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학벌주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할까?
- 시사/학교와 교육
- 2012. 4. 23. 07:26
왜 우리는 학벌주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할까?
우리나라의 교육은 시작과 끝은 '명문대, 좋은 학벌'이다. 아니, 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좋은 직장(이름있는 직장)'을 가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서 매일같이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학벌주의라고 부른다. 학벌주의는 출신 학교의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나 태도, 개인의 재능이나 능력은 잘 고려하지 않고 높은 학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나 태도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학벌주의는 고등학교 때부터 심해지지만, 최근에는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그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다. 왜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느냐고? 잠시 함께 생각해보자.
유럽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이 대학은 세계 순위권 대학이기 때문에 좋다."부터 시작해서 "이 대학은 어떤 학과가 정말 좋다."는 식으로 순위가 매겨지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모든 것의 순위를 하나하나 매겨서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이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나라에서는 대학은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더욱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가는 곳이다. 그래서 어느 대학마다 어떤 학과가 좋은지 상대적으로 순위가 매겨져 있다. 아니, 순위가 매겨져 있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냥 무조건 인서울에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대학이면, '좋은 대학'이라고 부른다. 거기서 손에 꼽히는 하늘(SKY)를 가게 된다면, '천재다.', '인재다.', '쟤는 성공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상당수가 신용불량자에 실업자, 생각없이 대학 도서관에서 스펙쌓기나 고시공부만을 하고 있다. 그것이 천재, 아니, 인재가 성공한 모습일까?
아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람들의 착각은 좀처럼 바뀌려고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버리지 못한 채, 붙잡고 있는 학벌주의 때문에 말이다. 우리사회는 오래전부터 학벌주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그런 잘못된 학벌주의 사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냐고? 이전부터 우리는 '대학을 나오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대학만은 가려고 아등바등 쳤으며,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시 되자,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하늘(SKY) 대학을 포함한 순위권 대학을 가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사람들의 한 가지 착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대학을 안나와서 이렇게 살고 있다.' 혹은 '내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다.'라는 착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명문대를 나와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학벌주의에 찌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잘못된 고정관념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지금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벌주의 사회'를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열등감을 느끼면서 '차별'이라는 벽을 만들어 '학벌주의'를 고집하는 것도 있지만,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차별감을 느끼게 만든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이전에 읽었던 '와주테이의 박쥐들'이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쓰여져 있다.
명문중? 명문고? 명문대? 그런 곳을 나와야만 엘리트고 이 나라와 이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당신, 노동자와 함께 땀 흘리고 숨 쉬던 우리의 기억 속 그 노동운동가가 맞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을 때 "나 사대부요, 나 양반이요" 하던 것들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반대했는지 아시는가? 그들이 갖고 있던 한자를 쓸 수 있는 능력자체가 권력이고, 기득권이기 때문에 온 백성이 글을 깨우치게 되면 권력과 기득권을 빼앗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국을 따르지 않는다거나 한글이 오랑캐의 글자며, 군주가 성리학을 등한시한다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이유 떄문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엘리트? 명문대? 그런 것들이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이고 기득권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에 헌신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엘리트 제일주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아, 잊고 있었다. 변절했지!
그러나 우리 사회가 절망적인 이유는 변절한 김문수만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위 진보 세력이라고 하는 인사들도 이와 같은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번 기회에 그 돼먹지 않은 사상을 대놓고 까봐야겠다.
고졸 출신인 김대중과 노무현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 곳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이런 공격은 보수 세력에서만 터져 나온 것이 아니다. 진보도 그 처절한 엘리트 의식 때문에 두 사람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도 못한 너는, 명문대 졸업장이 없는 너는 사회 지도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개 같은 논리인 것이다. 도대체 대학교를 가지 않은 것인 그 사림의 인격과 리더십, 능력, 자질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뭇 사람들 눈에는 이러한 사실이 꺼림칙하고 불손하게 여겨졌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바로 위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그러한 차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사회가 좀처럼 학벌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항상 기득권이 노리는 것이었다. 많이 갖고 편안한 사람은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변화가 생기면 내 것이 줄어들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구글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 제국주의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다스렸던 방식으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바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는 작은 변화가, 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학벌주의 사회를 통째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고전혁명' 이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은 말이 있다.
뉴턴을 통해 우리는 사과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과가 주어졌을 때, 과연 뉴턴처럼 사과를 바라볼 수 있을까? 사과를 과일로 인식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과를 뉴턴처럼,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바라볼 때, 그때야 비로소 혁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것을 얻는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 그것이 바로 혁명이다. 혁명이란 생각을 깨우는 일이다.
우리가 학벌주의 사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남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신부터 작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어야 하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세상으로 향하는 순간, 나, 우리, 세상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움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혼자서는 사력을 다해 밀어도 굴릴 수 없었던 변화의 바퀴는, 모두가 힘을 합치는 순간 가속을 내며 굴러간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지금껏 우리를 억압해왔던 '학벌주의 사회'를 타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명심하라. 지금 우리사회에 판치고 있는 '학벌주의'는 우리가 잘못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변화는 생각을 달리하는 데부터 시작된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순간 뭘 하고 있는 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다.
맹자는 이런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천하고 작은 것은 입과 배이고 귀하고 큰 것은 마음과 뜻이다."
그렇습니다. 남에 비해 작아보이거나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내 모습 때문에 가슴앓이를 한다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겁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유행어처럼 남에제 진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스스로에게 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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