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첫 문장으로 읽은 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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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과의 첫 만남은 바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처음'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두 가슴 설레어 하는 첫사랑과 첫 데이트 등 '로맨틱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항상 사람과 일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처음으로 반한 사람에게 허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겠는가.


 아무도 없다. 내가 마음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언제나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을 품기 마련이다. 지극히 정상이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처음은 가치가 중요한데,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은 도대체 얼마나 '처음 읽는 문장'이 중요할까? (끄응.)


 사람이 1초도 안 되는 판단의 시간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대략적인 판단을 하듯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겨우 책의 제목과 표지, 그리고 처음 읽는 몇 줄의 짧은 문장으로 책을 읽을지 말지 판단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독자를 매료시켜야 하는 저자의 입장에서는 난해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고민하는 일은 '어떻게 글을 시작해야 할까?'이다. 무턱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간, 글의 시작점과 도착점의 흐름이 맞지 않아 쓴 글을 지우고 다시 쓴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전문가가 쓰는 소설이 아니라 평범한 블로그 글도!


내가 사랑한 첫문장, ⓒ노지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고, 첫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글 전체가 마음에 들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히 대단한 공모전에 응모하는 글이 아님에도, 나는 그런 까닭에 몇 번이나 글을 다시 쓴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첫 문장은 마법의 문장이다. 어떻게 해야 첫 문장으로 독자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할 수 있을까? 셀 수 없을 정도로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행동을 반복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적당한 선에서 나 자신과 타협을 통해서 어느 정도 글이 풀리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간다.


 오늘 갑작스레 '첫 문장'에 관해 말하는 이유는 서평단 활동으로 만난 책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을 소개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인상적인 첫 문장을 가진 책을 소개하는 이야기를 엮은 책인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권의 책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소위 말하는 '읽는 맛이 풍부한' 책이었다.


 그러나 읽는 맛이 풍부한 까닭에 대체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한 책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책의 제목은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이지만, 내용은 그런 첫 문장을 쭉 나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작품의 첫 문장을 시작점으로써 그 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작가와 책을 해설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첫문장, ⓒ노지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이라는 제목만 보고 '오, 이 책은 인상적인 책의 첫 문장을 모아 놓은 책이로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가볍고 짧은 단락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책을 집어 든 사람이라면, 글에서 풍겨 오는 무겁고 짧은 단락의 이야기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중후한 느낌의 책을 즐기거나 직접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내가 사랑한 첫 문장>은 이번 여름 휴가 동안 읽기 아주 좋은 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와 어떻게 이런 첫 문장을 생각할 수 있지?'이라는 감탄이 나오는 첫 문장을 쓴 작가와 책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니까.


별것 아니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아주 유명하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우리말로 옮기니까 맛이 좀 덜하지만 나쓰세 소세키가 썼던 실제 첫 문장을 보면 아, 그렇구나 싶을 것이다. "我輩が猫である。名前はまだない。どこで生まれたかとんと現当がつぎる。(와가하이와/ 네코데/ 아루./ 나마에와 / 마다 / 나이. / 도코데 / 우마레타카 / 톤도켄토우가 / 츠기누.)" 운율이 마치 시처럼 잘 맞고 소리 내어 읽었을 때 입안에 맴도는 울림이 마치 고양이가 담 위를 걸어가듯 조심스런 느낌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세키가 이 짧은 세 문장에 주인공 고양이의 핵심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소설은 내용도 재밌어야 하지만 등장인물이 마치 책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생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소설가들이 가장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이 바로 인물 설정이다. 소설 속 인물이 어떤 부류인지 작가들은 독자에게 이해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어떤 작가들은 장황하게 인물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데, 이런 방법은 오히려 지루한 느낌만 줄 때가 많다. 할 수 있다면 되도록 간결하게 핵심만 뽑아내서 독자를 끌어들이면 좋은데 이거야말로 쉬운 일이 아니다. (p59)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책에서 언급된 이상의 <날개>와 함께 유일하게 읽어본 책이었는데, 두 소설 모두 처음 만났을 때 책이 가져다준 느낌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독특한 첫 문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웬만한 독서광이 아니고서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두꺼운 책을 펼쳐서 읽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 못한다. 소설은 독자가 처음 읽는 첫 문장이 얼마나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가, 거기가 바로 승부수다. 아니, 소설만이 아니라 거짓 모든 글쓰기가 비슷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어렵다. 아무리 해도 어렵다. 어떻게 하더라도 쉽게 만족하는 첫 문장을 쓰지 못한다. 그저 적당히 나 자신과 타협을 하면서 '이렇게 시작하면 될 것 같아.' 하고 에둘러 변명하면서 글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첫 문장을 쓰지 않는 한, 영영 글을 쓸 수가 없으니까.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어보면, 종종 '그냥 무턱대고 쓰라.'고 말하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확실히 남한테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글이 아닌 이상 그냥 무턱대고 쓰는 일이 좋은 첫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괜히 쓴 만큼 글의 기술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10시간 동안 글의 첫 문장을 쓰지 못한 채 고민하는 사람보다 10시간 동안 글을 계속 쓰면서 글을 고쳐나가는 사람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고민만 해서는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책을 읽으면서 뛰어난 첫 문장과 글에 자신을 투영한 작가의 실천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늘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면서 항상 첫 문장에 애를 먹고 있다. 어떤 때는 정말 신기할 정도로 글이 술술 써질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노트를 잡아 찢거나 키보드를 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글 쓰는 사람은 다 그렇다고 하니, 속는 셈 치고 오늘도 머리를 굴린다.


 '아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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