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은 고교생들의 대화 속 일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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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가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어찌하나


 최근 날씨가 따뜻한 것을 넘어서 더워지면서 곳곳에서 여름을 맞이하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TV 중계로 보는 야구 경기에서는 팥빙수를 먹으면서 야구를 관람하는 사람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모습도 흔해졌다.


 그리고 봄 소풍과 달리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이 시기에 소풍을 오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고교생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나 홀로 농구를 하는 한 공원에 어떤 고등학교에서 졸업 앨범 사진 촬영을 나온 모습을 보았는데, 고교생들의 모습에서 나는 여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읽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에서 무히카는 감옥에는 온갖 인간의 표본이 있다고 말했었는데, 나는 그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온갖 인간의 표본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작은 모습이니까.


 내가 본 모습은 몇 가지로 나누어졌다. 모두 끼리끼리 뭉쳐서 이동하는데 혼자 뒤떨어져서 걸으면서 따라다니는 외톨이, 가까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특정 그룹, 그리고 선생님과 다수의 눈을 피해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들. 어디서나 평범하게 볼 수 있는 학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봄과 여름의 경계, ⓒ노지


 그러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그룹을 우연히 한 식당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짜장면이 먹고 싶어서 들린 손짜장 집에 한 10대 고교생 그룹이 들어왔는데, 그 아이들은 처음부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시작해 듣고 싶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가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바로 '일베'라는 단어가.


 '일베'라는 단어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현재 우리 한국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와 함께 많은 논란이 되는 사이트 중 하나다. 일베 유저들은 자칭 극우주의자를 자칭하면서 여러 사회 비판과 함께 타인을 조롱하는데, 많은 사람 사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일베 유저가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곳곳에서 오프라인 활동도 벌여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베를 이용하는 한 10대 이용자가 백색 테러 사건을 일으킨 것을 비롯해 5.18 광주 민주화 추모식에서 벌인 일베 인증 등 심각한 수준이다.


 과거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일베 용어가 유행하는 은어로 사용되면서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같은 무리에서 활동하기 위해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는 보도를 뉴스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내가 우연히 만난 고교생 그룹도 그 예중 하나가 아닌가 싶은데, 솔직히 적잖이 놀랐었다.


ⓒ머니투데이


 왜냐하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나의 유행어로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예의 고교생들은 식탁에 둘러앉아서 "노무노무 맛있다!! 인증샷 찍어서 올려야지." 같은 말을 평범하게 하면서 손가락으로 일베를 상징하는 특정 모양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뒷자리에서 그 모습을 보던 나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내가 그 10대 청소년 그룹을 향해 '일베는 좋지 않은 곳이다. 그런 말을 함부로 사용하는 거 아니야!' 하고 지적할 수 없었던 것은 내가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는 집단 기세가 철철 넘치는 그 청소년 집단에 어떤 사람이 쉽게 지적할 수 있을까?


 괜히 식당에서 트러블이 발생하면 좋지 않다, 무섭다 등의 자기변명을 하면서 나는 뒷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일베는 이 정도로 자연히 10대 사이에서 주류 문화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심각한 위기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용어를 사용하는 게 뭐가 큰 문제가 되느냐고 시큰둥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베에 익숙해진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지나치게 치우쳐 공정한 보도를 하지 못하는 특정 매체에 치우치기에 문제인 거다.



 지난 예능 <비정상회담>에서 '과연 상대방에 대한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어야 하는가'가 주제가 되었었는데, 지금 우리 한국에서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바로 그 논란의 핵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무분별하게 일베 용어와 사이트에 노출되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 정도면 자신이 이후에 잘못을 판단할 수 있기에 그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가치 판단 기준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기에 어른의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본 그 고교생 그룹은 그저 재미를 넘어 타인을 조롱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있는 그 식당 내에서 욕설만이 아니라 여러 일베 용어, 쉽게 입에 담기 꺼림칙한 말을 사용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 고교생들의 그런 행동이 일베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건 과할지도 모르지만, 일베는 분명히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해(害)'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욕'이 이제는 완전히 수식어를 넘어서 주어가 되어버렸는데, 점차 일부 학생에서 그치는 일베 용어와 일베 사용이 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점점 사람의 참된 예의와 도덕의 중요성이 옅어지는 우리 학교의 환경은 어쩌면 일베가 번식하기 가장 좋은 곳일지도 모르겠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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