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들의 시신 훼손한 부모, 그들은 악마인가
- 시사/사회와 정치
- 2016. 1. 23. 07:30
왜 한국 사회는 아동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인천에서 벌어진 박 모양이 당한 학대 사건을 계기로 전국에 장기 결석을 한 학생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조사 과정에서 우리는 '설마? 도대체 부모가 왜 저렇게까지 한 거야?'이라는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는 사건이다.
그 사건은 친자식을 폭행해서 죽인 아버지가 죽은 아이의 시신을 해체하여 냉동보관을 하면서 숨기고 있었던 사건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도무지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집에서 시신을 보관하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심지어 딸도 함께 있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만약 이번에 장기 결석 학생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바깥으로 드러나는 일 없이 조용히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죽은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의 시신을 훼손할 때조차도 치킨을 시켜 먹는 태연한 행동까지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악마'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하더라도 그 부모를 가리켜 '악마' 같은 수식어처럼, 잔인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부모'된 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최소한의 도리를 손톱만큼도 느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죽기 전날에 치킨도 먹었다고 한다, ⓒJTBC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왜 한국 사회는 이렇게 아동 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인천에서 벌어진 반복되는 학대 속에서 탈출한 박 모양 사건 이전에도 친자식을 살해한 부모의 사건은 몇 번이나 있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근본적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해가 지나더라도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단지, 아동 학대에 대한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는 사회적 여론이 넓게 형성되었고 사회적 관심을 받은 사건의 가해자는 다른 사건과 별개로 강하게 처벌받았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만족했고, 반복되면 또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결과가 올해 벌어진 이 잔인한 사건의 도돌이표라고 말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대등한 관계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간적 여유와 사회적 배경이 갖춰지지 않는 이상 우리는 이 잘못을 고칠 수가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남의 가정'이라는 인식도 너무 많다.
오래전에 나는 <해외 홈스테이 다녀온 친구 왈, '한국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적은 적이 있다. 나는 그 글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부모의 과한 욕심과 기대에 호응해야 하는 또 다른 아동 학대를 말했다.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학대가 반복되고 있다.
"한국 아이들은 너무 불쌍하다. 아이들을 보면 전혀 여유를 느낄 수도 없고, 맨날 집에 앉아서 공부만 하고. 주말에도 부모님이나 아이나 다 축축 처져 있다. 내가 해외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정말 여유롭고, 즐겁게 생활을 하더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런 환경이 안 익숙해서 '뭐지?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는데, 금방 적응되더라. 거기선 아이들에게 밤 몇 시가 지나면 공부나 숙제 못 하게 한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좀 놀라고 하거든. 그리고 주말마다 가족끼리 항상 여행을 가거나 놀러 다니더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주말에 레스토랑이라도 가서 함께 밥은 꼭 먹으려고 하더라?
한국 같은 경우에는 아이들은 언제나 학원에만 박혀 있고, 주말에는 부모님이나 아이나 다 축축 쳐져서 그런 것도 없잖아? 집에 있어도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공부해라!'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독서실이나 학원 주말반에 보내버리고. 내가 해외 홈스테이 갔다가 한국에 돌아오니까 정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근데 더 웃긴 건 한국에 돌아와서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또 그렇게 살게 되더라. '이건 아닌데…'라는 건 몸으로 체감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다 이렇게밖에 생활을 못 하니 나도 다시 그렇게 되더라고."
윗글은 그 당시에 친구가 내게 해줬던 대화를 다시 옮긴 글이다. 어디까지 기억에 의존해서 옮긴 글이지만, 그 친구는 우연히 내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인데, 이렇게 적을 줄 몰랐다.'면서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이니 그 친구가 말했던 것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이 글을 통해서 '왜 한국 사회는 아동학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아니, 조금 더 강하게 말하자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2016년을 맞이한 한국은 다시 한 번 보육 대란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가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많은 한국에서 아이와 언제나 소통하는 가정을 기대하거나 아이가 위험에 처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사회의 지원이 필요하다. 육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먹고살기 급급해서 부모의 시야에서 벗어나 버린 아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부모의 문제로 이어진다. 내가 '교육' 문제를 말할 때마다 늘 강조하는 것은 '반복성'을 띈다는 점이다. 아동 학대를 당한 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었을 때는 똑같이 아동 학대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폭력은 대물림이다.
세책례를 배워야 할 오늘, ⓒKBS
어떤 부모는 이를 목에 핏대를 세워가면서 부정할지도 모른다. "나는 내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때리라고 가르치지 않았어! 저건, 지 아비(어미)를 닮아서 그런 거야!"이라고 말하며 문제를 저지른 아이에게 이중 삼중의 학대를 가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게 문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다.
자신은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결점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 내에서는 이런 결점이 '잘못된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부모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한 학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한국 사회에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단계는 아직 한참 멀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여전히 어른의 의견이 최우선과제가 된다. 젊은 정치인이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정치도 그래서 문제다.
배운 것이라고는 시험에서 답을 찍는 것밖에 없는 사람이 문득 부모가 된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 사람을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가 된다. 이것은 우리 한국 사회에서 너무 흔히 일어나는 아동 학대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다. 아마 한국만 아니라 학대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나라는 닮은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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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은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부모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늘 있었고, 사회적 관심이 쏠렸을 때나 오늘처럼 심각성이 대두한다. 과연 우리는 이 '헬조선'에서 부모와 아이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할 시간을 줄 수 있는 사회제도가 뒷받침될 수 있을까?
쓴웃음조차 지어지지 않는 질문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의 편협함 때문이다. 아들의 시신을 훼손한 부모가 악마라면, 그런 악마를 길러낸 또 다른 부모와 그 부모 세대의 배경이 된 나라는 지옥이라는 뜻이니까. 이미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적절한 말에 달아날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벌써 잊어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과 몇 주 전에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한 아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찔러 죽인 사건을 접했다.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 구타를 당하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학대와 폭력이 낳은 또 다른 모습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버지를 찔러야 했던 아이, 살아남기 위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아이,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해서 분풀이를 하다 아이를 죽인 부모. 이미 우리 사회는 '사람이 없는' 지옥의 밑바닥에 가라앉아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이런 모습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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