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후기, 전 세계 독자를 사로 잡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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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거나 불필요한 단어가 하나도 없는 소설 '베어타운'


 처음 내가 소설 <베어타운>을 읽게 된 계기는 막연한 호기심과 어떠한 의무감 때문이었다. 나는 <베어타운>의 저자 ‘프레드릭베크만’의 이름을 <오베라는 남자>를 통해 처음 알았다. <오베라는 남자>를 책으로 읽은 건 아니지만, 영화로 처음 <오베라는 남자>를 보았을 때는 참 묘한 재미가 있었다.


 저자의 이름은 잊어버려도 <오베라는 남자>라는 작품의 이름은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책을 사기 위해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광고를 보았다. <오베라는 남자>의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신작 장편 소설!’로 소개된 <베어타운>이라는 책의 광고를 말이다.


 작품을 집필해서 출간하는 족족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는 기본이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티비 영화 채널에서 보여주는 걸 보았을 뿐이지만, 그의 작품을 책으로 꼭 읽어보고 싶어 <베어타운>을 샀다.


 하지만 책을 구매해서 읽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대학이 여름방학에 접어들기 전에 읽고자 했던 책이지만,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이제 개강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장편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책 한 권을 읽는 데에 지나치게 긴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그 이유는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베어타운>은 놀라울 정도로 몰입도가 있는 작품이다. 책을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블로그에 올려야 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다른 책을 병행해서 읽고, 글을 쓰면서 자투리 시간을활용해<베어타운>을 읽었기 때문이다. <베어타운>은 군상극 형식으로 쓰여 짬짬이 읽기 좋은 장편이었다.



 책 <베어타운>을 펼치면 제일 먼저 한 페이지에 ‘1’이라는 숫자 아래에 딱 두 개의 문장이 적혀 있다. 바로,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문장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야 했을까. 시작은 미스터리 소설 같은 느낌이라 추리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베어타운>은 어디까지 한 마을의 이야기일 뿐, <셜록 홈즈> 같은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베어타운>은 ‘베어타운’이라는 도시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베어타운은 오래전에 하키팀으로 유명했던 도시이지만, 팀이 쇠약해지면서 도시도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베어타운에 새롭게 희망으로 떠오른 건 우수한 재능을 가진 팀으로 전국 톱을 노리는 10대 청소년의 하키팀이다.


 하키팀의 선수들은 “우리들은 곰이다! 곰! 곰! 곰!”이라며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어른들은 이 아이들이 베어타운에 새로운 반환점이 되리라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팀만 아니라 후원, 정치 분야에 있어서도 막대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대체로 이렇게 자신들을 떠받들어주는 팀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는 일부 엇나가는 선수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고액 연봉을 받는 한 선수가 음주와 여자 문제로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런 선수는 개인의 책임에 분명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복귀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행히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그렇게 커다란 책임이 강요되지 않는 프로팀이 아니었다.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아직 전국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팀이고, ‘베어타운’이라는 도시 내에서 고개만 돌리면 아는 이웃인 부모가 있는 팀이었다. 그 부모는 팀 코치이기도 하고, 후원자이기도 한 인물이다.



 사건의 발단은 하키 팀의 주축이 되는 ‘케빈’이라는 인물이 ‘마야’라는 소녀를 강제 추행을 하려고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당한 마야는 홀로 끙끙 끌어안고 있다가 조금 늦게, 부모님께 말하고, 부모님은 하키팀이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결승전으로 향하는 하루 전날에 경찰에 신고한다. 당연히 하키팀은 혼란에 빠진다.


 여기서 <베어타운> 이야기는 진실 공방전으로 끌고 가는 케빈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와 마야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그 개자식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야의 부모님 이야기가 무게를 가진다. 물론, 당시 사건이 벌어지던 날 같은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도 각자의 길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책 <베어타운>은 군상극이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여러 인물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사건을 보여준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가 던지는 무언의 말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책을 읽는 내내 손을 비비거나 주먹으로 치기도 했다.


 책에서 읽은 내용 중 살짝 섬뜩하면서도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인 장면을 하나 옮겨보았다.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을 훨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훨씬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똘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이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몇 날 밤이 찾아오고 소문이 번지자 베어타운에서는 어느 누구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마야’라고 쓰지 않고 ‘M’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아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걸레’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성폭행’을 운운하지 않고 다들 ‘그 주장’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거짓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로 시작해서 ‘자발적이었다 한들 그 이이가 자초한 일이다. 술을 마시고 그의 방에 같이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냐’로 수위가 높아진다. ‘그 아이가 원해서 한 거였다’로 시작해 ‘당해도 싸다’로 마무리된다.

어떤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말자고 서로를 설득하는 건 금방이면 된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충분히 많은 시간 동안 침묵하면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너 나 할 것 없이 악을 쓰는 듯한 인상을 풍길 수 있다. (본문 374)


 이 장면은 마야가 당한 사건에 대해 진상이 소상히 밝혀지기 전에 이미 케빈 측에서 증오를 자극하는 과정의 일부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많은 혐오 범죄가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무서웠던 건 지금도 이렇게 침묵하거나 증오를 자극하는 것으로 진실을 왜곡해가고 있다는 거다.


 <베어타운>을 읽으면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혐오 범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고, 어른과 아이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일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볼 수 있다. 다수의 침묵과 폭력 앞에서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소수의 사람을 다룬 책. 그게 바로 <베어타운>이었다.


 하지만 <베어타운>은 무거운 사건으로 끝나는 작품은 아니다. 소수의 사람을 다루면서도 그들이 느끼는 사랑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친구를 위해서 자신의 자리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 무너지더라도 결코 옆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다룬다. 작가는 그래서 ‘사랑 이야기’라고 짧게 소개하기도 한다.


 처음 책을 다 읽었을 때는 ‘정말 좋은 책이었다!’라는 만족감이 들었지만, 이후 이 책을 어떻게 블로그에 소개하면 좋을지 몰라 답답했다. 단순하게 ‘꼭 읽어보아야 할 소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베어타운>이라는 소설이 우리에게 건 너무나 컸다. 책의 마지막 장에 수록된 후기를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단어가 하나도 없다. 어떤 문장은 영혼을 향해 날아드는 가차 없는 펀치처럼 느껴진다. _SR P4, 스웨덴’


 정말로 그렇다. 책을 읽는 내내 쓸모없거나 불필요한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느꼈다. 장편 소설인데도 이 책은 마치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를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수시로 바꾸며 하나의 큰 사건을 보여주기 때문에 어렵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장편 소설, 읽을 이유가 있는 장편 소설을 찾는 사람에게 <베어타운>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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