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바로 한 명의 시티헌터이자 각시탈입니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4. 5. 14. 07:30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짠'하고 등장할 영웅을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지만, 가끔 정말 마음에 드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드라마를 만나게 되면 정말 열심히 본다. 그렇게 본 드라마 중에서 아직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드라마는 《시티헌터》, 《각시탈》, 《학교 2013》, 《굿닥터》 등의 드라마가 있는데, 여기서 《굿닥터》를 제외하고 모두 우리 사회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내용을 담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시티헌터》는 주인공 역할을 맡은 이민호가 기득권 고위 인사들의 비리를 캐고 다니면서 그들을 사회에 폭로하는 이야기였고, 드라마 《각시탈》은 조선을 지배하는 일본의 충실한 개노릇을 하며 시민을 괴롭히는 친일 세력을 벌하는 이야기였고, 드라마 《학교 2013》은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학교 문제를 다시 환기해 주는 이야기였다.
단순히 드라마 내에서 볼 수 있는 '픽션'으로만 한정하기에는 드라마가 담은 그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모습이었기에 나는 정말 한 편 한 편 드라마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아마 나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드라마를 통해 볼 수 있는 주인공의 활약에 '악마'와도 같은 그들이 무너지는 모습에 통쾌함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한다.
ⓒGOOGLE IMAGE SEARCH
그러나 그렇게 문득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드라마의 배경과 비교해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을 쉬게 된다. 특히 지금 2014년 우리 대한민국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드라마에서 나왔던 '설정'보다 더 하면 더 했지, 절대 덜 하지 않는 부패와 악이 지배하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2014년 4월에 터진 세월호 침몰 사건은 단순히 선장과 기업의 잘못으로 벌어진 재난이 아니다.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방치한 채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연연하는 정치 인사와 관리 당국의 잘못으로 벌어진 재난이다. 특히 '자연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은 '인재'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굳이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오늘도 거리에서는 정부에 책임을 묻는 한 명의 소시민이 그렇고,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한 명의 유가족이 그렇고, 세종대왕상에 올라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한 명의 대학생이 그렇다.
ⓒ아이엠피터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침몰하는 청와대의 모습은 정말 다른 말 할 것 없이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두컴컴한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있음에도 기득권과 정치인들은 서로 손을 잡고 '괜찮다'고 사람들을 향해 주장하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고 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내가 이전에 말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악마의 진짜 모습이다.
그저 평범히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회적 부패를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며 살았을 거다. 지난번 《나는 한국이라는 이름의 악마를 보았다》글에 달린 댓글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런 부정부패를 '사회생활의 일부다.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어느 나라나 똑같다. 여기에 적응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어른이다.'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이렇게 며칠 전의 댓글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정말 답이 보이지 않는 슬픈 세상에서 슬픈 어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듯하다. 사회적 부패를 '사회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며 내가 그 희생자가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저 타는 듯한 통증을 가슴으로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아야 하니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뭐,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어도 그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억울하면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의 횡포가 벌어져도 '억울하면 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우리나라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쌓아올린 나라가 대한민국이니 지금의 상황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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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동안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외면했던 사람들이 바뀌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대하는 무책임한 거짓말만 늘어놓는 정부, 그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권력에 빌붙어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언론이라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본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는 거다.
그저 평범히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도 '이건 아니다.'라며 거리로 나와 작은 촛불을 밝히고, 학교와 학원과 도서관에 앉아 공부만 하던 학생들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가 바꾸겠다'며 거리로 나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모습이 보여주는 건 단 하나, 이 나라는 지금 철저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단순명료한 사실이다.
그러나 오직 우리나라 언론만이 이 사실에 침묵하고 있고, 책임과 제대로 된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라의 안정과 경제를 위협하는 불순세력이라며 헛소리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미 외신에서는 한국의 무너져 가는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어찌 우리나라에서는 몇 개의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참으로 안타깝다.
ⓒ오마이뉴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한 대학생들이 있었다. 바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앞에서도 언급한 세종대왕 동상에 올라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던 학생들이다.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도 적잖았지만,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어떤 사람은 이들을 향해 정치색을 입히며 그 의도를 왜곡하려고도 하지만, 이들이 원했던 건 그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바른 세상'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위기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이 원하고 있는 건 '짠'하고 등장할 영웅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시티헌터》에서 볼 수 있었던 책임 회피만 하며 시민을 탓하는 무능한 정부의 서커먼 속을 낱낱이 파헤쳐 세상에 공개해줄 시티헌터를, 드라마 《각시탈》에서 볼 수 있었던 권력에 빌붙어 힘없는 시민을 억압하는 세력을 벌해 줄 각시탈을 말이다.
아니, 이미 우리 대한민국에는 그런 영웅이 존재하고 있다. 누구냐고? 바로, 주변의 손가락질과 권력의 횡포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사람 사는 세상'과 '정의'와 '잘못을 인정하고 똑바로 행동하라'고 외치는 모든 사람이 그렇다. 지금도 거리에서 조용히 우리를 향해 "당신은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괜찮습니까?"라고 묻는 그 한 명, 한 명이 바로 이 시대의 대한민국이 원한 '짠'하고 등장한 시티헌터이자 각시탈이다.
오늘도 우두커니 그 자리에서 권력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맞서 홀로 싸우는 그 영웅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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