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애니메이션
- 문화/문화와 방송
- 2017. 5. 10. 07:30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극찬한 '목소리의 형태', 가정의 달 보기 좋은 감동적인 애니메이션
지난 9일 오후, 영화관을 찾아 <목소리의 형태>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극찬한 작품이기도 했고, 인터넷을 통해 본 PV 영상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청각 장애를 앓는 소녀와 그 소녀에 다가가는 일이 서툴러 괴롭힌 소년이 다시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
일각에서는 <목소리의 형태>가 학교 폭력을 미화하는 작품이라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 학교 폭력 미화보다는 괴로운 기억을 딛고,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타인의 악의를 감당하기에 너무나 착한 소녀와 너무나 서툴렀던 바보 같은 소년.
주인공 니시야마 쇼코와 이시다 쇼야.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인물을 조금씩 가져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진행했다. 쇼야의 바보 같은 행동에 웃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왜 저렇게 쇼코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기도 했다. 아마 극장에서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모든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짓은 언제가 되돌아온다고 했던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쇼코를 괴롭히던 쇼야는 무책임한 담임 선생님과 고개를 돌려버린 친구들에게 그는 괴롭힘을 심하게 당한다. 그러던 와중에도 쇼야는 아직 어린 초등학생에 불과했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는 너무나 미숙한 아이였다.
이야기는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쇼야의 시점이 된다. 쇼야는 사람과 관계 맺는 것을 포기한 채, 오로지 바닥만 보며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공허하게 느끼는 쇼야는 자살까지 하려고 했지만, 그는 수화교실에서 우연히 쇼코를 만나게 된다. 쇼코는 쇼야에게 사과를 하려고 그녀 앞에 선다.
하지만 쇼코는 쇼야의 모습을 보곤 도망치고 만다. 이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모두가 진지하게 보다가 웃기도 하는 장면이었다. 서로 빙 돌아서며 다가가기 어려웠던 쇼야는 조금 더 힘을 내서 쇼코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이때부터 <목소리의 형태>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한 번 강하게 마음에 받은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아무리 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해도 다시금 그 상처는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다. 쇼야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쇼코는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르지만 닮은 두 사람은 쇼코의 여동생 니시미야 유즈루와 학교에서 쇼야가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된나가츠카 토모히로의 도움을 받아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 과정은 굉장히 순조로우면서도 절대 순조로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와 얽히며 사건은 몇 번이고 재점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목소리의 형태>라는 작품에서 가장 악질적인 캐릭터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많은 사람이 한 목소리로 '카와이 미키'라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카와이는 마지막까지도 제대로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게 했다.
나는 <목소리의 형태>를 순수하게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기도 했지만, 어릴 적 학교 폭력을 겪었던 전 학교 피해자로 보기도 했다. 두 주인공이 당한 여러 상황은 비슷하게 겪어본 적이 있었다. 학교에 오니 누군가 바퀴벌레를 잡아 의자에 올려놓거나 근처에서 바보 냄새난다며 수군거리는 아이들.
참, 그때를 생각하면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해야 했는지 아직도 분하다. 나는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 니시야마 쇼코처럼 착한 사람은 아니기에 애써 웃으며 아무런 척하기가 어려웠다. 겉으로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욕을 했고,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가해자들을 찢어발겼는지 모른다.
이미 긴 시간이 지났지만, 솔직히 나는 아직 그때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의 형태> 주인공들도 그랬다. 고등학생이 된 쇼코와 쇼야 또한 여전히 자신을 마주하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주변에 사과하거나 겉돌기만 했었다.
<목소리의 형태>에서 두 사람이 다시 함께 만나 사과를 하고, 진정한 의미로 친구가 되는 과정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작품을 보는 동안 어느 사이에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쇼야와 쇼코처럼 변화하려는 용기를,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고 물으며 아직 나는 어렵다고 느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굉장히 쉬운 말인 것 같지만, 실천하는 일이 무척 어려운 말이다. 완벽히 홀로 다녔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점점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다니고 있지만, 아직은 속내를 털어놓거나 함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나는 적당히 선 긋기를 조심스레 하고 있다.
사람은 절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을 겪더라도 언젠가 나도 모르게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만약 홀로서기가 너무나 힘들 때, 나와 함께 해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쇼코와 쇼야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갔다.
그래서 <목소리의 형태>는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주변 사람을 마주할 수 있는 결말은 여운이 남으면서도 충분한 만족감이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의 심각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하지 않고자 한다.
<목소리의 형태>의 엔딩곡이 나오며 불이 켜졌을 때 많은 사람이 곧장 밖으로 향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작품의 여운에 빠져 있는 듯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뒤에서 나가는 한 관람객은 "봐, 모두 다리 다 풀렸어. 완전 감동적이었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천천히 일어나서 나가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눈물을 훔쳤기 때문일까. 확실히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는 중학생들이 "야, 너 울었지? 솔직히 말해" "사람이 좀 울 수도 있지."라며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그렇다. <목소리의 형태>는 그렇게 남녀 구분 없이, 세대 간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감동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라면, 이번 <목소리의 형태> 또한 극장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너의 이름은> 그 이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목소리의 형태> 공개 PV 영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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