썩 권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대화 기술을 말하기보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과 사람 관계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을지 생각해서 작은 조언을 해주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접객 매뉴얼의 대응 방식이 왜 좋지 않을까요? 내용이나 절차가 좋지 않아서는 아닙니다. 접객 매뉴얼의 내용은 막대한 예산과 시행 착오를 거쳐서 만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짜여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패스트푸드점에 들어섰을 때 점원이 웃는 얼굴로 맞이해도 왜 전혀 기쁘지 않은 걸까요? 솔직히 말하면 짜증납니다. 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점원이 웃으면서 맞이해주는 것이 아주 기쁘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애초에 예의에 대해 생각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접객 매뉴얼이 만연한 풍조에 물든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기쁘지 않은 이유는 그 여자 혹은 그 남자가 나에게 혹은 당신에게 미소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를 만난 게 기뻐서 미소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웃으라고 돼 있어서 웃을 뿐입니다. 접객 매뉴얼에 쓰여 있기 때문에 웃습니다. 정말 불쾌한 일입니다.

웃음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혹은 자발적을 보여야 합니다. 대화 중에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미소 짓거나 웃음을 터뜨리면 참 기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해방감을 느낍니다. 이런 매력을 기계적인 웃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권인 웃음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면 무참하고 모욕적인 느낌을 줄 뿐입니다. (p102)


 위에서 읽을 수 있는 매뉴얼 웃음을 비판하는 글의 형식으로 대체로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사용되는 여러 요소를 설명한다. 다소 냉소적인 비판이 많았고, 책 전체의 방향도 '까칠하다'는 말처럼 조금 까칠했다고 생각한다. 아니 까칠하다고 말하기보다 그냥 머리가 아프다고 해야 할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몇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때때로 내용에 수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조금 좋게 평가할 수 없었고, 옆길로 새는 부분이 많아 '뭘 말하고 싶은데?'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다.



 아마 내 글도 그런 글이 아닐까 싶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읽다 보면 느껴지는 글이기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대화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언제나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도 있으니까.


 이 책의 핵심은 '과감하게 현실을 살아가기'라고 말할 수 있다. 대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어를 똑바로 사용하는 법, 기능화될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예의 바르게 건방져라  등의 과정을 마치 미로를 걷는 듯한 느낌으로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어디까지 개인적인 의견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책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책의 제목을 읽었을 때는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느껴졌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보니 그냥 어지러웠다. 저자의 말하는 의도는 알겠지만, 과연 책을 읽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까칠하게 말할 수 있을지 묻는다면…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디까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혀두고 싶다. 고단샤 에세이상 수상 작가 후쿠다 가즈야에게 관심이 있다면(일본에서 상당히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라고 한다.), 내 의견은 지나가는 불평으로 들어주기를 바란다. (오늘 이 글은 왠지 모르게 까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기분 탓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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