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로 반 고흐를 만나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9. 7. 2. 17:06
반 고흐. 미술에 대한 관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미술가의 이름이다. 그의 대표적이 작품으로는 해바라기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을 거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처음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해바라기 그림을 소재로 한 한 어떤 작품을 만난 덕분이다.
만약 그 작품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는 지금까지 중학교 시절에 미술 교과서에서 한 번 읽었을 ‘반 고흐’라는 이름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평범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일반인인 우리에게 미술가의 이름이나 그 미술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작품의 이름은 낯선 존재이다.
보통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을 그린 미술가의 이야기를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그 미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 알 수 있고, 작품을 그린 미술가에 대해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라는 거다.
하지만 오늘 읽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잘 알려진 반 고흐의 일화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각색되어 위대한 화가로 비쳐진 반 고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있는 그대로의 반 고흐를 알고자 했다. 그래서 저자가 손을 댄 건 반 고흐의 편지로, 그 편지를 선별해 번역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번역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이름의 책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위대한 화가 반 고흐’가 아니라 ‘고민하고 노력하는 소박한 화가 반 고흐’다.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은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는 동안 내 안에서 ‘반 고흐’라는 인물이 완전히 새롭게 정의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반 고흐’라는 인물은 그저 중학교 시절에 한 번 보았을 미술책에 적힌 이름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읽을 수 있는 반 고흐의 이야기에 있다. 반 고흐가 쓴 편지를 그대로 번역하고 선별해서 엮은 이 책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딱히 상관없는 책이다. 하지만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늘 그렇듯이 일단 첫 장부터 호기심을 갖고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첫 장의 제목 ‘새장에 갇힌 새, 화가 입문 이전부터 보리나주까지 1872년 8월~1881년 4월’ 편에서 읽은 이야기에서 이미 나는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빠지고 말았다. 때때로 접한 적이 있었던 평론 같은 책에 적힌 딱딱하고 죽은 반 고흐가 아니라 살아있는 반 고흐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장에서 읽을 수 있는 반 고흐가 화가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글을 일부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왜 대학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느냐고, 왜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을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 그 문제라면 학비가 너무 비싸다는 대답밖에 할 말이 없다. 게다가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지금 내가 택한 길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을 것 같지도 않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만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 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이 아닐까. (본문 20)
이 글에서 읽을 수 있는 반 고흐가 화가의 길을 걷는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한 각오는 심짓 다부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직 화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전의 그가, 제대로 그림을 그리면서 만족조차 하지 못해 가족과 주변 사람의 기대와 차이가 나서 갈등을 겪은 그의 모습을 편지 한 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그녀만을 원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여자에게 가고 싶어하는 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 않느냐고 혼자 따져보기도 한다.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겠지. 뭐가 중요하지? 논리인가, 나 자신인가? 논리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가, 내가 논리를 위해 존재하는가? 비합리적이고 분별 없는 내 성격에 어떤 이유도, 의미도 없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빌어먹을 벽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고,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하거나 할 것이다. (본문 40)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책에 옮겨진 고흐의 편지를 천천히 읽다보면, 그동안 방송에서 화려한 조명을 비추며 강조한 성공한 천재 화가 반 고흐와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반 고흐의 모습에 다소 놀랄지도 모른다. 반 고흐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삶에 대한 자세는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림이란 게 뭐냐? 어떻게 해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우리가 느끼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이에 서 있는, 보이지 않는 철벽을 뚫는 것과 같다. 아무리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는 그 벽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인내심을 갖고 삽질을 해서 그 벽 밑을 파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럴 때 규칙이 없다면, 그런 힘들 일을 어떻게 흔들림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겠니? 예술 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일은 분명한 의지를 갖고 있을 때 이룰 수 있다. 결코 우연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규칙이 먼저 이쏙 인간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인지, 인간의 행동에서 규칙이 추론되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규정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는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사고력과 의지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본문 93)
반 고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읽는 데에 어려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없었기 때문에 ‘반 고흐’라는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가 더 컸다고 생각한다. 이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으면서 대단히 반 고흐에게 흥미가 샘솟았다.
처음에는 책을 순서대로 읽다가 뒤로 가서는 뒤에서부터 읽어보기도 하고, 그림이 첨부된 페이지에서 한 번쯤 지나가다 보았을 그림에 멈춰서 읽어보기도 했다. 저자는 편지를 시간 순서로 배열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떻게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도중에 뒤에서 읽은 반 고흐의 작품으로 유명한 해바라기와 관련된 편지 중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의 쓴 글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다발로 묶인 네 송이 해바라기를 그리는데, 예전에 그린 마르멜로 열매와 레몬이 있는 정물화처럼 노란 바탕이다. 이번 그림이 아주 크기 때문에 독특한 효과가 난다. 마르멜로 열매와 레몬을 그릴 때보다 더 단순하게 그리기도 했고.
(중략)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 완성한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니. 아주 중요한 그림으로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빌리지도 못하다니.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너무 짧고, 특히 모든 것에 용감히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본문 206)
이 글을 통해서 반 고흐가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품은 감상과 함께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예술가들이 겪은 어려움에 대한 한탄을 알 수 있다. 어떤 각색도 되지 않은 편지를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반 고흐의 이야기는 그림에 대한 상상과 함께 정서적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반 고흐’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그가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고자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굳이 어려운 미술 평전을 읽지 않았지만, 그림에 대한 해설을 읽지 않았지만, 앞으로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한 흥미를 품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비록 ‘반 고흐’라는 인물에 큰 흥미가 없더라도 책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무척 마음에 들 책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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