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매매 자살 여성을 동정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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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연에 안타까워 해야 하는 이유


 얼마 전에 페이스북으로 구독하는 <인사이트>의 기사 '위장 수사에 걸린 성매매 여성 자살, 알고 보니 안타까운 미혼모의 이야기'이라는 글을 읽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성매매는 드문 일이 아니고, 미혼모의 이야기도 드문 이야기가 아니라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기사의 제목을 클릭해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읽어볼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티겟 다방'이라는 일을 통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은 자신의 손님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녀는 '옷을 갈아입을 테니 잠시 나가 달라.'이라고 요청했고, 경찰이 나간 사이 그녀는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래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녀는 기어코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그녀의 사연이 <인사이트>를 통해 추가로 올라왔는데, 그녀는 어릴 때 아이를 낳은 미혼모였다고 한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를 보살피는 그런 처지에 놓이자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일을 찾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에서 '미혼모'가 겪는 차별과 경제적 어려움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모두 잘 알지 않을까?


 당연히 그녀도 힘든 상황 속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가족에게는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녀는 가족과 멀리 떨어진 지역 통영에서 마음이 더 힘든 일을 하면서 작은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삶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어떤 사람은 전혀 안타까워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포스트 (글과 상관 없음)


 <인사이트> 페이스북 게시글에 달린 댓글과 기사에 달린 댓글은 다양했다. '위장 수사라면서 여경도 데리고 가지 않은 경찰의 수사에 문제가 있었다.'부터 시작해서 '왜 성매매하는 여성을 동정하지? 그녀가 잘한 것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등의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서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의견이 나누어지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어쩔 수 없었던 그 슬픈 선택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쪽이다.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동정심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 미혼모로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미혼모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우리 사회를 안타까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내 생각에 반대하며 미혼모가 되어버린 것도 엄연히 개인의 책임이고, 미혼모로 살면서 '성매매'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개인의 책임이고, 단속을 당하자 목숨을 끊어버린 것도 개인의 책임이라며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 의견에 나도 완벽히 반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래도 이런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사는 슬픈 사회의 한 부분이기에 최소한 비웃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향해 '몰상식한 직업을 가지고 비천하게 산다'고 욕하기보다 살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지만 제시한 사회의 열악한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미혼모를 지원하기 위한 방책을 마련한다고 말한 정치인은 무엇을 했는가?'이라며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방에서 어디까지 가능하죠?”

허그녀는 피식 웃으며 “허그방이니까 껴안으면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생각보다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순간 당황했지만 기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요즘 너무 외롭다. 스킨십보단 편안한 대화로 외로움을 씻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허그녀는 소리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꽉 안아 줄게요”

또 하나의 변태 업소

그녀에 따르면 허그방의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이어진다. 허그방 아가씨들은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뉘어 외로운 남자들을 달래준다. 이들의 나이는 보통 20∼27세로 꽤 젊은 편이었다. 기자가 만난 허그녀 또한 23살로 어린 편에 속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건 스킨십의 정도였다. 허그녀는 “옷 위로 가슴을 만지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며 “가슴, 허리, 엉덩이, 다리를 만지는 건 기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흥분한 나머지 허그녀의 가슴을 옷 밖으로 꺼내 원피스와 브레지어를 벗기고 애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심지어 팬티를 벗기고 강제로 만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허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린 채 자위를 하며 그 모습을 지켜봐 달라고 요구하거나, 성기를 잡고 오랄을 해달라고 조르는 남성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허그방 내 포옹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약간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삽입 없이 자극적인 스킨십을 즐기기 위해 찾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실제로 스킨십은 하지 않고 순수하게 대화만 하고 가는 손님도 존재했다. 그녀에 따르면 허그방을 찾는 4∼50대 중년 중에는 기러기아빠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육체적 욕구를 푸는 것을 원하지만, 단골의 경우 어깨에 손을 얹고 대화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허그방의 표면적인 정체성이 지켜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외로운 사람들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우울한 기분이 엄습했다. 


[출처]


 위 기사는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읽어보다 '성매매'이라는 단어를 검색해서 볼 수 있었던 하나의 기사이다.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는 '키스방'이라는 일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불티나듯 개업이 되었었는데, 대체로 유사 성행위로 단속을 당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법'이라는 단어가 함께 붙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유사한 업종을 계속 끊임없이 상호를 고치면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위 기사에서 읽을 수 있는 '허그방'도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고, 간간이 언론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귀 청소방(?)' 같은 업소도 그런 업소라고 한다. 하도 이름이 많아서 검색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런 업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손을 댄 여성이 많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출 청소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10대 여성 가출 청소년은 일부 비천한 어른들에 의해 성 노리개로 이용되다가 버림을 받거나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성매매를 강요받기도 한다. 이런 소녀들은 똑바로 구제되지 못하거나 처벌받지 못하고, 사회 재생 지원을 받지 못하면, 똑같은 일을 반복해버릴 확률이 높다. (추천하는 기사 : 언론은 왜 성매매 업주는 정조준하지 않나요)


 <인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었던 성매매 단속 자살 여성의 사연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 놀다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고, 그녀는 그래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미혼모'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건 작은 배려가 아니라 차별과 멸시였을 것이고, 그래도 가족을 위하는 그녀는 결국 성매매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사람들은 굳이 성매매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노력해서 다른 일을 찾아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뭐, 그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입장에 처해보지 않는 이상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그냥 뭐가 힘들다고 그래? 그래도 올바른 방법으로 살려고 해야지.'이라며 말하는 건, 조금도 역지사지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단순히 감성팔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갈수록 첫 성 경험 연령이 낮아지고, 미혼모가 생겨남에도 도와줄 수 있는 기관과 제도가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기에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번 가해자와 피해자를 욕하면서도 똑바른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게 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런 미혼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면서 사채에 손을 댔다가 갚지 못하는 빚 때문에 처량하게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건 사회 배려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대학생을 비롯한 서민층에서 제2금융권 대출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가계 부채는 이미 가계가 스스로 갚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보다 더 약한 미혼모 같은 계층은 얼마나 힘들까?


 그녀들은 사회적 편견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이겨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미혼모 여성이 성매매 단속에 걸려 자살한 사건을 손가락질하면서 잘한 것도 없는데 동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말은 하고 싶다. '사회적 약자는 결국 우리이고, 저런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건 결국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만들지 못한 우리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이라고.


 오늘 이 시간에도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이 굳은 땀을 흘리면서 남에게 천시받고, 비웃음을 사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욕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니까.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이기성이 색안경을 만든다.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일상을 만드는 사람, ⓒ노지



 우리는 언제나 깨끗한 거리를 걷기를 원하고,

 우리는 언제나 깨끗한 벤치에 앉기를 원하고,

 우리는 언제나 깨끗한 도시의 풍경을 원한다.


 그런 거리를 만들고,

 그런 벤치를 만들고,

 그런 도시를 만든건,


 바로 우리가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가 홀대했던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가 멸시했던 사람들이다.


 어느 여름,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고생하시는 두 아저씨를 만났다.

 어떤 부모는 그 아저씨를 가리켜 '공부 못하면 저런 사람 된다.' 같은 말을 한다.


 그 부모는 모른다.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바로 저 아저씨의 손에서 시작된 것을.

 그러니 제 자식에게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거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일상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지금 저 자리에 계신 분들이라는 것을.


 나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 있다고,

 남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있다고,

 사람의 가치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이 어떤 자세로 삶을 사는 데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일상은 만드는 사람은,

 우리의 일상을 만드는 사람은,

 우리의 일상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우리가 외면했던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가 홀대했던 사람들이다.

 바로 우리가 멸시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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