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폭로에서 본 연고주의에 썩는 한국의 현실
- 시사/사회와 정치
- 2015. 5. 14. 07:30
학연, 지연, 혈연에 얽힌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이민 뿐?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높은 나의 스펙이 아니라 높은 나의 인맥이 가장 선호 받는 요소 중 하나이다. 아무리 내가 스펙이 좋더라도 취업하려는 기업에 줄이 있고 없고 차이는 이미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드는 요소임을 한국의 모든 시민이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은 부정할지 모르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와 운동과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연고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기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신을 밀어주는 줄이 없으면 살아남기가 힘든 분야다.
지금 눈을 돌려서 우리나라 정치 상황만 보아도 그렇다. 야당 새정치 민주연합은 친노와 비노로 계파를 나누어서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느라 시민이 원하는 야당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고, 여당도 당내에서 친박과 비박으로 냉전을 통해 좀처럼 정책 통합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는가. 우리는 이미 이렇게 윗물부터 썩어있으니 아랫물이 맑을 리가 절대 없다. 이미 지방자치와 여러 언론 기관에서도 줄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나고, 작은 아르바이트 혹은 인턴으로 들어가는 데에도 연줄은 강하게 작용을 한다.
ⓒ휴먼다큐 MBC
위 이미지는 얼마 전에 MBC에서 방송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트로 안)가 러시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다큐로 방송한 프로그램 일부 장면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겠지만, 안현수는 한국 빙상계에서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정말 으뜸가는 쇼트트랙 선수였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 쇼트트랙 내의 계파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그는 이렇게 엉망인 한국의 쇼트트랙을 뒤로 하고 러시아로 귀화를 해버렸다. 당시 언론 보도는 안현수를 비판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의 사연이 공개되고 나서 그를 응원하는 팬과 그래도 그를 비판하는 팬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소치 올림픽에서 안현수는 화려하게 자신의 부활을 전 세계에 신고했고, 러시아에 처음으로 쇼트트랙 금메달을 안기는 동시에 쇼트트랙 3관왕을 달성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시민이 한국 체육계에서 일어나는 계파 싸움과 한국 사회의 연고주의에 관해 강하게 비판을 했다.
체육계에서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연고주의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지난해에 태권도 시합에서 자기 아들이 편파 판정으로 부당하게 패배를 당하자 목숨을 포기하면서 세상에 알리려고 했던 한 아버지의 슬픈 사연도 있었다. 정말 뿌리 깊이 한국 사회는 연고주의로 물들어 있는 것이다.
ⓒMBN
옛 조선 시대부터 각 지역의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인사 청탁이 들어가고, 일제시대 이후 친일파를 중심으로 세력이 모이는 것에서 뿌리를 내린 한국의 '연고주의'는 오늘날까지 점점 더 강하게 그 세력을 키워오고 있다. 그래서 넓은 인맥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항목으로 손꼽힌다.
그런 까닭에 점점 한국에서 성공한다는 것에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는 이민을 생각하는 경향이 꽤 짙어지고 있다. 20대 청년들의 이민 열풍은 단순히 한국 내에서 과열 경쟁주의와 성공에 대한 집착 주의, 부족한 복지제도에 대한 회의만이 아니라 이런 부분도 작용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을 강요당한다. 만약 경쟁을 펼치는 무대가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출발선은 학연 지연 혈연과 계층 수준에 따라 너무 판이하다.
그러니 어찌 한국에서 삶의 질을 높이면서 살 수 있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대 청년 사이에서 '돈만 있으면 이민 간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몇 번이나 비리 척결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자신부터 연고주의에 물들어 있어 그런 말을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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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연고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도 지역주의는 강하게 작용하지만, 점점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지역주의가 옅어지면서 달라지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건 상당히 희망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은 낙관하기에 부족한 부분도 많다.
왜냐하면, 연고주의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 즉, 부모 세대로부터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세습 형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요즘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의 행동에 질색하더라도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부분을 다 고칠 수 없는 것처럼, 어떻게 되더라도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학연, 지연, 혈연이 얽힌 한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없다. 몇백 년을 지속해온 이 연고주의를 몇십 년을 걸쳐 조금씩 옅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인류 역사상 한 번도 평등했던 적이 없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그렇게 자신의 가까운 사람부터 챙기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재능을 가진 인재가 계파 갈등에 휩싸여 재능을 펼칠 수 없게 되는 일이 없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내 자녀를 가르칠 때 '사욕을 먼저 챙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일밖에 없다. 아니면, 이민 세대처럼 이민을 떠나서 좀 더 평등한 환경에서 삶을 살거나….
그것이 연고주의로 썩어가는 한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런 환경에 순응하여 더 나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님 세대처럼 우리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연고주의 격파를 논하기에 우리 한 사람은 너무 나약하니까. 그게 우리 한국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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