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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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머리 한구석에서 맴도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밥을 먹을지 굶을지, 점심으로 돈까스와 국밥 중 무엇을 먹을지, 저녁으로 치킨을 시켜 야구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일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매일 똑같은 메뉴로 끼니를 해결하고, 일주일에 한 번만 치킨을 먹기로 했음에도 항상 그 순간이 되면 고민하게 된다.


 오늘 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는 일은 정말 단순한 질문이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많은 질문을 답을 찾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질문으로 예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민의 잘못은 시민 개인의 잘못인가, 정치인의 잘못인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질문에 성숙하지 못한 시민 의식을 사례로 들면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도 정치에 욕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면서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이 우리 시민이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한 문제도 지적하면서 정치인과 시스템의 잘못을 비판할 수도 있다.


 이렇게 우리가 마주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내가 어떤 방향으로 답을 찾고자 하는 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을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때때로 시원스럽게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 ⓒ노지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 ⓒ노지


 오늘 소개할 책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질문, 그리고 정치와 바르게 살아가는 자세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하게 되는 질문과 세계적인 철학 교수들이 적은 답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답은 '정답'이 아니라 많은 '답' 중 하나라는 게 특징이다.


 정답은 어떤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 나오는 답을 말하고, 답은 말 그대로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오직 절대적 정답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하나의 답을 통해서 혹은 복수의 답을 통해서 질문자가 스스로 자신이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의 깊이를 찾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게 주제였다.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에서 읽은 질문 중 몇 가지는 내가 궁금증을 품었던 것도 있었고,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질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었던 두 개의 질문을 옮겨보았다. 아래에서 읽을 수 있는 '선서'와 관련한 질문은 그 첫 번째 질문이다.


Q. 사회는 선서라는 행위를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나요? 흔히 진실을 말할 때, 시민이 될 때, 공직에 취임할 때, 위원회의 일원으로 일할 때 선서를 합니다. 그러나 선서는 그것을 지키는 경우에만 훌륭합니다. 편의상 거짓으로 선서한 다음, 마음을 바꿔 선서를 어기는 일이 많으니까요. 그렇다면 선서하고 어떤 일을 하는 것돠 선서하지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격식을 갖춘 선서를 했기 때문에 선서하고 한 행동에 대해서는 더 높은 진실성을 기대할 수 있나요?


 개인적으로 나도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그동안 접했던 책을 통해서 선서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스스로 나에게 거짓을 고하지 않을 것을 약속함으로써, 양심에 따라 진실을 말할 확률을 더 높인다는 결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약간의 의문은 남는 게 선서 행위다.


 또한, 때때로 선서 선언을 했음에도 영 미덥지 않은 답을 하거나 상황에 맞춰 답을 맞히는 인물도 보았었으니까. 그래서 격식을 갖춘 선서를 했기 때문에 선서하고 한 행동에 대해서는 더 높은 진실성을 기대할 수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A. 선서는 의식으로 자리 잡은 일종의 약속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의 질문은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다릅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내가 그 일을 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겠다고 약속하면, 그 일을 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가 생깁니다. 그 의무는 내가 그 일을 할 거라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선서의 한 가지 목적은 약속의 의해 생기는 도덕적 의무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물론 약속을 하거나 선서한 사람이 그 의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 이하 생략 (p111)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질문은 3장 일상적으로 우리가 늘 마주치는 문제들에서 읽은 '매춘은 나쁜 짓인가요?'이라는 질문이었다. 매춘, 즉, 성매매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개인의 의지와 타인의 의지, 사회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윤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면, 성매매는 분명히 금지되어야 하는 항목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두 사람 사이의 자유의사에 따른 자발적인 서비스 교환이라고 접근하게 되면, 개인의 선택 문제를 과연 어느 정도 침범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책에서는 아래와 같이 우리가 조금 더 논의할 수밖에 없는 논의 대상이라 답한다. 성매매 문제는 그냥 간단하게 우리가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긴 시간 동안 함께 논의하면서 단순히 '겉'이 아니라 '속'을 파헤쳐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A. 매춘이 그 자체로 나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매춘이 두 사람 사이의 자유의사에 따른 자발적인 서비스의 교환인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매춘부를 고용하는 행동(또는 매춘부로 일하는 행동)이 물리치료사를 고용하는 행동(또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행동)보다 더 저속하다고 말할 수 잇는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 매춘 사례도 있을 것입니다.

…(중략) 매춘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 이는 정책상의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매춘이 합법적인 행위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합법적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물론 어떤 행동이 나쁜 행동이 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항상 금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매춘이 때때로 도덕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항상 불법화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규제는 어느 때고 금지의 대안이 되어줍니다. 무고한 거래에 도덕적인 문제가 빈번히 또는 규칙적으로 수반된다면, 그러한 금지 조치의 그물에 무고한 거래가 잡히더라도 이것이 성매매를 금지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부분적이든 또는 전면적이든 말이지요. 그러나 이는 아주 중대하고 어려운 정책상의 논의 대상입니다. (p196)



 이런 이야기를 책 <살면서 한번은 묻게 되는 질문들>을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쉬운 문제도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질문'을 잘하지 않는 우리에게 책에 적힌 질문들은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마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명절 추석을 맞아서도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평소에는 연락도, 도움도 주지 않다가 추석이라는 명절에만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가?'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해외여행을 가는 가족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같은 질문 말이다.


 우리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 어느 하나 명확한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 그저 개인이 가진 철학과 가치관에 따라서 수많은 답을 제시하면서 토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과 토론이 사고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기에 이번 추석에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웃음)


 어쩌면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은 질문 거리가 있고, 답을 제시하면서 토론할 수 있다는 일은 즐거운 일일지도 모른다. 질문이 없고, 답을 찾으며 생각하지 않는 삶은, 분명히 지나치게 단조로워 살아가는 즐거움이 하나도 없을 테니까. 이 책을 통해 질문의 즐거움을 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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