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인간, 대한민국 청춘을 위한 공부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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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부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 우리는 왜 죽도록 공부하는가?


 공부. 우리 대한민국의 청춘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공부한다. 아니, 공부에 애초에 기간이라는 것이 없다. 평생 공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그 공부가 끝이 없다. 우리에게 공부라는 것은 태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공부이고, 무덤에 들어가기 전까지 하는 것이 공부다. 이것은 조금의 과장도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다.


 우리 사람은 태어나서 옹알이부터 시작하여 부모님의 지휘 아래 언어를 터득하고, 그리고 다양한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 학문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시기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사회에서 필요한 지식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발맞추지 못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것과 사람과 관계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데에도 큰 벽을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부라는 의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공부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충분히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별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성적지상주의와 결과에만 모든 것을 퍼붓는 잘못된 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짙어 우리 한국의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교육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가까이에 있는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비슷하고, 미국이나 유럽도 그렇다. 그 문제의 핵심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모두 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여러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 나는 그런 공부(교육)에 관련하여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크게 동양과 서양의 공부에 두는 의미와 가치를 비교하여 자세히 이야기하는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공부에 관한 문화적 이야기는 누구라도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분명, 이 책을 자신의 인터넷 서점 카트에 담는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공부하는 인간, ⓒ노지


 우리가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공부의 공부에 의한, 공부를 위한 대한민국'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교육문화를 제일 먼저 시작하여 주변에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교육문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인이 그렇게 죽도록 공부하는 이유를 동·서양 간의 문화적 차이에서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상당히 많은 예와 심리학자들의 의견, 실제로 우리가 겪어보았을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조금 딱딱한 책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펼쳐서 딱 3페이지만 읽더라도 이 책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교육열에 새삼 놀랍다. 대략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의 교육열을 가지고 있는가는 추측하고 있었지만,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추측한 것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인도 등에서 볼 수 있는 교육열은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대치동 수학 학원에서의 경험은 4명의 진행자(하버드 대학생)에게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던 듯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내내 그곳에서 느꼈던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한국의 교육열과 교육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

이들은 진지한 얼굴로 한국의 공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말했다. 또한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의 학구열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억압하고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무시하는 단순 암기, 주입식의 획일화된 한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했다.

이런 의견은 대치동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공부하고 있지만 그들 또한 교육제도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성취를 순전히 개인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공부가 하기 싫거나 자신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공부의 목적이 자기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한다. 내가 공부를 게을리해도 특별히 신경 쓰이거나 걸릴 게 없는 것이다.

그에 반해 동양인들은 자신만의 명예나 부를 위해 공부하기보다는 가족·공동체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공부하기 때문에 나태해지거나 좌절에 빠졌을 때에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낟. 자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의 어굴이 떠올라 차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공부를 한다는 그 목적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해서 동양인들이 서양인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그 노력은 그들이 흘린 땀만큼 높은 학업성취로 이어지는 것이다.


 윗글에서 읽을 수 있듯이 동양의 교육열을 읽다가 서양의 교육열을 읽어보니 다른 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학업열과 성적이라는 결과에 차이가 생기는 것을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크게 문화에서 접근하면서 다양한 과점에서 공부하는 문화를 해석하는 것이 정말 대단했다. 아마 나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도 '이야, 이런 문화적 차이가 있구나.' 하며 책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책은 단순히 우리 동양의 공부 문화를 일반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책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공부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 것과 함께 다른 문화에서 어떤 식으로 수정을 가하면 좋을 것인지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책에서는 직접 '이렇게 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으면서 그 답에 관하여 스스로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이 책을 교육에 종사하는 직업을 가지거나 교육학을 전공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정말 많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말 많은 것을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을 것이고, 자신이 하는 공부에 대해 조금 더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에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나의 생각, 지식 등을 공유하며 힘을 합쳐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그것이 미래 사회에서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느 ㄴ최선의 길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문학교들과 인재들이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서 미래를 찾는 것이다. 따라서 암기 중심의 동양의 공부가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 우리도 세계가 질문을 통한 소통과 협력의 공부에 주목하는 이유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공부하는 인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이 공부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와 역사, 문화적 배경에 관하여 알 수 있었으면 한다. 누군가는 '이런 책을 읽느니 그 시간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겠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영어 단어 1,000개를 외우는 시간보다 더 값진 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공부라는 것에 관하여 조금 더 알고 싶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유대인의 교육 방식 중 일부를 남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인도는 자녀교육을 학교나 학우너과 같은 사설 교육기관에 거의 전적으로 맡기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교육열을 엿보려면 가장 먼저 학교나 사교육 기관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좀 다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비롯해 세계의 유대인들은 자녀교육을 학교나 학원에 전적으로 위탁하지 않고 부모가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즉, 유대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은 학교 선생님도, 종교 지도자인 랍비도 아닌 그들의 부모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교육열을 제대로 느끼려면 학교나 사교육 기관보다 그들의 집, 가족문화를 살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제작진은 그 어떤 것보다 릴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의 교육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릴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고, 릴리가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또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매일 거르지 않고 온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릴리와 함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뿐만 아니라 릴리의 부모는 릴리가 어릴 때는 잠들기 전에 꼭 책을 읽어주었고, 오랜 기간 릴리의 학습을 직접 지도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권장하고 아이가 질문할 때마다 열심히 응대를 해주었다. 또한 릴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었으며, 릴리와 함께 휴일을 보내고, 여행이나 현장학습을 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부모가 공부를 중시하고 높은 교육열을 갖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일방적으로 자녀가 이루어야 할 목표를 세워두고 학원 수업, 과외 등을 시키며 공부를 강요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부모들보다 교육열이 더 뜨거운지도 모른다.

만약 한국의 부모들에게 이스라엘의 부모들처럼 자녀교육을 하라고 하면 어떨까? 물론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에게 쉼 업싱 공부하라고 다그치면서 정작 자신은 하루에 1분도 공부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면서도 자신은 1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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