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패션으로 인문학을 말하다
- 문화/문화와 방송
- 2016. 4. 30. 07:30
오늘 당신은 어떤 옷을 왜, 어떻게 입고 있나요?
나는 패션과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 중 한 명이다. 제일 편한 옷은 학교 교복이었고, 사복을 입어야 할 때는 항상 활동하기 편한 청바지와 면티 조합 아니면 등산 바지와 외투를 걸쳐 입었다. 현재 대학에 다니는 나의 복장도 얇은 등산 바지와 얇은 면티에 반팔 난방을 거의 학교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대학생이라고 하여 일부러 옷을 신경 써서 입거나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학교는 강의를 들으러 가는 목적밖에 없고, 강의 시간이 끝나면 곧장 1시간 30분을 달려서 집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움직이기 편하고, 평소 옷도 같은 옷을 2~3벌 사서 입고 다녀서 1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는다.
패션은 나에게 새로움이 아니라 일상의 반복이고, 나를 화려하게 포장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했다. 과거 이충권 선생님께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 입어도 깡패는 깡패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 내면이다."이라는 말을 들은 것도 있었고, 책을 통해 배운 것도 그랬다.
그래서 패션은 나와 늘 동떨어져 있는 분야였는데, 이번에 대학에서 들은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씨의 강연을 통해서 패션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단순히 패션을 겉모습을 꾸미는 게 아니라 나와 마주하며 내 모습을 알아가고, 자신에게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로서 멋진 일임을 알게 되었다.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김홍기 블로그
한국의 최초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씨는 옷을 의미하는 태도 태(態)자를 소개하면서 옷의 의미를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소개해주었다. 우리 한 사람은 다양한 정체성이 모여서 '나'라는 한 사람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가 입는 옷 또한 다양한 옷으로 하나의 옷차림을 만들어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했다.
김홍기 씨는 강연을 하면서 한사코 "여러분은 개성이 흘러넘쳐야 합니다. 판에 박힌 과정으로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틀에 갇히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틀에 맞추느라 '나'가 없어지게 되면, 절대 팔리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이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말하며 '나'를 중요하게 말했다.
확실히 패션 유행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다. 어떤 연예인이 입은 옷이라고 해서 쇼핑몰에서 금세 동이 나기도 하고, 프리미엄이 붙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기도 한다. 이런 옷차림을 따라 입는 것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과연 거기에 '나(我)'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심한 듯 시크한 패션. 김홍기 씨는 그러한 패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진 것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절제를 할 줄 아는 패션이 바로 무심한 듯 시크한 패션이고, 그러한 옷차림이 자신이 가진 자신감을 높여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패션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스타일이라고 덧붙이셨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흠칫 놀랐던 부분은 "우울증 환자는 늘 똑같은 옷을 입습니다."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한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던 터라 정말 놀랐었다. 내가 똑같은 옷을 입는 데에 별다른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옷에서도 그런 게 드러날 줄은 몰랐다.
역시 한 사람의 어떤 특성은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만이 아니라 입는 옷 등 다양한 곳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사람이 아무리 능숙한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하려고 해도 다 숨길 수 없는 게 있는 법이다. 무의식적으로 내 감정 상태를 나는 같은 옷을 입으면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나는 옷을 입는 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괜히 쓸데없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컸다. 밖에서 특별한 감정으로 만날 사람도 없고, 누군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도 없고, 우중충한 기분으로 바깥 생활을 할 때가 많아서 자연히 옷차림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비록 이런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나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다. 한때는 우울증으로 내가 옷을 입는 성향이 하나로 정해졌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래도 나름 신경을 써서 차분해지는 옷차림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남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내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유니클로, ⓒ노지
나는 몸이 날씬하지 않고, 얼굴도 작지 않고, 딱히 잘 생기지도 않았다. 한때 이런 요소로 중학교 시절에 집단 괴롭힘을 당했던 적도 있어 나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데에 두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김홍기 씨는 우리가 옷을 입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 몸을 마주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 몸의 좋지 않은 부분을 감추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좋은 한 부분을 강조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그곳으로 모으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평소 책을 통해서 읽은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점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내용과 일맥상통했다.
글을 쓰는 것과 옷을 입은 것은 똑같다. 좋은 글은 군더더기가 없는 글인 것처럼, 군더더기 없는 옷차림이 옷을 잘 입는 것이다. 샤넬이 뛰어났던 이유는 덜어낼 수 있는 것은 다 덜어내고, 가장 심플한 패션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 또한 이렇지 않을까?
나에게 '패션'이라는 단어는 무대를 걷는 모델이 있는 행사, 나와 상관이 없는 유행을 따라가는 화려한 옷차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씨의 강연을 통해 패션은 우리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패션에도 인문학이 있고, 사람이 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알았다.
오늘 나는 지금 어떤 옷을 왜 입고 있는지 질문해보고,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의 패션도 옷도 살펴보자. 어쩌면 옷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비밀이 드러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은 어떤 옷을 왜, 어떻게 입고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우리의 패션은 삶의 한 모습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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