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에 떠나기 좋은 한밤의 미술관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의 그림 이야기


 어릴 적에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수채화를 배운 적이 있다. 열심히 풀과 나무의 색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랑색부터 짙은 녹색까지 천천히 붓에 묻히는 물의 양을 조절해가며 열심히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시절의 기억. 조금 귀찮은 일이지만 하나하나 표현하는 데에 정성을 다하는 일이 즐거웠다.


 미술학원은 이사를 하면서 그만두게 되었지만, 종종 그때를 추억하며 그림이나 사진이 걸린 전시회를 홀로 구경하기도 한다. 전시관에서 그림과 사진을 보면 ‘나도 미술을 계속했다면 이런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미처 상상도 못 한 구도와 해석에 놀라기도 한다.


 눈으로 보는 예술이란 사뭇 그런 느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나 사람의 모습도 예술가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에 따라 표현이 확 달라진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풍경을 보기도 하고, 낯선 풍경 속에서 익숙한 풍경을 보기도 한다. 때로는 작가의 의도를 알기 어려워 한참 들여다보기도 한다.


 아니, 사실 후자의 말은 거짓말이다. 작가의 의도를 알기 어려운 작품은 잠시 시선을 사로잡기도 하지만,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작품을 지나쳐버린다. 그리고 한 시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시회에서 어떤 그림을 보았는지 잊어버린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는 건 항상 그런 법이다.


 오늘은 그동안 잘 알지 못한 작품 전시회에 가더라도 대충 눈으로 흘겨보고 말았을 전시회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는 재미가 무엇인지 말하는 책 <한밤의 미술관>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으로 사용된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말처럼 더운 여름날에 흥미와 호기심으로 딱 미술관을 방문하기 좋은 시기다.



 <한밤의 미술관>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 ‘내게 위로가 되는 그림은 뭐였더라?’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수많은 그림 중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그림을 찾아보자는 조금은 유치한 계기가 펜을 들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깊이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그림. 평소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황할 거다. 그림과 무언가 인연이 없는 이상 아는 미술가의 이름이 “참 쉽죠?”의 밥 아저씨 혹은 미술책을 통해 보았을 빈센트 빌럼 반 고흐가 대부분이니까.


 이 글을 쓰는 나도 제대로 아는 미술가의 이름이 없다.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은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극장판>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정도로 나는 미술과 큰 인연이 없었다. 비록 어릴 때 미술 학원에 다녔다고 해도 존경하는 미술가 혹은 배우고 싶은 작품이 마땅히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미술이 낯선 이유는 언제나 미술가의 작품은 해석이 난해하고, 오래된 사람들의 작품이 크게 와 닿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이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다. <한밤의 미술관>은 바로 이런 사람을 겨냥하여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림을 소개하며 가볍게 설명하고 있다.


 <한밤의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포드코빈스키가 그린 ‘광분’이라는 작품이다.



 위 그림을 보면 말 그대로 ‘숨을 토하는’ 흑색의 말과 나체의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작가의 이력을 잘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역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전부다. 말의 모습만 보면 ‘광분’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도대체 말을 타고 있는 나체의 여성이 가진 의미가 궁금하다.


 저자는 책을 통해 ‘광분’이라는 작품에 얽힌 사연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광분’은 1894년 3월 18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자헹타 갤러리에 전시됐다. 그림은 대중에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특하고 기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3미터가 넘는 대작이었던 이 그림은 팔리지 않았다. 포드코빈스키가 제시한 금액은 만 루블이었지만 그림을 사겠다고 한 구매자가 제시한 금액은 고작 삼천 루블이었다.

‘광분’이 전시된 지 37일째 되던 날, 돌연 포드코빈스키가 갤러리를 찾았다. 날카로운 칼 한 자루를 손에 쥔 채 그는 곧장 그림으로 돌진해 칼을 휘둘렀다. ‘광분’은 자신을 탄생시킨 이의 손에 갈기갈기 찢겨졌다. 이상한 점은 그가 말 위에 올라탄 여자에게만 칼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광분한 말은 그대로 남겨둔 채.

이 돌발사고 이후 무수한 소문이 돌았다. ‘광분’ 속 여자는 포드코빈스키가 사랑했던 이를 모델로 한 것이며 그 여자와의 사랑에 실패했기 때문에 그림 속 여자를 찢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이목을 끌었다. 실제로 한 폴란드 상류층 집안에서 포드코빈스키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면서 그림을 둘러싼 루머는 더욱 뜨거워졌다. (본문 19)


 이렇게 그림과 얽힌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보면 더 그림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한밤의 미술관>의 저자는 단순히 한 그림을 가지고 작가를 소개하지 않는다. 한 개의 그림과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한 이후 그 작가가 그린 다른 작품을 소개하며 더욱 그 작가에 대해 독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책 <한밤의 미술관>을 읽으면서 내가 단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많은 예술가의 이름과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말한 ‘깊이 간직하고 싶은 나만의 그림’이라는 말에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을 책에서 찾기로 정했다. 그렇게 정한 작품은 아래의 두 작품이다.



 첫 번째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이다. 보통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리거나 미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녀의 작품은 있는 그대로를 그리고 있다. 저자는 수잔 발라동의 그림에 대해 ‘억압에서 벗어난 이의 속 시원한 고발이자 일종의 반란이다.’이라고 말하며 작품을 설명한다.


발라동의 자화상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분명 그 속엔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여러 층위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더불에 그 안에는 세상의 의해 강요받았던 ‘아름다워야 할 의무’를 기꺼이 던져버린 자의 눈부신 자유 또한 담겨있다. (본문 166)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요즘 인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좋은 사진, 행복한 사진, 예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셀카를 촬영해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어플을 이용해 자신의 미를 가장 궁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을 찾고자 한다.


 어쩌면 그러한 집착이 우리를 '아름다워야 할 의무'에 가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거울을 볼 때마다 '조금 더 잘생겨질 수는 없는 걸까?', '살이 안 빠지면 나는 정말 뭣도 안 되는 놈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인 사고 또한 아름다워야 할 의무에서 온 게 아닐까?





 두 번째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은 그림이 아니라 보이는 그대로 사진이다. 이른바 초광각 혹은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한 듯한 이 사진은 넓은 수평에서 말을 삼키게 하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림은 그리지 않더라도 취미로 종종 사진을 찍고 있어 구르스키의 사진이 굉장히 인상 깊이 남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유독 넓게 수평을 강조한 구르스키의 작품은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언젠가 광각으로 이런 사진을 촬영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 현장에 가면 우리의 눈으로도 사진을 통해 느껴지는 장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서울에서 별마당 도서관을 찾았을 때는 그 커다란 높이와 넓이에 놀란 적이 있는데, 만약 구르스키가 별마당 도서관을 그의 표현 기법으로 촬영하면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궁금했다. 이 광활한 사진 앞에 자연히 숙연해지는 느낌을 주는 경외심을 심어주는 구르스키의 작품.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트의 무수한 상품들과 도서관의 셀 수 없이 많은 장서들.

그러나 구르스키의 사진 안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도 각각 하나의 독립된 시각을 부여받는다. 글머에도 그의 사진은 어지럽거나 혼란스럽지 않다. 그 개별자들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진열대위에 놓인 과자봉지들의 크기, 서가에 꽂힌 책들의 모양. 그 어느 것 하나 중뿔나게 튀지 않고 자신이 놓인 풍경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낸다. 마트, 도서관 등 다분히 인공적인 공간에서 어렴풋이 대자연의 환영이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사진에는 해바라기 꽃 속의 씨앗들과 나뭇잎의 잎맥처럼 단순한 반복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본문 213)


 무심하게 그냥 볼 때와 작은 지식과 관심을 가지고 볼 때 미술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동안 미술이 낯설어 미술관과 전시회와 멀리 지낸 사람들에게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계기로 무더운 여름을 맞아 도심 속 피서지로 손꼽히는 미술관을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한밤의 미술관>은 마지막에 ‘우리 동네 미술관’이라는 장을 통해서 어쩌면 가까이에 있을 수도 있는 미술관을 소개한다. 나의 경우 책에서 소개한 미술관 중 가장 가까운 곳은 부산 시립 미술관이다. 그리고 책에서 실리지 않은 김해 문화의 전당에 있는 윤슬 미술관이다. 문득 미술관을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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