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득한 책벌레만 공감하는 단 한 권의 책
- 문화/독서와 기록
- 2018. 4. 9. 07:30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바깥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어진다. 하지만 요즘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바깥에서 활동하는 사람보다 실내 활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는데, 방 안에서 진득하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로선 밖에 나가지 않는 변명거리가 생겨서 좋다. 책 읽기는 요즘 시대의 필수가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내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아니라 동영상 시대인 오늘날 사람들은 책도 동영상으로 쉽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유튜브 시장에 일찍 뛰어든 리뷰어들은 ‘책튜버’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책의 핵심을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을 하며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덕분에 나처럼 아직도 진득하게 블로그나 인터넷 신문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은 ‘이대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위기를 느끼고 있다. 이러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만큼, 인터넷에서 글을 읽는 사람도 줄어들 가능성도 있으니까. 여기에 책을 좋아하는 연예인이 개인 책 방송에 뛰어들면 끝이다.
아니,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들 덕분에 책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늘어 서평을 읽는 사람도 증가하는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발생할 수도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책을 읽으며 각자 나름의 발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이러한 시대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향해 말하는 듯한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제목에 사용된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이라는 문구가 상당히 인상적인데, 책을 좋아하는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면 얼마 가지 않아 ‘가능하다면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매일매일 책만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 이상도 좋겠다. 책 읽기 말고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라는 문장을 읽을 수 있다. 이 글은 평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었다.
나는 얼마 전에 대학 후배와 나누는 대화에서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어도 부족해. 하루가 ‘240시간’이면 좋겠다. 책을 읽을 시간이 너무 부족해.”라고 말했다. 아직도 내 책상 왼쪽 모퉁이에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이 22권이나 쌓여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병행하며 책을 읽는 건 쉽지 않다.
다른 사람처럼 연애를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사교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도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대학 과제를 해야 하고, 책을 읽은 이후에 글도 써야 하니 시간이 압도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는 변명이 아니다.
정말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의 저자가 말한 대로, 하루에 여덟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 매일매일 책만 읽고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고정적인 수입이 허락한다면 이런 일은 꿈만 같을 것이다. 하지만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가 아닌 이상 이건 꿈만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 읽기를 해야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저자는 책에서 상당히 차가운 어조로 ‘이제는 책을 꼭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요즘은 망설임 없이 바로 좋아하게 된 책이 아니면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런 책은 일단 내려놓으면 영원히 내려놓는 거다.’라며 자신의 방법을 말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좋아하지도 않는 책을 읽기 위해서 시간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물론, 저자는 서평가로서 돈을 받는 책은 읽고 글을 써주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심지어 친구와 지인이 선물한 책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편식 없이 골고루 책을 읽어야 도움이 된다고 흔히 말하지만, 책은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굳이 ‘권장도서’로 선정된 재미없고, 따분한 책을 읽지 않아도 필요한 지혜는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책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릴 때는 펭귄 클래식 문고를 어지간히 읽으면 뭐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이미 배운 것을 많이 잊게 될 것이고, 어떤 책들은 항상 읽고 싶은데 결코 손대지 못할 것이다. 새뮤얼 존슨의 말마따나, 모든 지혜를 책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 그래도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지혜는 끔찍하게 많다. (본문 172)
굳이 우리가 읽기 어렵거나 도무지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책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저자가 언급한 새뮤얼 존슨의 말대로 모든 지혜는 책에서 찾을 수 없고, 우리가 그 책을 읽지 않더라도 다른 책과 만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끔찍하게 많으니까. 그러면 즐길 수 있는 책 읽기를 하는 게 옳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저자는 자신이 독서 시간 분배에 관한 한 타협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통계상의 기대 수명까지 산다면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도 오래전에 계산해봤다고 말한다. 그는 책에서 그때 2,138권이라는 답을 얻었다고 하는데, 1년에 100권이라면 약 21년 정도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저자가 이렇게까지 한 데에 놀랄 것이다. 나 또한 죽기 전까지 내가 얼마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계산해본 적이 없다. 이 부분만 읽어도 저자가 얼마나 진득한 책벌레인지 알 수 있다. 저자가 말한 여러 이야기 중에 ‘책 읽기의 재미’를 설명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속독은 게으름뱅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점수 기록하는 사람도 없는데 권수가 왜 중요한가. 그러한 노력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지 보려고 마라톤에 뛰어들어 코스 절반까지 잘 와놓고 왜 이런 바보짓을 할까 깨닫는 것과 내처 비슷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중간 과정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매일 첫 페이지에서 박차고 나가 그 날 밤에 마지막 단어까지 해치운다는 게 얼마나 상쾌한지. (본문 129)
책을 한 권을 읽는 일은 날씨가 쾌청한 날에 가벼운 조깅을 하면서 주변 경치를 바라보는 일과 같다. 가벼운 조깅 끝에 흘리는 개운한 땀은 책을 읽고 잠기는 여운과 똑같다.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내가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떠나고, 아직 내가 해보지 못한 사랑을 하는 주인공의 감정에 두근거리는 일.
그런 경험을 책을 통해 경험해본 사람은 책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인 나도 그런 매력을 알고 있어 책과 함께 살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공감할 수 있는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 글을 마치며 아래의 글을 남긴다.
책 읽기는 현실도피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딸내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독서는 현실도피와 정반대죠. 오히려 너무 극단적으로 자기 내면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자신의 다른 면이 나오는 거예요.” (본문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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