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부족한 나도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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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본 행복,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는 언제라도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껴보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 '아, 정말 이 시간에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한편으로 행복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좀 더 가진 것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자괴감으로 스스로 내린 '나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을 뿌리칠 수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나는 아직 전력 전심을 다 해본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도와서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본 적도 없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없고, 진심으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언제나 어중간하게 살기에 나는 늘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나는 행복해질 수 없다.' 등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처 없이 헤맨다. '도대체 행복이 뭐지?'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손으로 움켜쥘 수 없는 보이지 않은 것에 나는 괴로워한다. 26년이라는 인생을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두려워하며 살았다.


맛있는 밥 한 그릇이 행복일까, ⓒ노지


 누가 보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단순하게 삶을 즐기면서 '맛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말하고, 울고 싶을 때는 울고, 행복할 때는 웃고, 사랑할 때는 사랑하면 되지. 뭐가 그렇게 많아?'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단순한 삶을, 즐겁다고 정리할 수 있는 삶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먹으면 '맛있다.'는 감정보다 '왜 먹어야 하는 걸까? 정말 나는 이걸 맛있다고 느끼는 걸까?'는 의문을 느끼고, 사람의 행복한 웃음 속에 '숨은 비웃음과 거짓말이 있다.'고 바라보면서 사람과 사람은 절대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좀처럼 불신을 거둘 수가 없다.


 내가 이런 고집을 피우는 데에는 몇 가지 큰 이유가 있는데, 근본적인 이유는 '왜 사는가?'에 대한 질문에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에게 명확한 답을 가지지 못한 시점에서 겪은 아픔과 폭력은 더 사회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좀처럼 믿을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눈으로 보는 타인의 행복은 거짓말이고, 난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일은 누군가를 비웃으며 조롱하는 일이고, 거짓말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일이고,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는 일이었으니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노지


 내가 너무 편협하게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릴 적에 겪었던, 20대가 되고 나서도 주변을 그런 식으로 보았던 탓에 아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인문학과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늘 다른 생각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은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내가 태어나서 절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사회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 모두가 적어도 오늘을 솔직하게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웃을 수 있는 나라 '덴마크'의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덴마크'는 행복지수 1위의 나라이다. 덴마크는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로 인구 560만 명이 산다.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의 인구와 크기다.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신뢰가 잡힌 자치단체가 있고, 자신이 버는 돈의 50%를 세금으로 내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시민이 있을까?


 그 해답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낱낱이 적혀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와, 정말 이런 나라가 있구나.'하고 생각하면서도 '덴마크의 모델을 장기적으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을까?'는 질문을 해보면서 우리가 덴마크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 일은 어렵다는 결론에 답답함을 느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북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와 너무 다른 노동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서 나를 무시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어릴 때의 나는, 내가 괴롭힘을 당하면서 매일 울면서 지내야 하는 이유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때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비록 시험 문제가 쉬웠다고 하더라도 전교에서 몇 명 없는 100점을 중요 과목에서 받기도 했다. 그리고 선생님과 다른 아이가 말하는 대로 공부를 못하는 건 미천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천민 계급이라는 집단 의식을 따라서 품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일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리더라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고, 같은 수준의 실력에 도달하더라도 집단 내에서 '쓰레기'로 낙인이 찍힌 사람은 결코 함께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철저하게 어긋난 사회를 부정했고, 욕했고, 저주했다.


인터뷰 중간에 페테르센이 아들 자랑을 늘어놓앗다.,

"올해 22살인데 열쇠 수리공으로 일하고 있어요."

열쇠 수리공? 평생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온 아버지 밑에서 자란 '출세'한 아들의 이미지를 떠올린 나는 솔직히 좀 의아했다. 그러나 페테르센은 되레 이렇게 말했다.

"한 번도 아들이 판검사나 의사나 교수가 되길 바라지 않았어요. 열쇠 수리공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필요하고 의미 있는 직업입니까?"

덴마크 가기 전에 만난 한국의 한 대기업 간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비로서 참 부끄럽다"라고 했다. 또 다른 나의 지인은 직업이 의사인데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그는 아들이 자신처럼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페테르센은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식당 종업원이고 아들이 열쇠 수리공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이야기한다고 했다. 아들이 자랑스러운 덴마크 웨이터와 아들이 못마땅한 한국 의사, 누가 더 행복할까? 이것은 부자 관계의 차이가 아니라 노동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p29)


ⓒ오마이북


밀보에게는 자녀가 세 명 있다. 자녀 양육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열쇠 수리공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던 페테르센과 같았다. 그는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생활을 하길 원하지만, 의사나 법률가가 되기를 원한 적은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런 직업을 선택한다면 돈을 많이 벌지는 몰라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그게 돈보다 더 중요합니다. 우리 큰아들은 요리사가 되고 싶어 해요. 큰딸은 쇼핑몰 판매원이죠. 작은 딸은 병원에서 일하게 될 것 같고요.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직업을 선택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어요. 부모의 선택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선택이어야 하니까요. 부모가 특정 직업을 강요해서 그걸 선택했는데 나중에 그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돈이 무슨 소용입니까." (p36)


 윗글은 덴마크의 노동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과연 우리는 이런 노동 가치관을 가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나를 견주어 차별을 만들고, 우월의식을 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가치관을 가지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학교와 가정에서 계급을 나누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공부하면 배우자 얼굴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같은 문구가 교훈으로 사용되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우리나라에서 다른 일을 하더라도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편견이 차별을 만들고, 차별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면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과연 이런 모습을 뜯어고치는 데에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덴마크는 11년에 걸쳐 사회 주요 세력 간의 갈등과 타협을 통해 지금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통해 덴마크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여러 부분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북


 앞서 말했지만, 덴마크는 버는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는 나라다. 이 세금으로 사회 복지 제도를 아주 이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는데,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면서 왜 그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세금의 20% 수준에서 조금만 올리려고 해도 격렬한 항의에 부딪히는데 말이다.


 그 이유도 책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덴마크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정부와 시민 사이에 두터운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덴마크 시민은 자신이 내는 세금이 나와 내 자식에게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생활을 통해 알고 있기에 세금을 아깝지 않고,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사회는 '더 많이'를 강조하면서 경쟁합니다. 늘 최고가 될 것을 요구하죠. 반면에 여기 덴마크 사람들은 여유를 가지고 삶을 즐기려고 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아요."

그처럼 여유를 갖고 즐길 줄 아는 삶은 덴마크의 사회제도에서 나오는 것일까, 덴마크의 독특한 특성 때문일까? 이 질문에 그는 "두 요소의 결합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에컨대 높은 세금과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덴마크의 복지 제도와 잘난 체하지 않고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는 덴마크의 오랜 관성이 서로 결합돼 있다는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높은 세금으로 두꺼운 중산층을 만들어냅니다.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봐야 하죠. 물론 빈부격차가 없을 수 없지만, 가난한 덴마크인도 부자 덴마크인만큼 행복합니다. 이것이 미국과 다른 점이죠. 미국에서는 가난하면 엄청나게 불행해지잖아요. 덴마크인들은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사회복지가 잘돼 있어서 길거리에 나앉을 일이 없는 거죠. 그래서 부자들도 자기 수익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데 자부심을 느낍니다. (p94)


 윗글은 당연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한다. 한국 사회는 불신이 가득한 사회다. 정치와 기업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불신을 감출 수가 없다. 조금 방심하면 당하는 사기를 당하니, 어찌 타인과 정부를 믿고 소득 절반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덴마크 국민들은 왜 월급의 절반가량을 기꺼이 세금으로 낼까? 실업하면 실업보조금을 받고 대학까지 공짜로 다니고 병원비가 평생 무료이기 때문이다. 내가 낸 세금을 정부가 제대로 쓰고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증세에 저항감이 높은 이유는 '세금이 준 혜택'을 국민들이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명박 정부처럼 22조 원이나 되는 세금을 멀쩡한 강을 죽이는 '4대강 사업'에 쏟아붓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그 세금이 일부 대기업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덴마크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높다. 덴마크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2013년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세계 180개 국가 중 가방 부정부패가 적은 깨끗한 나라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46위였다. (p84)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 같지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읽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한국 사회 규칙에 적응해서 사는 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과정을 통해 진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나에게 '내가 행복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하고 물어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덴마크 일반 시민과 우리의 생각 차이를 바라보는 내 생각을 되돌아보며 나는 나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했다.


 책에는 '우리를 살릴 사람은 결국 우리뿐이다.'이라는 말이 있다. <상록수>의 주인공이 말한 대사인데, 나는 이게 바로 행복을 모르는 나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덴마크의 시민이 그러하듯, 나는 나 스스로 주변 환경과 태도를 바꿔가면서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방법이 나의 결론이었다.


 결국, 내가 행복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행복을 바라고, 그런데도 행복을 두려워하는 모순은 내가 살아온 26년 인생 자체였었다. 지금 분명히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간절히 원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기계적인 삶이 아니라 내 의지로 사는 내 삶을 원한다. 그게 행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이 아닐까?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어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을 나와 다른 일로 느끼고, 신뢰를 잃어버린 차별 속에서 조금이라도 갑의 위치에 이르고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과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그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비록 내가 선택한 선택지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실패 자체도 내가 선택한 일이고 싶다. 타인의 시선은 불행을 부추길 뿐이다.


 우리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이런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는 덴마크의 이야기는 거의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괴롭기도 했다. '우리는 절대 이렇게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나 자신은 바꿀 수 있다. 내가 바뀌면, 내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미쳐 내가 소속한 공동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그 결론을 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한다. 아직 행복을 모르고, 아직 가슴이 뜨겁게 요동치는 사랑을 모르는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것을 찾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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