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법이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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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기동안 1년치 먼저 배우는 선행학습, 선행학습 금지법 논란에도 여전한 이유


 며칠 전에 인터넷 신문을 뒤적거리다 선행학습관 관련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한 기사에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의 부모님을 불러 교사가 학부모에게 "아이에게 학원을 보내라"고 말하며 학원을 보내지 않는 학부모를 이상하게 보는 모습이었고, 한 기사에서는 1학기 동안 1년치 먼저 수학을 배워온 학생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아주 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학교에 가기 전에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작년에 학교 폭력과 관련해 아이들의 윤리교육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하면서 '아이들이 학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수단을 찾자'는 목적으로 선행학습 금지법이 그 해결책으로 나타났다. 이 선행학습 금지법에 이야기되었을 때 적잖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코웃음을 치며 '법으로 금지한다고 그게 금지가 되느냐?'고 생각하며 비웃었지 않을까. 나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절대 무리'라고 생각했었다.


 선행학습 금지법이 현실이 될 수 없는 건 몇 가지 조건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행학습 금지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행학습 금지법을 통해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지나친 경쟁에서 해방될 수 있고, 그 시간만큼 인성교육에 투자할 수 있기에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또한, 선행학습 금지법이 발행되면 지나친 사교육 열풍도 줄어들면서 사교육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그럴까? 정말 선행학습 금지법을 통해 아이들이 성적 경쟁에서 해방될 수 있고, 인성에 긍정적인 효과와 더불어 사교육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선행학습 금지법, ⓒ구글 뉴스 검색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대답은 명백하게 '아니오'다. 선행학습이 금지된다고 하여 활활 타고 있는 성적 경쟁의 불을 절대 끌 수 없다. 우리 사회 문화 환경은 여전히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하고, 좋은 중학교를 거쳐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게 '잘 사는 길'이라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다. 이 시점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하여 성적 경쟁이 잠잠해지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도 기말고사를 앞둔 많은 학생이 독서실, 학원, 도서관에서 열심히 문제집을 풀며 좋은 시험 성적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선행학습 금지가 과연 이 열기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선행학습 금지법이 아이들의 인성 교육에 효과가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아이들의 인성이 이토록 악화한 건 선생학습을 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을 다 제쳐놓고 오로지 '공부'만을 강요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은 배우기 이전에 수학 문제 푸는 법을 먼저 배우는 이 시점에서 과연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하여 아이들의 인성이 좋아질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사교육비도 마찬가지다. 학부모는 아이들의 학교 시험 성적만을 위해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토익과 텝스, 토플, JLPT 등을 비롯한 각종 외국어 점수와 '스펙'에 도움될 수 있는 여러 항목에서 유리한 고지를 밟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투자하고 있다. 과연 선행학습을 금하는 것만으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겠는가?


 절대 무리다. 무엇보다 선행학습을 통해 그 효과를 알고 있는 세대가 지금은 부모가 되었는데, 그들이 과연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신의 아이가 남보다 뒤처지는 꼴을 못 보는 게 요즘 세대 부모의 모습이다. 머릿속으로 '안 하는 게 아이를 위한 일이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먼저 유명한 학원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강요는 하고 싶지 않지만, 적정 수준에서는 학원을 보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도 선행학습을 어렸을 때 학원에 다니며 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과연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도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어릴 때 선행학습의 효과를 상당히 많이 보았었다. 선행학습을 하기 전에는 70점을 받았던 점수가 학원이나 개인적으로 문제집을 풀며 선생학습을 한 후에는 90~100점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방학 기간에 1년 동안 배울 것을 전부 학원에서 한 번 배우고, 복습까지 하면서… 학교에서 치는 시험에서는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도 학원을 안 다니는 게 아니므로 절대적인 학습량에서 밀려나면, 시험 성적도 당연히 밀려나는 게 당연했다. 우리나라 시험은 생각하는 힘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라 누가 더 암기력이 좋은지를 평가하는 시험이다. 오죽하면 고3 수능 시험지에 답을 찍고 나오면, 배운 건 다 필요 없다는 말이 있을까?


 선행학습을 법으로 금지한다는 말에서 들을 수 있는 취지는 좋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금주법과 금연법도 그 의의는 좋으나 여전히 문화 수준이 제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장과 해운대 모래사장 근처에서 금연과 금주가 법으로 지정되더라도 그 법을 비웃듯이 여전히 많은 사람이 흡연을 하거나 음주를 일삼는다. 아무리 제도가 좋은 쪽으로 개선되더라도 사람들의 문화 의식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문화지체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행학습 금지법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높은 시험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가면 두 다리 쭉 펴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 한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다. 나는 단순히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것으로 아이들의 입시 경쟁 지옥 해방, 인성 발달,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효과를 거두길 기대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 대신 사회 격차 해소와 사회 문화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면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똑바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단 최저임금부터 올리고, 전문학교를 통해 수능 성적이 아닌 한 분야의 특출함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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