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참된 스승을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에게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5. 15. 07:30
참된 스승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이 대한민국의 정부와 대통령에게
오는 5월 15일은 선한 가르침을 준 선생님께 예를 표하는 스승의 날이다. 단순히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도 기억이 남는 선생님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더욱이 오늘이기에 휴대폰 연락처 밑에 있는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붇거나 함께 밥을 먹으며 추억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2014년에 우리가 맞이한 스승의 날은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스승의 날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진도의 저 차가운 바닷속에는 마지막까지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던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승객과 아이들을 안정을 지키며 구조하기 위해 노력한 선생님과 일반 승객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그건 감동을 하는 일이기 이전에 얼마나 엉망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으면 '선원이 아니라 선생님을 비롯한 일반 승객'이 승객과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분노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스승의 날에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는 좋은 선생님과 나쁜 선생님을 이야기하기보다 참된 스승을 가지지 못해 잘못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 쓴소리를 조금 하고자 이 글을 쓰고자 한다.
글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20대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탐탁지 않게 여겨지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나보다 더 어린 학생이 이 상황을 보더라도 지금 우리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태도는 심각히 잘못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같은 날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가 어릴 때 선생님으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당연한 지침이다. 그런데 요즘 이 나라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혹은 장관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을 보면, 어릴 때 선생님으로부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심으로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행동거지를 배우지 못한 듯하다.
왜냐하면, '정말 책임을 통감하며 죄송합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장소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까. 특히 자신의 무성의한 사과를 언론을 이용해 조작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갑작스럽게 흘리는 거짓 눈물로 퍼포먼스를 벌이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속이 시커먼 소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모두 알고 있는데, 혼자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착각하며 '이번에 정말 개과천선했습니다. 죄송합니다.'고 형식적인 사과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선생님께 '거짓말은 나쁜 행동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있을 수 있지만, 남을 악의적으로 속이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은 이것조차 선생님께 배우지 못한 듯하다. (어쩌면 거짓말을 분별하는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정신 나간 사람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진실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열 가지 소식 중 여덟 가지는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야 할 정도로 이 나라가 벌이는 언론 조작과 거짓 행정은 정말 상당히 심각하다. 오죽하면 해외에서 우리나라 언론이 합성해 꾸민 보도를 인용해 '부분적 언론 자유 국가'인 한국의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겠으며, 지난 대선 때 많은 국민이 'UN의 사무기관이 선거관리위원회를 맡아줬으면 한다'고 말했겠으며, 앞으로는 외신을 통해 한국의 사회와 정치 이슈를 읽어보겠다고 하겠는가.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의 신뢰도는 땅으로 떨어지다 못해 땅 밑으로 숨어버리고 말았다. 온통 불신이 만연하는 이 대한민국의 현 모습은 참된 스승에게서 당연한 사실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 한 나라의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고, 국회의원이나 장관 같은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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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는 선생님께 어떤 사람의 잘못은 지적해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옳은 도리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 잘못을 지적하게 되면 '종북 빨갱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고,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 그것을 지적하더라도 제 잘못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윽박지르기 일쑤다. 이런 나라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참, 답답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게 가능한 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정말 제대로 국가 망신을 시키고 있는 건 잘못을 고치지도 않은 채 '아무도 모를 거야. 괜찮아.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 거야.'라고 착각하며 잘못을 덮어버리려는 '쓰레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임을 진정 모르는 걸까. 우리나라 시민만이 아니라 해외 시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끝끝내 고개를 돌려 외면만 하고 있을 뿐이다. 모자래도 이렇게 모자랄 수가 없다.
리더라면, 한 나라의 지도자이자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자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이 나라의 선장이 되어 배를 몰고 있으니 침몰할 수밖에 없는 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여전히 거짓말로 진실을 묻어버리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그저 마지못해 고개만 까닥하며 '죄송합니다'고 겉치레 사과를 하는 그들의 태도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대한민국이 무너질 대로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된 스승을 두지 못한 채, 똑바로 재우지 못한 사람이 나라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고 있으니 되는 게 하나 없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어찌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배우지 못한 채, 이런 식으로 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할 수 있을까. 정말 쪽팔리는 일이다.
오늘 스승의 날에 되돌아본 우리나라의 이 모습은 1년에 한 번 정도 마시는 쓰디쓴 소주 한 잔이 생각나게 한다.
발전하는 나라를 보면 반드시 그 군주는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하고 신하의 충언을 받아들인다. 만약 자신에게 충언을 하는 신하가 없다면 안타까워하며 신하들에게 직언을 하도록 권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신하들의 직언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백 마리 양의 껍질이 한 마리 여우의 겨드랑이 털만 못하다." 진나라 6경 중의 한 사람이었던 조간자가 직언을 하는 신하가 하나도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했던 말이다. 모두가 부드럽고 따뜻한 양의 가죽과 같이 번드르르하게 말을 하지만 여우 겨드랑이의 털처럼 따끔하게 직언을 하는 신하가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뛰어난 군주는 비록 따끔할지언정 신하들의 직언을 구한다. 하지만 망국의 군주는 다르다. 《여씨춘추》를 보면 "망국의 군주는 스스로 교만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스스로 사물을 경시한다"고 실려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망국의 군주에게는 직언을 할 수 없다"고도 한다. 그만큼 군주들에게는 겸손한 마음과 직언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말공부_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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