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코타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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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본상 수상작,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화 《원피스》는 주인공 밀짚모자 루피와 함께 그의 동료들이 대비보를 찾아 떠나는 로망을 그리는 만화다. 우리가 평소 동경하는 삶의 모습이나 즐겨보는 허구가 섞인 모든 작품에는 로망이 담겨있다. 그 로망은 우주의 블랙홀처럼 우리가 그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왜냐하면, 그런 작품에서는 현실성을 띄지 못하는 우리의 로망이 실현이 되기 때문이다.


 이 로망이라는 단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하는 건 어렵다. 그냥 요즘 사람들이 흔히 쓰는 의미는 '동경 혹은 선망의 대상'이나 '꿈' 같은 것으로 정의하더라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그런 로망을 하나씩 품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런 로망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같은 마음을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았을 거다.


 드라마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돈이 넘쳐 나는 상속자의 집안에서 살고 싶다.'라던가 애니메이션 《화이트 앨범2》를 같은 작품을 보면서 '나도 저런 간절한 사랑을 해보고 싶다.'라던가 만화 《원피스》 같은 만화를 보면서 '나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면서 꿈을 좇는 삶을 살고 싶다.'라던가 말이다. 우스운 바람이지만, 그게 바로 로망이라는 게 아닐까?


김연아 같은 여친, ⓒ구글 검색


 10월 중순이 지나고, 11월 다가오면서 더 본격적인 가을이 되고 있다. 이미 거리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만 보더라도 은행나무잎이 샛노랗게 옷을 바꿔 입은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고, 바보 커플들이 조금 이른 게 아닐까 싶은 두터운 옷을 꺼내 입은 채 손을 마주 잡고 까르르 거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게 하고, 사랑이 하고 싶게 하는 계절 가을은 로망의 계절이다.


 비록 내가 로망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인처럼 로망을 쫓아 세계 여행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볍게 친구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지 못하더라도 나는 로망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고, 책을 읽는 것이고, 엔시 다이노스의 야구를 응원하는 일이다. (지금은 피아노도 치고 있다!)


 왜 갑작스럽게 '로망'이라는 단어를 꺼냈느냐면, 얼마 전에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속에서 주인공 4인방이 은행을 터는 강도질을 하는 신호로 "로망은 어디인가!"라는 말을 외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을 정말 통쾌하게 읽었는데, 오늘은 이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노지


 앞서 이야기했었지만, 이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다. 이미 나온 지 꽤 오래된 소설이지만, 인제야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그냥 단순한 변심이다. 책을 읽는 데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필요할까? 그냥 읽고 싶어지면 읽는 것이고, 가을바람을 쐬며 허한 마음이 나를 궁지로 몰 때 도망치기 위해서 읽는 거다. 그런 이유로 난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읽었다.


 이 책은 정말 요즘에 딱 읽기 좋은 소설이었다. 이 작품은 4인조 은행 강도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은행 강도단이라고 해서 우리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화려한 강도단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평범히 삶을 사는, 그저 우연히 몇 번 마주친 것을 계기로 은행 강도단을 조직해서 "로망은 어디인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은행을 터는 평범한 강도단이다.


 그 4인조는 나루세(남), 유키코(여), 구온(남), 교노(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들려주는 좌충우돌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중심사건은 이들이 언제나처럼 성공적으로 은행을 털고, 도주하는 도중에 은행 현금 수송차를 턴 다른 강도단과 마주했다가 그 강도단에 훔친 4천만 엔을 모두 빼앗기는 사건이다. (강도의 돈을 강도가 훔치다니!)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여기서부터 두 강도단이 돈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이야기를 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이다. 이 사건에 이어져 있는 복선을 놀랍도록 구성한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정말 통쾌하다는 말을 여기에 쓴다는 것이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진짜 악당 간자키의 허를 찌르기까지의 치밀한 과정,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볼 수 있었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재의 작은 실마리를 찾아 추적하는 과정은 역시 이카사 코타로의 작품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주인공 4인방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조연 인물을 이렇게 잘 활용해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독자가 추리하며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건 이사카 코타로 작품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 현실에서는 이 소설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에서 등장한 4인조 그룹이 성공적으로 은행 강도 짓을 마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확률이 낮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진 개인적인 욕심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 4인조 그룹은 몇 번이나 은행을 털면서 한 번도 의견 다툼이 생기거나 돈을 나누는 데에 트러블이 생기지 않았다.


 그건 결코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은행을 터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수익금을 나누는 싸움으로 은행 강도단은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전에 마늘밭을 파는 공사를 하던 인부 두 명이 마늘밭에 묻혀있던 몇십 억을 서로 더 가지고 가려다 아무도 가지지 못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사람들은 바보라고 욕했지만, 자신이 그 경우에 처하더라도 다르지 않을 거다.)


 그래서 이 작품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의 4인조 갱스터는 악당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정치인도 안 지키는 원칙을 철저히 원칙을 지켰으니까. 오히려 진짜 악당은 간자키 같은 사람으로, 그를 처벌하는 4인조의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이사카 코타로의 팬이라면(책이나 소설을 읽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통쾌하게 웃으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이기에 당시 소설이 쓰여 졌던 시기에 일본과 러시아에서 있었던 문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과 미국과 일본의 관계 비판,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일본 정치인을 비판하는 내용도 드문드문 읽을 수 있었다. 이 책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감상 후기를 마치면서 그 부분을 남긴다.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당신의 로망은 어디에 있는가!?"


몇 년 전 강도 사건이 떠오른다. 외국인 은행 강도가 사람들을 붙잡고 난동을 벌인 사건으로, 유키코는 나루세 일행과 같이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때, 눈앞에 쓰러진 시체를 봐도 전혀 리얼리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다시 봐도, 무섭지는 않군." 나루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이 세상에는 훨씬 더 엽기적이고 악의로 가득 찬 인간들이 넘쳐난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죽어 마땅한 인간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이 나한테는 더 공포지." 나루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말만 거창하게 하는 정치가가, 나라의 경기도 회복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잘리지도 않고 질기게 붙어 있는 걸 보면, 그쪽이 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야. 칼에 찔려 죽은 시체는 그에 비하면 심플하지." (p162)


"나루세 씨는 이런 말도 했죠. '이 세상에는 범죄다운 범죄가 필요하다' 고요."

"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구온이 씨익 웃는다. "이 세상에는, 실접자가 죽기살기로 벌인 강도짓이라든가, 어른들을 우습게본 젊은이들이 저지른 살인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국가대 국가로 공격하고 또 보복하는 범죄, 맨 그런 것뿐이라고 그랬죠. 그러니까 덜떨어진 지식인들이 잘난 척하고 떠드는 거라고."

"내가 그런 말들을 했었나?" 사실 기억나지 않았다.

"말했지." 이번엔 교노가 끼어들었다. "나 지식인입네, 하는 작자들이 거들먹거리고 한마디씩 떠드니까 이 세상에 질서고 윤리고 사라지는 거라고 네가 그랬어. 그러고는 눈앞에 쓰러져 있는 인질의 시체를 보면서 '그러니 현실에 리얼리티가 없지' 하고 혼자 중얼거리더라."

"네, 맞아요. 그리고 교노 씨는 소리 높여서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잘못됐다는 거야. 이 일이나 저 일이나 뭐든 그 발단은 미국이라고. 이 세상의 범죄나 생활의 대부분이 미국식인 데다가, 사건을 일으키는 것 또한 그 나라지. 그러니까 애당초 콜럼버스가 대륙을 발견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 이거야. 여기서 우리가 원망할 건, 콜럼버스의 그 쌍안경이라고' 어쩌구 하면서 외쳤잖아요."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예, 했어요."

"그래, 했어." 나루세도 동조한다.

"나랑 유키코 씨는 뒤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아주 흥미진진하게."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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