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읽고
- 문화/독서와 기록
- 2023. 12. 12. 10:53
요즘 인문학 도서 시장에서 '쇼펜하우어'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지난달 폐업을 알렸던 예스24 중고서점 서면점을 찾았을 때도 사람들이 '쇼펜하우어'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을 검색해 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는데, 공자와 노자에서 시작해 니체와 마키아밸리를 지나 이제 우리는 쇼펜하우어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 듯하다.
그렇다면, '쇼펜아우어'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오늘 읽은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 적힌 소개글을 짧게 옮겨 본다면 다음과 같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1788년 율버의 항구 도시인 단치하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략)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독창적이었으며, 니체를 거쳐 생의 철학, 실존철학, 인간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는 유복한 사업가로 아들에게 자기 사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쇼펜하우어는 상속한 유산을 생활 수단으로 삼아 평생 철학과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쇼펜하우어는 금수저였다. 유복한 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먹고사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배부르게 철학을 고민할 수 있었다. 오늘날 가난한 사람들이 인문학적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인문학적 사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먹고살 걱정이 없다 보니 불필요한 고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면서 철학자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짧게 방황하기는 했어도 다시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갔다.
그렇다 보니 쇼펜하우어는 대단히 긍정적인,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외칠 것 같지만, 그가 남긴 기록과 철학을 본다면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다. 그는 절망을 겪지 않고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쇼펜하우어 아포리즘>라는 책에서 읽어볼 수 있는 그의 이야기는 대체로 자신과 절망과 행복을 말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아포리즘>라는 책을 유행에 따라 읽은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에 당황할 수도 있다. 보통 자기계발 시장에서는 '나를 믿고 노력하면 행복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기 마련이지만,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읽을 수 있는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포기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첫 장을 읽어 본다면 쇼펜하우어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라고 말하면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과 절망을 뛰어넘어야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언뜻 보면 평범히 읽어볼 수 있는 인문학 도서와 자기계발 도서와 닮았지만,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서 읽어볼 수 있는 여러 시점에서의 이야기는 날카롭게 우리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리고,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나를 볼 것을 요구한다.
책에서 읽어볼 수 있는 하나의 글을 읽어보자.
우리가 인간 상호 간의 관계 맺기에 서투른 까닭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거나, 심술을 부리거나, 교만하거나, 질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고집만 부리는 원인은,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만났을 때 그를 시기하고 어떻게든 깎아내리려고 고집을 피우는 원인은, 자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나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며, 허영이며, 교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본문 107)
쇼펜하우어의 말은 날카롭고 직설적이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인간관계가 서투른 편이라 낯선 사람과 만나는 일은 대체로 꺼리는 편이다.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서 대학 시절에는 여러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지금도 밖을 다닐 이유를 만들고 싶어 지역 서포터스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더라도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할 수 없었다. 유튜브 영상을 찍으면서 내 모습을 담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달렸던 악성 댓글이 두려운 것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나에게 자신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다면 항상 상대방의 눈높이를 생각했던 것 같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배려하는 자세는 필요하지만, 그 배려가 나를 포기하고 상대방에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은 오히려 잘못된 일인 셈이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읽어 본다면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실존적인 형태로 우리 자신을 마주하며 고민해볼 수 있다.
이 책은 빠르게 읽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책을 읽으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바탕으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친절히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독자가 고민하고 답을 내리도록 요구한다.
어떤 장에서는 쇼펜하우어가 "그냥 자는 게 좋다"라고 말하거나 "페이지를 덮어 버리면 그만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결론을 내린 장에서도 우리는 고민하면서 그의 방식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인문학적 사고를 키우는 데에 아주 매력적인 책이지만, 절대 독자를 단순히 위로하는 책은 아니다.
오늘 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와 아픔을 누군가가 "괜찮아."라며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여 주는 듯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이라는 이름의 책은 맞지 않다. 하지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내 뒷통수를 한 대 치면서 "괜찮아!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일 뿐이다."라며 오늘을 살라고 말하는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딱이었다.
내가 어떤 책을 원하고,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고민해본 이후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을 읽을지 말지 정할 수 있도록 하자. 이 책은 한 번에 몰아서 읽기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10분 독서 혹은 잠자기 전 30분 독서를 위한 책으로 알맞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어떻게 읽을지는 당신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읽은 아래의 글을 남기고 싶다.
인생은 실수와 우연으로 덮여있다.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실수의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실수 뒤엔 항상 우연이라는 것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우연히 무슨 짓을 저질러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수를 성공으로 바꿔줄지도 모르고, 완벽한 계획을 뿌리부터 틀어지게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확신을 가질 필요도 없다. 우연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괴테의 말처럼 그냥 안장을 얹고 말을 타면 된다. (중략)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 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은 그 자체로 징계다.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는 비극이 된다. 명백히 저지른 실수에 대해 변명하거나 축소하거나 미화할 필요는 없다. 깨끗이 인정하고 징계를 받고 우연히 생긴 비극으로 인생의 페이지에 적어둔 뒤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본문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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