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하나하나에는 이야기가 있다

빨강머리 앤 딸기 레이어 케이크 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구 중에서 식욕은 우리가 가장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욕구 중 하나다. 배고플 때 맛있는 밥 한 끼를 배부르게 먹는 것만큼, 우리가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일은 달리 찾기가 쉽지 않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서는 누구나 음식 앞에서는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오늘 읽은 테마 동화 <빨강머리 앤 딸기 레이어 케이크 편>은 어릴 적에 책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본 <빨강머리 앤>의 에피소드 중에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 28개’를 간추려서 읽을 수 있도록 한 책이다. 설마 이 나이가 되어서 다시 <보노보노>만 아니라 <빨강머리 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책에서 읽을 수 있는 앤이 처음 초록 지붕 집에 와서 먹은 음식, 그리고 절친인 다이애나와 함께 먹은 아이스크림, 도시락 등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그려진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다. 테마 동화 장르라서 아이들이 읽는 책으로 여겼지만, 나 같은 어른이 읽어도 사뭇 마음을 빼앗길 수 있었다.


 TV에서 방영한 <빨강머리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본 지가 도대체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에 ‘보았다’는 기억은 남아 있지만, 어떤 이야기를 가진 작품인지 솔직히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테마 동화 <빨강머리 앤 딸기 레이어 케이크 편>을 읽는 감회가 상당히 새로웠다.



 음식과 관련된 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날 내가 접하는 부류의 이야기는 에세이를 읽어도 뭔가 속이 답답해져 하늘을 바라보게 되지만, <빨강머리 앤>은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행복한 미소가 전해지는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지게 했다.


 앤과 어떤 음식의 이야기에서 ‘아!’하며 천천히 음미한 이야기는 잠시 머물러있기도 했다.


앤 : “우아, 초콜릿 캐러멜이군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앤 : “저, 아저씨! 다이애나한테 나눠 줘도 되죠? 나눠 먹으면 캐러멜이 두 배는 더 맛있을 거예요! 저도 다이애나한테 줄 게 있다고 생각하니 기뻐요.”


앤 : “난 어제 이걸 받은 순간, 너랑 반씩 나눠 먹으면 두 배 더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난 지금껏 늘 받기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줘 본 적이 없거든.”

앤 : “자, 먹어 봐!”

다이애나 : 이렇게 맛있는 초콜릿 캐러맬은 처음 먹어 봐. (본문 36)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다. 사람마다 감성이 달라서 잠시 눈이 머무르는 이야기가 다르기 마련이고, 느끼는 감정도 전혀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멈췄다. 이 이야기는 앤이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고, 오늘날 잠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늘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 어려웠다. 그냥 함께 어울려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일, 사람들과 함께 밥 한 끼를 편하게 먹는 일도 어려웠다. 그때마다 속이 너무 불편해서 화장실을 끼고 살아야 했던 경우도 많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진절머리도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다른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내가 처음 대학교에 복학할 때만 해도 여전히 어려웠지만, 차츰차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사람’에게 익숙해지면서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었다. 어깨에 힘을 빼니 긴장도 풀려 한층 더 편해질 수 있었다.


 근래에는 부산에서 아는 블로그 형과 만나 종종 밥 한 끼를 먹기도 했고, 대학 후배와 함께 점심을 먹거나 시험이 끝났을 때 함께 고깃집을 찾아 밥을 먹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와 만나 고깃집에서 밥 한 끼를 먹기도 했다. 이렇게 일부러 함께 먹는 건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초록 지붕 집에서 사는 앤처럼 밝은 사람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일을 행복하고 즐겁다고 느끼는 사람도 아니다. 불필요한 대화는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거나 혹은 괜스레 입을 열었다가 실수할까 싶어 걱정만 앞선 인물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익숙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라는 걱정이 마음 한구석에 꽈리를 틀고 있다. 아무리 책을 읽으며 대화의 기술을 연습해도 쉽지 않았다. 억지로 대화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있는 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게 나라는 사람이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조금씩 음식 하나를 먹으며 함께 보낸 사람과 특별한 이야기가 쌓이면서 조금씩 함께 테이블에 앉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언젠가 하나씩 글로 옮겨보고 싶기도 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다.


 오랜만에 테마 동화로 만난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는 새삼스레 나와 주변 사람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오늘 이 글을 읽을 당신도 어떤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지나간 추억일 수도 있고, 처음 먹은 음식에 대한 감회일 수도 있고, 그냥 잡담일 수도 있다.


 28개 음식 에피소드로 만나는 빨강머리 앤의 이야기를 담은 <빨강머리 앤 딸기 레이어 케이크 편>. 답답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 잠시 저녁에는 시간을 멈춰서 오랜만에 동화 한 편 읽어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잊고 지낸 순수한 감성이 떠오르는 앤의 이야기는 참 좋은 휴식이 될지도 모른다.


* 이 작품은 대원씨아이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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