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결과를 멋대로 해석하는 어른들의 사회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9. 21. 07:30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춰 문제를 왜곡하는 어른이 있어 슬픈 나라
모든 일에는 언제나 원인과 결과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접하는 여러 사회 문제도 그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우리는 여러 사회 문제를 똑바로 파악하기 위해서 진상 규명과 함께 앞으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제도와 법의 허점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큰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언제나 법 개정을 통해 있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게는 특별법을 마련해 그를 처벌하기도 하고, 좀 더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 특별법이 마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언제나 약자의 사건에 해당할 때에만 적용된다는 건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당연한 절차는 발생한 문제의 원인이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에 따라서 과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가 잘 아는 '세월호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세월호 사건의 발생 원인은 분명히 세월호를 운영한 기업 측의 무리한 리모델링과 과중 등의 일이 원인이다. 하지만 좀 더 깊이 그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그런 불법적인 일을 눈감아주고 오히려 손을 잡아줬던 썩은 낙하산 관리 층의 문제와 썩은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침몰 당시에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잘못된 보도와 함께 고위 인사 층이 보여준 태도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원인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음에도 좀처럼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세월호 유가족 중 많은 사람과 그들을 응원하는 많은 시민이 명백한 진상규명과 함께 그와 관련된 나라의 제도적 문제를 검토하고, 그 사이에서 비리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세월호 특별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내에서는 그런 주장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딱 한 가지의 이해관계가 작용한다. 가해자가 힘을 가지고 있고, 가해자는 정치와 경제 분야 속에서 줄줄이 거미줄로 엉킨 그런 시스템 속에서 함께 칙칙한 어둠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특별법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잘못이 밝혀질지도 모를 그런 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새누리당 한 의원이 말한 "어떻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할 수 있느냐?"라는 말은 바로 그 이유다. 자신이 가해자인 것을 알기에 그 특별법을 인정할 수 없는 거다.
이 사례는 명확히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원인과 결과를 제 좋을 대로 해석하는 슬픈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나라의 모습이다.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JTBC
이런 사례는 단순히 세월호 사건 같은 큰 사건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원인과 결과를 제 좋을 대로 해석해서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처벌을 피해가기 위해 벌이는 일은 우리 일상 속에 더 많이 들어와 있다. 그 대표적인 또 다른 사례가 바로 학교 폭력이다.
이전에 《학교의 눈물》이라는 책을 이야기하면서 말했었지만, 우리는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타인을 악랄하게 괴롭힌 가해자를 욕하지만, 큰 피해를 당하였던 피해자를 향해서도 '네가 멍청해서 맞은 거다.'라며 변호해주지 않는다.
게다가 가해자 측은 "피해자가 맞을만해서 때렸다.", "괴롭힘당하고도 가만히 있었던 피해자가 잘못이다." 등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피해자보다 제 밥그릇이 중요한 학교 측은 사건이 커지지 않기 위해 침묵하거나 피해자를 정신 이상으로 내몰며 사건을 왜곡한다.
"우울증을 앓는 아이라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한 피해자의 잘못이 크다.", "평소 소심해서 괴롭힘을 당하다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등의 말로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피해자를 칼로 난도질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한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이런 일은 우리 학교에서 너무 흔히 발생한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문제를 쉽게 볼 수 있다.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가혹 행위도 똑같고, 성폭행 사건도 똑같다. 너무 어이없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KBS
오래전에 고려대학교에서 의사 과정을 밟고 있던 세 명의 남자 대학생이 한 여학생을 집단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위 참고 이미지는 다른 사건이 보도가 된 이미지.) 그 성추행 사건은 명백히 세 명의 남자 대학생의 잘못이었지만, 그들은 순순히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여학생이 유혹했다.', '평소 헤픈 여학생이었다'며 원인을 왜곡하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피해자를 끊임없이 난도질했었다.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어찌 '저런 사람이 의대생이지?' '어찌 저런 부모가 있느냐?'며 많은 사람이 혀를 내둘렸다.
그 가해자 세 명은 모두 유죄가 확정되었지만, 그 사고를 뉴스로 접했던 우리는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에 있는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으니까.
이런 사건 이외에도 많은 성추행 성폭행 사건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야한 옷차림으로 남자를 유혹한 여자의 잘못이다.",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10대 여학생에게 "네가 아빠를 유혹했니?"라고 묻는 악마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말이다. 과연 이게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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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런 비정상적인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군대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도, 그 무서운 집단 폭행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살을 해도 '피해자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가 모든 게 전부가 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흔히 착각한다. 학교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가, 군 가혹 행위를 당하는 피해자가, 멈추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람이… 피해자가 어느 정도 잘못이 있기에 그렇다고.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대인 관계가 안 좋아서, 행실이 바르지 못해 그런 일을 당했다고 말한다.
참, 어이없어 쓴웃음만 나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학교 폭력이나 군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대안관계가 어려운 건 괴롭힘이 원인이 되었기에 발생한 거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서 사건을 제 좋을 대로 해석하는 이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말인가?
예슬이는 무엇보다 "너도 잘못이 있으니까" 피해를 당했겠지 라거나 "네가 나약해서" 학교폭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억울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학교폭력 가해자뿐 아니라 학교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뿌리 깊은 편견이 존재해왔다. 학교폭력 가해자가 비행청소년일 것이라는 편견처럼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대체로 소심하고 우울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소년법정에서 학교폭력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우등생이거나 중산층 가정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과 마찬가지로 학교폭력 피해 역시, 특정 부류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소심함과 우울함은 오히려 학교폭력 피해의 후유증인 경우가 많다.
그것이 마치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뭘까? 심리학자들은 그 이유가 '기억의 오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일반적으로 정보가 아니라 정서를 기억하게 된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 학생뿐 아니라, 그것을 조사하고 상담하는 선생님들조차도 사건의 내용보다 피해 학생의 우울한 모습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고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그 우울한 모습이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폭력을 부른 원인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피해 학생이 자살을 하면, 학교폭력이 아니라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예슬이는 이런 심리학자의 이론을 사실로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p90_학교의 눈물)
우리가 평범히 생활하는 지금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그런 식으로 힘없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철저히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이건 우리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짓 모든 사회가 그렇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결과를 보라. 무슨 말이 필요할까?
오늘도 우리가 그저 하루 세 끼를 먹으면서 '참, 세상 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광화문 광장에 앉아서 묵묵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과연 피해자가 가해자를 조사하는 게 옳지 않은 일인가?'라는 질문을 무언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사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춰 문제를 왜곡하는 어른이 만든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는 슬픈 나라의 시민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을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욕을 하지 말자. 그들이 있어 정의는 아직 죽지 않고 있으니까.
이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모두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음에도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고, 누구는 무표정이다. 지금 당신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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