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일상인 현실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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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현실과 먼 인문학은 가라.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내외로 불신이 만연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보여준 건 과거에 없었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여지껏 외면하고 있던 불편한 진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정부와 기업 사이에서 내려온 부정부패와 썩을 대로 썩은 형식적 관료주의 관행이 만들어낸 대형참사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 많은 사람이 분노를 감출 수 없었고, 하염없이 사람들의 사욕에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슬퍼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 문제는 좀 더 우리가 경계해야 할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세월호 침몰 순간부터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는 정부 기관과 언론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은 정부에 가졌던 믿음을 포기했다.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믿음은 땅으로 떨어지다 못해 땅 밑으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너무 미숙하기 그지없는 대처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이 실망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며칠 전 JTBC 뉴스에서 손석희가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배에 타고 있었던 아이들의 동영상은 '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이들을 방치해 모두 죽게 했다'는 것을 보여주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아니,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선장과 승원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라 해경은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다.


 아마 그저 평범히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번에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이 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을 거다. 왜냐하면, 그저 정부가 말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나라는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신속히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 믿었고, 언론은 진실만을 보도하리라고 믿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 관계자는 '신의'라는 것은 전혀 없고, 언론은 정부의 확성기 혹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을 테니까.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노지


 오늘 글은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이번에 터진 '이 문제'를 통해 정부와 책임 당국의 멍청한 행동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인문학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라는 책이다.


 인문학.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야다. 한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도서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으면서 우리나라에 인문학 열풍이 크게 불었으나 쉽지 않은 내용으로 깜짝 인기에 그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인문학을 접했던 상당수 사람이 '인문학은 나와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흥미를 느꼈던 인문학과 다시 거리를 두었을 것이다. 지금 집에 유행에 따라 구매했던 《정의란 무엇인가》 도서를 몇 장 읽어보지 않고 새 책으로 고스란히 책장에 꽂아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 사회를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거짓투성이인 이 사회의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보기 위해 인문학을 알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왜 인문학이 필요하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당연하다.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많은 인문학 도서가 단순히 지식 자랑에 그치면서 인문학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인문학을 통해 우리가 어떤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지를, 현실에서 인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 책 《인문학이 처음인데요》는 우리에게 인문학이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사회 현상(문제)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인문학이 영향을 미치는지 잘 읽어볼 수 있었다. 책에서 읽어볼 수 있었던 그 내용 중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여가시간이 충분한지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초등학생 상당수가 '전혀 충분하지 않다' 또는 '충분하지 않다'는 응답을 햇다. 하지만 초등학생 학부모 3분의 1 이상은 자녀의 여가시간이 '충분하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의 여가시간 부족은 곧바로 신체 활동 부족으로 이어지고 정상적인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 신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서적 문제다.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다양한 감성적 경험을 해야 할 시기에 학교와 학원의 틀에 박힌 규율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때 아이들이 정상적인 정서를 가질 수 있을까?

과연 아이들이 원해서 이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까? 부모들은 흔히 말할 것이다. 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경쟁사회의 틀을 아이에게 그대로 강요하면서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어른 입장에서의 시각이고 판단이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하기보다는 부모가 정해놓은 틀 안에 넣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자식을 소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부모가 학원이라는 공간에서 학교 수업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도록 강제한다면 사랑하는 대상의 제한, 감금, 통제를 지적한 에리히 프롬의 주장이 그저 과장일 뿐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아이가 더 많은 학원에서 더 오랜 시간 동안 있을수록 기뻐하는 부모의 사고방식이 정신적 고문이나 사디즘이라는 표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p54)


 위에서 읽어볼 수 있는 문제는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육 문제 중 하나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음에도 이 문제가 고쳐지지 않는 건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당시에도 빠른 구조 활동이 세워지지 않고, 시간이 흐른 후 생존 가능성이 0%가 되었음에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건 '똑바로 보아야 할 것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이 필요한 거다. 거짓에 숨어있는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위해서. 단순히 사회 현상(문제)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라는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말이다.



 뭐, 어렵게 말이 나왔지만… 결론은 우리가 이번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좀 더 빨리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거다. 많은 사람이 착하면 바보라고 말하는데, 정말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다. 정부와 언론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민을 개차반 취급하는 것도 너무 쉽게 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통찰력은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언론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닌, 치졸한 인형극을 부숴버릴 힘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인문학을 마냥 어렵게 느끼고, 인문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뭐, 처음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과 씨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꾸준히 읽다 보면 책이 주는 가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믿는다.


 난 처음에 이 책을 만났을 때 '교양인이 되기 위한 내 인생 첫 인문학'이라는 수식어를 보고 '지식 자랑하는 책인가?'는 오해를 했었다. 왜냐하면, 인문학을 모른다고 해서 교양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불쾌했던 그 문구는 편집자의 실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이 책은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지금 당장 우리 현실에서 인문학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거짓이 섞인 현실 속에서 진실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철학을 가지지 못한 리더가 리더의 자리에 앉아 반복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더는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리더는 바꿔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좀 더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보여주는 대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진실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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