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의 조국
- 시사/사회와 정치
- 2017. 5. 5. 07:30
어릴 적 태극기 앞에 섰던 그 시절,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매주 한 번씩 운동장에 나가는 일이 있었다. 그때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보면서 멋도 모르는 태극기 맹세를 했다. 이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다는 그 맹세. 어릴 적의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애국 아닌 애국을 했고, 태극기 앞에서 왼쪽 가슴에 손을 올렸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지는 일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다. 어릴 적의 나는 한 번도 애국심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고, 먼저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의심치 않았다. 모두가 당연하게 태극기를 바라보며 숙연해지듯이, 그 작은 가슴으로 나는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 없이 외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나는 점점 이 당연한 일이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나라에 이바지하기 위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라에 애국심을 가진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일은 무엇도 없었다. 우리 집에는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조금 더 제대로 되었다면 이렇게 무너지는 약자들의 인간다운 권리를 보호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서는 성적순에 따라 차별을 가르치며 공정함을 잃어버리게 했고, 집에서는 아버지의 횡포가 사회에 적개심을 품게 했다.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가슴 뜨겁게 외쳤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과 사회에 대한 신뢰는 올라가지 못했다. 지금 대학생이 된 나는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한 청년으로서 깊이 생각해본다. 과연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 있는지….
흔히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대한민국은 탈출을 꿈꾸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조차 청년 문제를 고민하며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 대통령은 "우리나라 청년들 다 어디 갔느냐고, 다 중동 갔다고 할 수 있도록 해보라."라며 청년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를 보면 이런 글이 있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느님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는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하나의 사회와 나라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 내가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맹세를 했을 때는 그러한 가치관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배우며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라는 자유를 빼앗을 권리가 허락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헌법 한 구절만 읽어도 가슴에 뜨거워진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의 인간답게 살 권리가 보장되는 일이다. 조물주보다 위대하다는 건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막강한 권리를 이용해 측근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런 썩은 정치인의 나라가 되는 게 아니다.
오늘날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나와 같은 청년 세대에게 너무나 가혹하다. 가혹한 정도를 넘어서 끔찍하다. 이토록 가혹하고 끔찍한 현실 속에서 이웃 나라 일본으로 떠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독일과 캐나다로 이민을 꿈꾸는 욕심을 품게 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변변찮은 직업조차 가지지 못한 나는 한 명의 대학생으로서 꿈꾼다. 오늘 여기서 간절히 바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의 조국이, 모든 시민이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나라가 되기를. 우리 청년 세대의 가슴에서 타오르는 작은 촛불 같은 바람이 정치인을 움직이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비록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걸 알고 있어도, 오늘 우리 젊은 청년 세대가 조국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일은 우리 자신도 부끄럽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거리로 나선 우리의 촛불은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쫓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문을 살짝 열어젖혔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희망의 빛이다. 문을 활짝 열어젖혀 희망의 빛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집착을 물리치고, 새로운 봄을 향한 새싹을 틔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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