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산촌자본주의의 미래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8. 24. 07:30
머니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산촌자본주의
우리나라 한국은 무역을 통해서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빠르게 받아들여서 경쟁력을 빠르게 키웠고, 경제가 성장하는 흐름에 빠르게 편승하면서 어떤 나라보다 빨리 기적을 일으켰다. 우리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고, 많은 사람이 이를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한강의 기적은 지나버린 과거에 불과하다. 그 업적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은 맞지만, 지나버린 과거에 취해서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 경제의 흐름에 올라탈 수 없다. 박정희 시절처럼 가야 살만해진다는 말은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지금 전 세계는 돈으로 돈을 버는 머니자본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 그래서 국가의 부채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국가의 부채를 지탱하는 가계의 부채 또한 높아지고 있다. 부채가 높아지면, 자연히 경제 성장은 둔화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경제 침체기다.
하지만 이 침체기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을 특정 국가에 의존하고, 식량 자급률이 점점 떨어지는 위기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나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에서 벗어나고, 자급률을 높이면 되니까!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노지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노지
'말은 쉽지, 네가 한번 해봐라.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면서 짜증을 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 말이 맞다. 나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방법을 모른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책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에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가야 할 방법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산촌 자본주의!
'산촌자본주의'를 말하는 이 책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는 우리 이웃 나라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지금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다. 산촌자본주의는 그동안 돈으로 돈을 움직이는 중앙 시스템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순환 시스템을 만들고, 산림을 이용한 가치창출을 말한다.
'산촌자본주의'라는 것은 돈의 순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구축된 '머니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함께 돈에 의존하지 않는 서브시스템도 재구축해두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돈이 부족해져도 물과 식량과 연료를 계속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시스템, 이른바 안심과 안전의 네트워크를 미리 준비해두기 위한 실천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현대인의 생활을 에도시대 이전의 농촌처럼 자급자족의 생활로 돌려놓자는 주의도 주장도 아니라는 점이다. 돈을 매개로 복잡한 분업을 시행하고 있는 지금의 경제 사회에 등을 돌리라는 것도 아니다. 쇼바라의 와다 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사면 된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느 ㄴ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장의 오스트리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숲이나 인간관계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에 최신 기술을 더해서 활용하면 돈에만 의지하는 생활보다도 훨씬 안심할 수 있고 안전한, 안정된 미래가 출현하는 것이다. (p125)
책을 정말 인상 깊게 읽었지만, 도저히 어떻게 이 책을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동안 국토의 대부분이 산림이 차지하는 일본에서 시행하는 팰릿을 이용한 에너지 발전은 정말 놀라웠고,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CLT 건축 등 모든 이야기가 놀라웠다.
특히 가장 놀라웠던 것은 현재 초고령화로 진입한 일본이 어떻게 젊은 세대를 다시 지역으로 불러 들어서 가치를 만들고, 지역의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일본을 좋아하기에 일본을 칭찬하는 게 아니다. 책으로 읽은 실제 사례는 분명히 놀라웠고, 우리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노지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 ⓒ노지
우리나라도 국토의 약 64%가 산림으로 뒤덮여 있다. 만약 우리도 일본에서 산림 자원이 풍부한 지역처럼 산림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CLT 건물 제조법을 배워서 하나둘 대체해나갈 수 있다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큰 경쟁력을 얻는 동시에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림을 이용한 개발을 말하면 난개발로 산림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과거 산림을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개발한 탓에 벌거벗은 산이 우후죽순 생겼었는데, 지금도 일부에서는 골프장을 만들기 위 대책 없는 개발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런 잘못된 개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서 시행하는 체제를 우리는 배울 필요가 있다.
"산림이 1년 동안 성장하는 양의 100% 이용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100%를 넘어버리면, 다시 말해 지나치게 벌채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답은 명쾌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이 교육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알고 있다면 자원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테니까요. 우리들은 현재 산림의 전체량을 감소시키는 그런 벌채는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숲이 성장한 만큼만 베는 겁니다."
오스트리앗에서는 철저한 산림조사를 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정도의 나무가 베어지고, 어느 정도의 나무를 심고, 그리고 산림 전체에서 나무가 어느 정도로 늘었는지 같은 상태를 정기적을 조사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산림자원의 수지를 파악한다. 이 수지를 고려해서 매년 나무를 얼마나 벨 것인지 결정한다. 오히려 오스트리아에서는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 산림면적이 지금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오스트리아의 임업은 원금에 손을 대지 않고 이자만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근본 철학이다. (p88)
윗글을 읽어보면 오스트리아는 상당히 쉽게 관리하는 것 같지만, 오스트리아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산림을 똑바로 활용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만들어 시행해왔다. 교육이 1번이었다.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산촌도 오스트리아의 모범 사례와 견줄 정도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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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의 사례가 정말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자꾸 서비스업과 일용직 노동자를 늘리고, 에너지 자급률을 위해서 원자력 발전소를 늘려고 한다. 이런 흐름은 지금 세계가 향하는 방향과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만이 아니라 식량 자급률 또한 무서울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산 김치는 값싼 중국산 김치에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런데도 국내산 김치가 유지되는 이유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시골에서 배웠던 방법으로 김치를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김치를 지역 내에서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어 서로 상부상조할 수 있게 한다면 어떨까? 분명히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에서 읽을 수 있는 산촌자본주의에서는 그런 사례를 실천한 일본의 이야기도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는 정말 좋은 책이었다. 분명히 앞으로 세계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개발에 더 투자할 것이고, 고령화 대책을 위해서 빈 집이 우후죽순 늘어나는 지역을 살리는 방법을 도입할 것이다. 이 책에는 그 미래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한 사례가 담겨있다.
도쿄대생이 가장 많이 읽는다는 책이라고 책의 띠지에 적혀 있었는데, 그 문구를 보지 않더라도 꼭 책을 한 번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게 될 미래이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미래였다.
"우리들이 바라는지 바라지 않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20년 뒤, 30년 뒤 또는 50년 뒤에 화석연료가 있을지 어떨지를 의논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너무 늦었다고 우리들을 원망하는 세대가 언젠가 틀림없이 나타날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고용을 창출하는 큰 기회입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기술을 개발한 상태이며 전 세계가 이 기술을 마스터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혜택을 누리는 화석 연료에 매달려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500년 뒤의 우리 자손들은 21세기의 인간은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고 평가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기력한 인간들이었다고 1,000년 뒤의 역사 교과서에 실려버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주어진 기회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됩니다. 용기와 선견지명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큰 도전이지만 기회이기도 합니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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