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문화/독서와 기록
- 2018. 10. 16. 07:30
조금 특이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로맨스 이야기
우리의 오늘은 항상 수많은 어제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지는 오늘이다. 어제까지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기억으로 남아 오늘의 나를 만든다. 만약 우리가 어제의 나를 잊어버리는 병에 걸리게 된다면, 우리는 오늘의 나를 ‘어제의 나와 같은 나’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 읽은 소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의 히로인인‘아키야마 아스나’라는 인물은 어제의 나를 잊어버리는 병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전향성 건망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으로 인해서 그녀는 한 달에 한 번을 주기로 30일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책에는 전향성 건망증에 대해 ‘사고와 상처, 병 등으로 뇌에 손상을 입음으로써 그 시점을 경계로 새로운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기억 장애’로 적혀있다. 전향성 건망증이라는 기억장애로 히로인 아키야마 아스나는 30일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해서 겪고 있었다.
그래서 아키야마 아스나는 타인과 관계를 깊이 가지지 않고, 학교 내에서도 한 발짝 떨어져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먼저 말을 건넨 인물이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의 주인공이다. 아스나가 주인공에게 말을 건 이유는 그가 가진 어느 숫자 때문이었다.
“전향성 건만증.”
그녀가 내게 건넨 첫 마디였다.
그것이 그녀의 고백인지 아니면 독백인지 판단이 서지는 않았지만 나를 향한 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나한테 말한 거야?”
“이 교실에 너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
없다. 노을이 지는 교실에는 나와 그녀뿐이다.
“아키야마 양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아. 다른 사람에겐 관심 없어.”
그녀는 잘라 말했다.
“그럼, 왜 나한테 말을 건 거야?”
“그거야 네가 친화수니까.” (본문 8)
아키야마 아스나가 주인공에게 말을 건 이유는 주인공이 친화수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친화수가 뭔지 몰라 당황했는데, 소설 속 아스나는 친화수에 대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연수의 쌍인데, 어느 한 수의 약수를 더하면 상대 수가 되지.”라며 친절히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녀의 설명을 들어도 이과가 아닌 문과 출신인 나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주인공도 마찬가지인 듯,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전향성 건망증을 알아보면서 친화수에 대해서도 검색을 해본다. 검색을 통해서 주인공은 친화수가 중요한 숫자인 건 알았지만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는 도입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화수를 통해서 서로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된 주인공과 아키야마 아스나. 두 사람은 모두 타인과 관계를 일부러 멀리했지만, 두 사람은 ‘친구’로 지내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친구로 함께 지낸다고 하더라도 사실 똑같은 추억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못했다. 아키야마 아스나는 30일 간격으로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항상 그녀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지난 30일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다. 아키야마는 주인공과 데이트 약속을 잡고 하루 전날에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는 내일, 기억이 리셋될 거야. 그러니까 너에 관해서도 잊어버리겠지. 일요일에 만나게 될 나는 분명 너에 관해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거야. 차가운 말을 내뱉을지도 몰라. 그래도 너무 신경 쓰지는 말아줘. 아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 달의 나’와도 친구가 되어줘.’” (본문 33)
아키야마가 주인공에게 특별하게 부탁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주인공이 내일의 그녀를 만나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핸드폰 번호를 보여주라는 거다. 친화수로 이루어진 그의 숫자를 분명히 다시 사랑할 수 있으니까. 주인공과 아키야마 두 사람은 그렇게 조금씩 시간을 겹쳐나간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필연적으로 다양한 숫자와 법칙이 나온다. 어떤 사람은 이런 숫자와 법칙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머리 아프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숫자를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아키야마의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또한,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작품의 히로인인 아키야마는 물론이고, 주인공은 주변 사람에게도 ‘너’라는 호칭 하나로 불렀다. 주인공의 이름을 감추면서 히로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중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작품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일본 소설로, 한국에서는 영화로 개봉해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히로인은 한사코 주인공을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로 부르며, 마지막까지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주인공이 가진 이름은 이야기 막바지에 이르러 나온다.
하지만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에서는 마지막까지도 주인공의 이름이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서술할 때는 ‘나’라는 1인칭을 사용하고, 주인공의 누나는 ‘남동생’으로 부르고, 다른 인물은 모두 ‘너’라는 호칭 하나로 주인공을 불렀다.
덕분에 소설에서 히로인 아키야마 아스나가 숫자로 주인공의 매력을 어필하는 부분은 신선한 즐거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주인공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공이 품고 있는 좌절을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없다는 건 다른 의미로 ‘나’가 없다는 거니까.
과거에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 주인공. 한 달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히로인 아키야마 아스나. 두 사람이 만나 처음으로 타인에게 흥미를 품고,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야기 처음에 나온 아스나가 과거에 심장 수술을 했다는 복선이 매듭지어지는 장면, 주인공과 히로인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가거나 히로인을 ‘아키야마 양’도 ‘아스나 양’도 아닌, ‘아스나’로 부르기 시작하는 장면 등 많은 장면이 두 사람의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독자를 끌어당긴다.
기억을 뛰어넘어 사랑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숫자로 마음을 표현하는 조금 기괴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사랑이라는 건 머리도, 심장도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임을 말하는 히로인 아키야마 아스나의 이야기는 오늘 가을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내가 너를 잊더라도 너는 절대로 나를 잊지 마.
혹 내 기억이 너를 잃는다 해도, 이 마음이 너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본문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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