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비참한 대학 생활은 달라질 수 있을까

프랑스 68운동의 원동력이 된 소책자를 통해 오늘의 대학을 보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자유로운 생각을 하기보다 틀에 박힌 생각을 한층 더 단단하게 다지는 과정을 거친다. 자유를 꿈꾸며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수학능력시험을 치렀지만, 대학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스펙을 위한 치열한 싸움이었다.


 정해진 틀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우리 대학생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쉽게 사회의 가치관을 뒤집는 발언을 할 수가 없었다. 대세를 거스르는 행동은 눈에 띄는 행동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 행동을 한 사람은 집단에서 제외되어 차별을 받는다. 그게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진 방식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 크게 인식이 바뀐 게 별로 없다. 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듣는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를 하고,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를 힘겹게 해내고, 시험 기간이 되면 시험을 치고,방학을 맞이하면 '야호! 드디어 쉴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 비싼 돈을 스스로 내고 다니는 대학임에도….


 '대학생'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사명감을 품는 학생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많은 학생이 솔직히 평소에 '대학생'이라는 이름이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시간표에 잡혀 있던 강의가 공강이 되며 신나서 떠들었다. 우리는 여전히 교육의 소비자로서 행동하며 권리를 잃은 채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에 <비참한 대학 생활>이라는 제목이 상당히 강해 보이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68운동의 계기가 된 소책자를 옮기고, 거기에 옮긴이 해제를 달아서 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해제를 읽고 본문을 읽어도 되고, 본문을 읽고 해제를 읽어도 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프랑스 68운동의 개념을 전혀 몰랐었는데, 책을 세 번이나 읽은 지금도 글을 통해서 어떻게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고 느낀 것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대학생들의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68운동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68운동은 대학생들이 대학의 자율을 지키기 위해서 일으킨 학생 저항 운동으로, 당시 60년 도에 일어난 여러 학생 운동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당시 저항 운동은 무조건 강경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운동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축제처럼 펼쳐져 그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 선언은 68운동과 상당히 닮았다. 대학생들은 밖으로 나와서 정부 인사가 개입한 대학의 자율을 지키기 위해서 목소리를 외쳤고, 이미 구체제에 깊이 물든 사회 전체에 대해 저항을 하며 소외당하는 계층에 대해 저항을 하고 있다.



 그동안 대학은 언제나 거짓 의식에 머물러 있었다. 대학에서 우리는 조용히 공부하면서 스펙을 쌓아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장소가 되어 왔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정치에 관심을 두기보다 학점관리를 잘 받기 위한 장소에 불과했다. <비참한 대학 생활>을 읽어보면 아래의 글을 만날 수 있다.


그가 받는 기계적이고 특화된 교육 수준 역시 과거의 보편적 부르주아 문화 수준에 비해서 형편없이 낮아졌고, 그가 대학에 진학할 때 다녔던 고유한 지적 수준에 비해서도 낮아졌다.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실인 경제 시스템이 교양이 결여되고 사고 능력을 상실한 대학생들의 대량생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제도화된 무지의 기구로 전락했고, '고급문화 자체는 몇몇 교수들이 지식을 대량생산하는 가운데 사라져간다. (본문 32)


정치의식은 비록 그것이 거짓인 경우에도 대학생들에게 순수한 형태로 발견된다. 그렇기에 대학생은 죽어가는 조직들은 소위 공산당에서 프랑스전국대학생연합까지의 유령과 같은 관리자들이 조종하기 쉬운 이상적인 기반을 구성한다. 이들 조직들은 총체적으로 대학생들의 정치적인 선택을 설정한다. 일탈을 저지르고 '독립'을 지향하긴 하지만 대학생은 한차례 저항의 흉내를 내고는 한순간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질서 속으로 순순히 편입된다. (본분 42)


 첫 번째 글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는 대학의 모습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대학은 경제 시스템 속에서 교양을 갖추기보다 경제 시스템에서 돌아가기 위한 부속품을 만드는 데에 최적화되어 있다. 우스갯소리로 대학이 '취업 학원'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두 번째 글은 반값 등록금 논란부터 일파만파 퍼졌던 대학 저항 운동인 한순간에 꼬리를 내리고 물러나는 우리의 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대학생은 모두 각자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과연 그것이 우리는 어느 정도로 진실한 것인지 모른다. 지금은 너무나 명백한 하나의 잘못에 함께 분노할 뿐이다.


 그래서 한차례 저항의 흉내를 내고는 기존의 질서 속으로 순순히 돌아간다. 이러한 모습을 한국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냄비 근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과연 오늘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대학생과 각 계층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그냥 한순간에 불과한 걸까?


 한국 사회에서 냄비 근성은 늘 문제로 손꼽힌다. 어떤 개혁을 이루어나가는 과정과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냄비 근성은 좀처럼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게 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냄비 근성에서 벗어나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갈 수 있었으면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이 비참한 생활을 어느 정도 마무리 지으면서 달라질 수 있는 최초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유신 독재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된 것도 학생 운동이었다. 이제는 그 독재 시절의 잔재를 향해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고, 사회 각 계층도 동참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참한 대학 생활>을 어떻게 읽었다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읽었다. 책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후기를 쓰는지에 정답은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비참한 대학 생활>이 책은 오늘 우리가 고민하며 읽어볼 책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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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nk. J 2016.12.03 01:09 신고

    복수전공중인 철학과에서는 취업얘기는 뒤통수 후려맞기 좋은 주제였었죠. 물론 20년 전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실제로 뒤통수를 때리시던 화끈한 교수님도 이제는 토익을 조금은 신경쓰라 하실정도니
    사회에선 인문학이 이렇다 저렇다 하지만, 부마항쟁의 시초선이 되었던 모교에서 철학과를 대하는 형편을 보면
    현실이 개탄스러워 안타까움밖에 남지않습니다.

    • 노지 2016.12.03 09:32 신고

      어느 시점이나 지금은 다소 안타까움이 남는 모습이 많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전혀 상관 없는 수업에서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요...

  • 무예인 2016.12.06 20:09 신고

    00학번으로 대학생활을 지낸 사람입니다
    대학생활이 점점 더 빡빡해지는 사회가 아쉽네요

    • 노지 2016.12.06 20:49 신고

      하하... 앞으로도 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책덕후 화영 2016.12.07 21:03 신고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저같은 장애인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저는 차라리 대학교때 공부를 덜 하고 그 시간에 프로그래밍 실력을 더 키웠더라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공부하느라고 어줍잖게 실무적인 실력도 제대로 기르지 못하고 결국 4대보험 안되고 근로계약서 없고 밥값떼고 추가근무에 대한 수당을 일절 안주는 이상한 회사 들어가서 착취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 회사에서 실력을 쌓을만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최저임금 정도 받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을 게 눈에 보여서 결국 공무원공부 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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