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보기 좋은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 문화/문화와 방송
- 2023. 10. 12. 20:51
지난 한참 더웠던 여름이었던 8월에 일본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가 한국에 정식 개봉했다. 일본 영화는 상영관 수가 많지 않아 일찍 가까운 롯데시네마를 찾아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보았는데, 영화는 여럿 한국 영화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느리고 지루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가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서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본 이후 나는 10월에 맞이한 생일을 맞아 일찍이 VOD로 소장 구매를 했었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다시 한번 천천히 보았다. 당시 영화를 보기 일주일 전에 몸이 너무 아파서 울면서 응급실을 찾아 괴로워하기도 했고, 33번째 생일을 혼자 보내면서 문득 이렇게 아파하면서 사는 게 의미 있나 싶었다.
자칫 오래전에 앓았던 우울증이 다시 재발해 나를 괴롭게 할 것 같아 나는 무언가 대안을 찾아야 했다. 평소라면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겠지만, 당시에는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할 의욕도 힘도 없었다. 그러다 내가 떠올린 것이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는 듯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다시금 보는 일이었다.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는 제목 그대로 강변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 무코리타를 찾은 주인공 야마다가 그곳에서 조용한 일상을 반복하는 모습을 그린다. 언뜻 본다면 죽지 못해 살아가는 듯한 야마다의 모습이 나와 닮아 괜스레 마음을 두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런 야마다의 일상을 조금씩 흔드는 인물이 바로 옆집에 거주하는 시마다였다.
좋게 말한다면 넋살이 좋은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단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뿐인 이웃이 시마다였다. 야마다가 작은 아파트에 들어온 첫날부터 "목욕탕 좀 빌려주지 않을래?"라며 뜬금없는 부탁을 하면서 야마다를 당황하게 했는데, 시마다는 좋은 의미로 야마다를 조금씩 바꾸게 된다.
야마다는 어떤 사정으로 연고도 없는 작은 어촌으로 찾아와 젓갈 공장에 다니면서 단순 작업을 반복하며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야마다에게 수시로 작은 자극을 가하면서 그가 '오늘'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인물이 참견쟁이 시마다였다. 야마다는 시마다의 행동에 짜증을 내면서도 그와 함께 하는 식사에 익숙해졌다.
무코리타에서 화려하지 않아도 조용하게 성실히 하루하루 살아가던 야마다는 자신의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은 이후 다시 한번 삶을 고민한다. 고독사를 했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들은 이후 넋을 놓았던 야마다에게 조언을 해준 인물도 시마다였다. 나는 시마다가 야마다와 했던 이야기 중에서 아래의 대화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시마다 : "사소한 행복들을 자잘하게 찾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어. 이렇게 빠듯한 상황이라도, 가난한 데다 고독하면 정말 막다른 길이지만, '저는 돈이 없어요' 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어떻게든 돼."
물론, 누군가에게 시마다의 말은 허울 좋은 궤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사는 낙을 느끼지 못할 때는 커다란 행복을 바라는 것보다 정말 사소한 행복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 먹은 빵이 맛있었다거나 오늘 읽은 책이 좋았다거나 오늘 하늘을 올려다보니 무척 맑아서 좋았다거나… 말이다.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기 때문에 몸이 너무 아파 괴로울 때면 정말 그냥 죽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 몸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일도 하지 못하니 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피를 토하며 울부짖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문득 베란다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너무 가볍게 몸을 밖으로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서웠다.
곁에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그나마 좀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 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는 책을 읽으면서 하루하루 살아오는 것을 중학교 시절 때부터 반복을 해온 덕분에 책의 다음 이야기를 읽는 재미로 오늘을 겨우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매일 죽을 것 같아도 살다 보니 살아졌다.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본다면 야마다가 젓갈 공장 사장님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사장님 : 그렇게 하루하루 성실히 일하다 보면 또 다음 달이 오고, 그러다 내년이 오고, 순식간에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지.
야마다 :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사장님 : 응, 있지. 있고 말고. 하지만 그 의미는 10년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매일 꾸준히'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그 의미를 알려면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해.
의미가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도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값진 시간이었다는 걸을 깨달을 수 있는 때가 온다고 사람들은 곧잘 말한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유명한 인사들도,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평범하고 특색 없는 오늘은 누군가는 간절히 바랐을 오늘이기에 오늘을 성실히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강변의 무코리타>에서 야마다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사장님도 그런 사람이었다. 작은 사건으로 낙담한 야마다에게 강한 질책이 아니라 작게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으로 야마다를 격려하는 사장님의 말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건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으니까.
단지, 우리가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주변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고, 혼자 고독하게 살아간다고 해도 일단은 하루하루 성실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아무리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해 오늘을 살아가는 괴로움이 몸을 휘감은 채 괴롭혀도 그냥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야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보다 조용히, 천천히 마음이 정리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조용히 밥을 먹으면서 쌀밥에 감탄하는 야마다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기도 했고, 야마다가 무코리타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무의미한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은 눈부시게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오늘 하루만 하더라도 "아, 그냥 죽고 싶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죽으면 빈번히 나를 괴롭히는 몸의 고통도, 돈이 없어 매번 힘들다는 소리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죽는 것을 선택하기보다 일단 어찌어찌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일단 살다 보면 어찌어찌 하루는 살아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33번째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오늘을 고민하면서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에 집착한다. 내 삶을 붙들어 놓는 것은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아니라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강한 집착이니까. 그 과정에서 만난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는 참 좋은 영화였다.
특별하지 않고 수수한 영화이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 책을 읽어도 차갑게 텅 비어 버린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영화 <강변의 무코리타>를 볼 생각이다.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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