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학교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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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삶을 전한 명강의를 책으로 읽다


 얼마 전에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서 책 영상을 찍어 올리는 한 분의 게시물을 통해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짧은 영상을 통해 간단히 소개만 들어도 한번 읽어보고 싶은 구미가 당겼는데, 이번에 다시 시작한 흐름출판 서포터즈를 통해서 <라틴어 수업>을 읽게 되었다.


 책 <라틴어 수업>은 제목 그대로 대학교에서 라틴어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강의를 기록한 녹취록 비슷한 책이다. 하지만 단순한 녹취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라틴어 그 자체와 함께 라틴어와 관련된 유럽의 역사와 고전 철학자를 통한 인문학적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이다.


 <라틴어 수업>를 펼치면 제일 먼저 서문과 목차를 읽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첫 장에서는 배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오늘도 많은 대학생과 고시생들이 주말을 맞아 쉴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상태로 책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뭘 하고 싶은지 고민을 해보았을까?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고민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보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다. 대학에서 시험을 치를 때도 '그때 어떤 역사적 배경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를 하는 것보다 '그때는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외우는 일이 많다. 즉, 단순한 지표를 암기하기 위해서 하는 게 곧 공부인 거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무언가를 배우고 싶을 때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수강 과목을 선택할 때는 쉽게 점수를 받을 수 있거나 하루 동안 공강을 만들기 위해서 과목을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루한 수업에서는 잠을 청하는 이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라틴어 수업은 딱 이름만 들어도 재미없는 수업처럼 느껴진다. 지난 1학기에 내가 들었던 '서양의 역사로부터 배우는 법의 역사'와 거의 맞먹을 정도다. 이런 수업은 대체로 시간표의 시간이 좋아서 수업을 듣거나 수강신청에 실패한 사람이 올 때가 많은데, 뜻밖에 알짜배기 수업일 때가 있다.


 5년간 수많은 대학생에게 인기를 끌었던 <라틴어 수업>은 바로 그런 수업이었다. 책을 처음 넘기면서 읽다 보면 저자가 첫 수업 시간에 하는 일을 읽을 수 있다.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라고 수강생들에게 말하며 라틴어 교재와 중간고사 과제물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바로 마친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첫 시간에 어느 대학교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저자는 라틴어의 개념을 이용해서 수강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 첫 수업은 휴강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평소와 달리 잉여 시간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시간은 여러분에게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생각지도 않게 생긴 이 시간 동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운동장으로 나가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겁니다. 봄날의 아지랑이는 강한 햇살을 받은 지면으로부터 투명한 불꽃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르기 때문에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아지랑이'는 라틴어로 '네불라'라고 합니다. 그 뜻은 '보잘 것 없는 사람, 허풍쟁이'란 뜻의 '네불로'라는 명사와 '안 개 낀, 희미한'을 뜻하는 형용사 네불로수스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라틴어 '네불라'에는 '아지랑이'라는 뜻 외에도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단어만 해도 그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참으로 긴 시간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지랑이'라는 단어가 억겁의시간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고 시시때때로 그렇게 우리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자, 이제 이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러 운동장으로 나가십시오.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 것 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힘들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운동장에는 어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까?" (본문 35)


 제법 긴 글이라 부분적으로 생략하면서 글을 옮겼다. 저자가 첫 수업을 휴강으로 하는 이유는 단순히 강의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게 아니라 라틴어 하나를 설명하며 생각할 시간과 문제를 수강생들에게 던지는 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그냥 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딱 이 첫 수업 시간에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가 평소 수업 시간에 어떤 이야기를 했고, 왜 수강생들이 이 수업을 듣고자 했는지 추측이 되었다. 대학에서 배우는 수업 중 그냥 지식을 암기하는 수업도 있지만, 종종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수업은 진짜 배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욱이 최근처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 데다가 '지금 나는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 대학에 와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맞닥뜨리는 대학생에게 딱 좋은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책 <라틴어 수업>을 읽는 동안 라틴어를 통한 유럽의 역사와 함께 마지막에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문장이 너무나 좋았다.



 이번에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대학에서 듣는 교수님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이렇게 편집을 해서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는 상상을 해보았다. 분명히 책 <라틴어 수업>에 적힌 저자가 진행하는 수업과 방향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려울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서도 종종 교수님 몇 분이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때가 있었다. 지난 학기에 들은 교양 과목 서양의 역사에서도 서양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 한국에서 일어나는 정치와 사회 문제에 고민하며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라틴어 수업>은 바로 그런 수업이었다. 정치와 사회에 한정하지 않고, 좀 더 본질적으로 우리 삶을 생각해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라틴어 수업> 이야기 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겪은 "한국 사람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적힌 이야기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한국에 패배했을 때,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조금 석연찮은 해프닝을 겪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이야기,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파생적인 개념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를 통해서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는 수업이 멋진 수업이 아닐까?



 <라틴어 수업>을 읽다 보니 문득 1학기에 들었던 몇 개의 수업이 떠올랐다. 수업의 이름에 얽매이기보다 조금 더 다양한 것을 보면서 생각해보려고 했던 수업도 있었지만, 우직하게 해야 할 일만 하는 수업도 있었다. 수업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이 더 좋았다.


 9월부터 시작할 2학기에는 또 어떤 수업을 듣게 될까? 지금은 수강 계획을 세워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과목을 위주로 넣어놓았다. 수업을 따라가는 건 조금 힘들겠지만,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진짜 공부의 길이라고 믿는다.


 책 <라틴어 수업>은 다소 낯선 이야기로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라틴어를 거쳐 다양한 역사와 철학, 그리고 인문을 배울 수 있어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이 책은 어디까지 강의를 기반으로 집필된 책이니 하루만에 다 읽기보다 천천히 하루에 1시간씩 정도 시간을 나눠 읽는 걸 권하고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주옥같은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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