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나만 BB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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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언제나 내가 가진 것을 남이 가진 것과 비교하며 삶을 살아간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으면 우쭐해 하고, 남이 나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으면 질투를 한다. 자신의 잔이 물로 가득 차 넘치고 있어도 자신의 잔에 조금 더 물을 채우려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돈만 있으면 나는 성공한다.'고 착각해 가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도박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이것도 병이다. 우리는 '중2병'이 가장 무서운 병이라고 말하지만, 더욱 무서운 병은 '탐욕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기적인 마음의 병'이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는 이런 비교를 솔직히 멈출 수가 없다. 괜히 길거리만 나가더라도 모두 나보다 잘 생긴 것 같고, 나보다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풍요롭게 살면서 고민 하나 없는 것 같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남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하고, 괴롭히면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어떤 사람은 '그렇게 비교해야 경쟁심이 생기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의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나만 BB탄'이라는 제목은 지난주 토요일(8월 29일)에 방청을 갔던 <김제동의 톡 투유>에서 들을 수 있었던 한 사연의 제목이다. 나는 이 제목만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할 수 있었는데, 아마 나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청춘과 직장인이 똑같지 않을까 싶다.


 똑같은 대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내 친구는 연봉 1억을 넘는 곳에 다니고, 나는 연봉이 2천만 원 수준의 직장을 다닌다고 하면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괜히 기가 죽고, '그래도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의 하소연이 오히려 잘난 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의 출발점은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부터 주야장천 주변 어른들로부터 당한 비교에 있다. 우리는 언제나 절대적 평가 기준에 맞춰서 줄을 서야 했고, 앞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끄트머리에 줄을 서면 '모자란 놈' '실패자' '낙오자'의 평가와 함께 차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놓이기 싫어서 더 열심히 공부하기도 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평가 기준을 바꿀 수 없어 완전히 어긋나 버리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공부만 하는 청소년과 무서울 정도로 잔인한 청소년의 모습이 어른의 절대적 평가 기준으로 나누어진 모습이다.


조화와 다른 차별, ⓒ노지


 원래 이런 평가 기준은 단순히 성취도를 평가하는 기준일 뿐인데, 언젠가부터 비정상과 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남보다 더 못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어디까지 편견일 뿐인데, 많은 사람이 공부를 못하면 실패자가 된다면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들들 볶는다.


 이것은 개인의 욕심이다. 부모가 자신이 내 친구보다 가지지 못한 이유를 '공부를 더 잘하지 못했고, 더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고, 더 좋은 직장에 가지 못했고, 더 좋은 배우자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아이에게는 나와 달리 더 가졌으면 하는 욕심에 끊임없이 질책하는 거다.


 '시험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제도이지,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이라는 외국 선생님의 말씀은 그저 시험 성적 하나로 어떤 아이의 인성과 성공 여부를 지레짐작하는 우리에게 껄끄럽게 느껴진다. 늘 평가와 비교로 자존감을 높여주기보다 '더 해라.'면서 괴롭히니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시키는 대로 눈앞의 문제에서 정답을 맞히는 데에 급급해 자기 스스로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채 우리는 어른이 되어 사회에 발걸음을 내디딘다. 그때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니 모두가 선택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어버린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발생하는 학교폭력, ⓒ노지


 그래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4년제 대학은 나왔으니 좀 더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에 괴로워하는 청년 세대가 만들어졌다. 우리 청년 세대는 아직도 항상 성적으로 비교를 당했던 트라우마를 벗지 못해 사회에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느라 내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한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내가 BB탄을 가지고 있어 어떻게 해서라도 실탄으로 바꾸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다간 평생 내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나만 BB탄'이라는 사연에 김제동과 패널로 나온 최진기 선생님은 '내가 가진 것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말은 쉽지만, 그 길은 남이 쳐다보지 않는 길이기에 걷는 데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내 꿈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거다.'고 정한 결심도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에게 우습게 보이거나 전혀 가치가 없는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런 조롱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우리는 BB탄을 지닌 총이라도 내 목표가 적힌 과녁을 맞힐 수 있다. 실탄이 든 총이라도 내 목표가 적힌 과녁을 맞히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실탄이 들어간 총은 불발, 화상, 폭발 등의 불안정한 위험 요소도 많아 차라리 BB탄이 들어간 총이 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시스템은 언제나 정답은 한 개만 있고, 이 정답을 가장 많이 맞히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정답이 무수히 많이 있으며, 정답을 많이 맞히는 것보다 한 개의 정답을 선택해 즐겁게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타인을 비교하면서 '남만큼만 살자.'는 것을 최고의 교훈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우리가 남과 똑같은 인생을 걸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 우리는 남만큼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내 삶을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김제동과 박성광은 "저는 제가 못생겼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장점을 살렸고, 그래서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여러분이 지닌 총알이 BB탄이라고 하더라도 장점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다. 이건 성공했기에 가능한 말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았기에 가능한 말임을 잊지 말자.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생각대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나는, 생각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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