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교육가 홍순재, 당신이 은인입니다.
- 시사/학교와 교육
- 2012. 9. 3. 07:34
창업교육가 홍순재, 제가 재기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작은 따뜻한 관심이었습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나쁜 길을 향해 걸어갈 때도 있고― 앞을 향해 달리다가 넘어져 끝없이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경험을 하였거나 지금 막연히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내가 '꿈'과 '살 의지'를 찾아서 책을 뒤져보았던 것처럼….
어른들은 곧잘 '젊어서 고생해야 잘 산다.'는 말을 하곤 한다. 사실,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한 때는 정말 고생한 사람이었을 것이고― 지금도 어쩌면 말하지 못하는…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그 '고생'이라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아프게 다가온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하여 자살까지 시도하는 사람들도 적잖고, 마음부터 무너져버리면서― '묻지마 범죄' 같은 정말 되돌릴 수 없는 그런 선택지를 선택해버리는 예도 빈번히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오늘, 나는 그렇게 그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 너무도 힘들어하고 있는― 정말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을 이들에게 한 명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홍순재' 씨는 정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그 나락 속에서 '희망'과 '배려', '관심'으로 재기에 성공한 사람이다.
홍순재, ⓒKBS1 강연100℃
사람은 아무것도 없을 때는,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잔뜩 가지고 있었다가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마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그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가진 사람이 한 번 모든 것을 잃고, 넘어지게 된다면― 그 재기는 더 어렵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나와 같은 대학생은 지금도 경험하고 있겠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오른 성적이 혹여나 내려가지 않을까 아등바등했던 경험을…. 우리는 한 번 성적이 크게 오르면, 그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서 보통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다. 혹여나 '성적이 내려가지 않을까?'는 걱정 때문에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러다 성적이 내려가게 되면, 도무지 그 상실감은 이로 표현할 수 없다. 성적이 내려가게 되면,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의 눈치도 보이고, 계속해서 자신을 책망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금 예가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홍순재 씨는 바로 그 같은 경험을 인생에서 더 크게 하였었다. 처음, 그의 집은 정말 부유했던 집이었지만… 아버지의 실패로 완전히 집이 기울어지게 되었다. 원래 200평 정도의 집에서 살았는데, 반지하 전세방으로 옮겨서 살아야 했었으니… 도대체 얼마나 그 낙차가 심했는지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홍순재, ⓒKBS1 강연100℃
홍순재 씨는 그런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로 가난을 원망하여 철없는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문득 집에 쌀이 없어서 어머니께 돈을 받아 빵을 사려고 했었는데… 어머니의 지갑에는 달랑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었다.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시는 것을 보고, 그는 어긋날 길에서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돌아왔다.
고등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며 학업을 마쳤고, 무사히 대학도 졸업할 수 있었다. 군 제대 이후 여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게 되면서,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악세사리 노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근로 장학생으로 있었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제법 많은 수익을 올렸으며, 노점상의 단속이 시작되자― 악세사리 가게를 차리게 되었다. 그러다 늘 현금으로 계산하던 단골손님의 권유로 부동산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는 정말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고 한다. 그는 이 당시에 차에 현금 1억이 항상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벌다가 친구의 제안으로 아파트 시행산업을 하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때를 맞춰서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차에 현금 1억을 들고 다니던 정도의 그가 한순간에 전 재산을 다 처분하고도 빚이 5억 원이 생긴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노숙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의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초월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니까. 우리가 쉽게 '그 정도야 뭐…'라는 말을 결코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마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다시 재도전하자!'라는 생각보다 '아, 이제 더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으로 생각한다.
홍순재, ⓒKBS1 강연100℃
그렇게 노숙 생활을 하면서 절망에 빠져있던 그를 구해준 것은 '돈'이 아니었다. 그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그에게 가져다 준 것은 그가 열흘 동안 아무것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있을 때, 고물을 줍는 지적 장애인이 그에게 내민 빵과 우유였다.
그 순간에 그는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졌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잘 나갈 때는 그런 사람을 사람 취급도 안 하고, 정말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을 도와준다는 사실에 정말 많은 후회를 하였다고 한다. '내가 정말 헛살았구나.', '내가 왜 돈에 그렇게 집착하였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다시 용기를 얻었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를 찾아가 통곡하며 사죄의 말씀을 드렸고… 그 이후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으로 창업에 성공하여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그는 자기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고,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 세상은 정말 많이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정말 힘들게 살고 있고, 많은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고,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는데, 여러분이 그분들에게 작지만… 정말 따뜻한 은인이 돼주신다면, 저같이 이렇게 다시 재기에 성공해서 여러분 앞에서 다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은인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홍순재 씨의 강연은 웃으면서, 울면서 들을 수 있었던 강연이었다. 그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그의 아픔과 다른 사람들이 꼭 배웠으면 하는 그 마음이 절실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나는 비록 강의는 듣지 못했지만, 지금 나의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그가 말했던 것을 명심해주었으면 한다.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막대한 돈이나 지나친 관심이 아니다. 그저 그 축져진 어깨를 다독여주며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관심과 홍순재 씨에게 빵과 우유를 건네줬었던 고물을 줍던 지적 장애인이 행했던 그런 따뜻한 배려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니까.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실들이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도리를 가르치지 않고, 친구와 경쟁하도록 하고― 끊임없이 다투도록 하여 냉혈한, 공부하는 기계로 만드는 그런 비인간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는 데 필요한 것은 크지 않다. 그저 작은 관심만 있으면, 변화의 싹은 틀 것이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을 것이다.
|
이 글을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