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심리학
- 문화/독서와 기록
- 2015. 4. 17. 07:30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우리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이 맺는 인간관계에서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아마 믿었던 친구의 배신, 다수의 폭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건 타인에게서 '미움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정말 갖은 애를 쓰기 마련이니까.
가까운 예로 우리 학교에서 자주 문제가 되는 '학교 폭력'을 예로 들어보자. 보통 학교 폭력은 A라는 학생이 B라는 학생에게 치는 작은 장난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B라는 학생은 A라는 학생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거나 장난에 맞춰주는데, 이런 관계가 지속하면 더 정도가 심해져 폭력이 된다.
그래서 학교 폭력 가해자는 '그냥 장난이었어요.'이라는 웃으면서 변명하고, 자신의 잘못을 자각하지도 못한다. 또한, 학교 폭력 피해자도 이후 더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다른 사람들에게) 혼자 끙끙 앓으며 괴로워하다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해버리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미움받는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다.
한 번 타인에게 이 정도의 미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면, 그 경험은 정말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피해자를 괴롭히는 트라우마가 된다. 나도 지금까지 그렇다. 내가 오프라인에서 인간관계에 깊숙이 발을 들이지 않는 이유는 혹시 미움받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정말 크기 때문이다. (불신도.)
이런 삶을 내가 살고 있기 때문일까? 우연히 알게 된 책 <미움받을 용기>는 제목부터 상당히 마음에 끌렸었다. 평범하게 심리학을 다루는 책이지만, 도대체 '미움받을 용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만약, 내가 미움받을 용기로 한 발짝 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미움받을 용기, ⓒ노지
책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면서 나는 '와, 여기서 등장하는 청년은 마치 나 같아.'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말 놀랐었다. 그 덕분에 나는 청년의 시선에 거의 나를 겹쳐서 책의 내용에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놀랐던 대화의 내용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철학자 : 자네는 단점만 보여서 좀체 자신을 좋아할 수 없다고 했어.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이렇게 성격이 꼬인 남자하고 사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라고. 이제는 알았겠지. 왜 자네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단점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청년 : 무슨 뜻인가요?
철학자 : 적면공포증에 걸린 여학행이 좋아하는 남자에게 차이는 것을 두려워하듯 자네는 남에게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그런 상황에 휘말리느니 처음부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세. 즉 자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네.
청년 : ……. (페이지 79)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말 놀랐었다. 정말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확실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거기에는 잠재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이라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다른 사람과 얽히다 끙끙 앓은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어떤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는 것을 싫어했다. 애초에 스스로 '사람이 불편하다.'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기에 더 그런 자리를 피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완전히 청년의 입장이 되어 철학자의 이야기에 반박하는 자세로 읽게 되었다.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청년은 철학자와 이야기(언쟁)를 나누면서 내 삶을 사는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들을 하나둘 배우게 된다. 나도 청년이 시선을 따라 철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철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읽었다.
철학자 : 자네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네. 나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청년 : 아니, 그건 너무 이기적인 논리예요. 나만 생각하고 독선적으로 살라는 말씀입니까?
철학자 : 유대교 교리를 보면 이런 말이 있네. "내가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으면, 대체 누가 나를 위해 살아준단 말인가?" 자네는 자네만의 인생을 살고 있어. 누구를 위해 사느냐고 하면 당연히 자네를 위해 살아야겠지. 만약 자네가 자네를 위해 살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자네의 인생을 살아준다는 말인가? 우리는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사는 거라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될 이유가 없지. (페이지 154)
윗글은 정말 공감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불행한가? 내 삶을 내 마음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내 시간을 내가 보내고 싶은 대로 보내지 못하는 건 정말 평생 불행하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은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건 꼭 <미움받을 용기>이라는 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시중에 널려 있는 많은 자기계발서, 때때로 소설과 인문학과 에세이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강연100도씨 같은 강연에서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그런 삶을 선택하지 못한다. 언제나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내 시간을 포기하고,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언제나 여러 가지 변명을 붙이면서 용기없는 삶의 방식을 두둔한다. 그렇지 않은가?
책 <미움받을 용기>는 그런 우리가 철학자에게서 듣는 부드러운 질책이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책에서 '질문자'로 등장하는 청년은 나와 다른 남이 아니라 바로 '나'이기에 나는 책을 더 깊이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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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움받을 용기>는 제목 그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는 책이었다. 그리고 책의 결론에 도달할 때 책을 통해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결론인 "'지금, 여기' 찰나를 살아야 한다."는 주제를 우리는 만날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최선을 다해서 살 수밖에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미래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는 일이 바로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는 일이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일이면 과거일 오늘이 기적이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이 인생을 말할 때 한 개의 선으로 말한다. 지금부터 20년 후의 미래를 준비해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 '찰나'가 바로 우리의 인생이다. 책 <미움받을 용기>는 그 주제를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말해주고,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주변이 있는 많은 사람이 그래도 보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일단 오늘을 살면 그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닐까? 행복을 우리가 손에 쥐지 못하는 것도 지금 찰나를 살지 않고, 지나간 과거와 머나먼 미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결코 나아질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말은 다소 자기중심적인 발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이 시간 동안 우두커니 가만히 앉아서 이미 지니간 과거에만 붙잡혀 있는 것도, 언제 어떻게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살자.
'미움받을 용기'는 바로 그것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미움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를 위해 내 인생을 사는 것. 인생은 오늘이 즐거워야 내일도 즐겁지 않겠는가? 어제 힘들었다고 계속 기죽어 있지 말고, 하나의 경험으로 삼아 오늘을 더 즐기면 된다. 그게 용기라고 생각한다.
청년 : 그러면 인생이 어떤 모습이라는 겁니까?
철학자 : 선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분필로 그어진 실선을 확댁경으로 보면, 선이라고 여겨진 것이 실은 연속된 작은 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선처럼 보이는 삶은 점의 연속, 다시 말해 인생이란 찰나(순간)의 연속이라네.
청년 : 찰나의 연속이라고요?
철학자 : 그래. '지금'이라는 찰나의 연속이지.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어. 우리의 삶이란 찰나 안에서만 존재한다네. 이걸 알지 못하는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선'의 인생을 강요하지. 좋은 대학, 대기업, 안정된 가정 등 이런 선로를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인생이라면서. 그래도 인생은 선이 아니라네. (페이지 301)
철학자 : 우리는 좀 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야 하네.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네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희미한 빛 속에서 살고 있다는 증거일세.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지 간에 자네의 '지금, 여기' 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미래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여기'에서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고 있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걸세. (페이지 308)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작은 인연을 끌어당겨 지금 이 순간부터 내 삶을 살 수 있는 작은 지혜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책은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고, 청년의 시선으로 철학자와 대립하면서 하나둘 우리가 가진 질문과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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