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독서가가 본 책을 읽지 않은 한국
- 시사/사회와 정치
- 2015. 4. 14. 07:30
왜 우리 한국은 점점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걸까?
며칠 전, 다음 포털을 통해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작가가 사라지는 나라>이라는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한국의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하는 글은 우리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우리 한국이 책을 읽지 않는 게 문제가 되지만,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는 뜻이 아닐까? 1
한국 정부 기관은 '독서의 해'까지 지정하면서 책 읽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지만, 비록 이런 캠페인이 시끄럽게 떠든 것에 비해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평소 책 읽기가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책을 권한다고 해서 책을 읽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소 습관이 되어 있지 않은 일을 잘하지 못한다. 담배를 매번 피우는 사람에게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면서 금연을 하라고 권장을 하더라도 금연을 하지 못한 것처럼, 내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습관이 안 된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은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기르는 것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많은 부모님이 아이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기른다면서 문학 전집이나 여러 권장 도서 책을 사 놓더라도 효과가 없다. 어릴 때는 부모가 함께 책을 읽으며 습관 형성에 이바지하지만, 조금만 나이가 들면 입시 준비에 바쁘기 때문이다. (꿈보다 성적이 먼저.)
평범한 소설들, ⓒ노지
조금만 우리가 옛날 일을 떠올려보더라도 우리는 그런 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어릴 때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감성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초등학교 4학년 정도가 되면 이미 그때부터 특목고 준비에 들어가게 되면서 '감성보다 성적'이 더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독서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책을 읽지 않는 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언제나 책을 읽으면서 감성에 빠져드는 것보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내일을 걱정하면서 스펙을 하나 더 쌓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함초롬'이라는 단어보다 'Green'이라는 단어가 더 중요하다.
이런 각박한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점점 책을 멀리하게 되고, 책을 읽는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거나 자격증이라도 하나 더 따기 위해서 문제집을 펼친다. 특히, 요즘은 한국 내 생활을 포기하고 해외로 이민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도 증가하고 있어 더 문학은 더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언제나 우리의 삶 가까이 문학이 있지만, 우리는 '너 왠지 낯설다.'이라는 말로 문학을 멀리한다. 스펙 공부는 우리의 자기소개서에 짧은 스펙 한 줄을 더해주지만, 책 읽기는 우리의 자기소개서에 긴 이야기를 더해준다. 책을 읽는 게 더 우리를 위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잘 모른다.
당신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이 세상은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책의 저장소이며 인간과 책이 교감하고 영혼과 인류의 사상이 교차하는 역동적인 공간이자 마법의 공간인 도서관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새 장(章)을 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책을 통하지 않고 인생의 새 장을 연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위인이 책을 통해 자기 인생의 새 장을 열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도스토옙스키)
_p25,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또한, 스마트폰의 빠른 대중화는 우리가 책을 더 읽지 않게 만든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스마트폰을 20살이 넘어서 만나게 되었지만, 요즘 아이는 2살만 되더라도 스마트폰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전에 스마트폰이 육아에 미친 풍경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은 정말 위험하다.
어떤 사람은 스마트폰을 통해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대체로 스마트폰을 통해 긴 문장보다 영상 같은 매체에 더 자주 노출이 된다. 짧은 영상과 자극적인 사진을 통해 우리는 점점 긴 글과 그림 없는 책을 읽는 데에 어려워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환경이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PC가 없었던 시절에 어린아이가 울면, 우리는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전래 동화 이야기나 가까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틀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아마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부모부터 다양한 스마트 기기로 보는 영상에 의존하거나 빠져 있으니, 그 같은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아이는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책을 읽지 않는 가정'을 상상할 수 있다.
체면 사회 한국, ⓒ공부하는 인간
그리고 한국은 체면 사회다. 내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은 절대 나서서 하는 법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도 상당히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신경을 쓴다. 그래서 읽지도 않을 어려운 책만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정작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거의 읽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음 포털을 통해 읽은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작가가 사라지는 나라> 글은 일본과 우리 한국의 모습을 비교해놓았는데, 일본에서는 책의 표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 작가의 작품만이 아니라 라이트 노벨처럼 제2의 문학 작품도 정말 많은 판매가 이루어지는 풍부한 시장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지 않고, 남이 읽으라고 하고, 언론에서 좋은 책이라고 떠드는 책만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책 읽기에 흥미를 느끼는 게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책 읽기=어렵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건 그 때문이다. 정말 이게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이 같은 독서 편식은 절대 독서를 풍부하게 하지 못한다. 가벼워 보이는 소설이라도 그 내용에는 여러 인문과 고전이 종종 등장해서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고, 그 작은 관심으로 인문과 고전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인문과 고전이 가진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체면치레 하느라 놓치고 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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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독서율을 높이기 위해서 벌이는 독서 캠페인은 대체로 우리가 직면한 이런 문제를 생각지 않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책을 손에 쥐여주고, 하필 손에 쥐여준 책은 독서력이 있는 사람도 읽기 힘든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어찌 책에 흥미가 생길 수 있겠는가?
한국이 독서 인구를 높이고자 한다면, 이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칭얼대는 아이에게 스마트폰으로 뽀로로를 틀어주는 것이 아니라 전래 동화와 가벼운 소설을 읽어주고, 부모부터 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책을 만나게 하는 선견지명이 담긴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책을 읽는 데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당당하게 읽으면 된다. 왜 남의 신경을 쓰느라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에 하루가 걸리는 책을 읽으려고 하는가? 소설부터 읽기 시작해서 책에서 나오는 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점점 독서 범위를 넓혀가면 된다. 그게 기본이다.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작가가 사라지는 나라. 한국의 출판 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눈치가 보여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조금만 궤도를 수정한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날 수 있다. 지금, 눈치 보지 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어보자!
- 주간경향 '책을 읽지 않는 나라 작가가 사라지는 나라' : http://goo.gl/71SsHC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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