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달수는 정말 가해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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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로 확대되는 미투 운동, 고발 운동이 증오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연거푸 하고, 주말을 맞아 여성들이 미투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광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한 미투 운동은 이제 범 차원적인 운동으로 번지고 있는데, 문화 예술계를 넘어 사회 각 분야로로 뻗어 나가며 범위가 커지고 있다.


 어제 아침 뉴스를 볼 때는 이제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당한 성추행을 고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교육 각 계층도 긴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시 권력형 범죄가 오랫동안 묵인되어 온 한국 사회는 문제가 한 번 터지면 봇물 터지듯이 사건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학교 폭력 사건도 똑같았다.


 그런데 살짝 개운치 않은 모습도 조금씩 보인다. 역시 인터넷을 들끓게 할 정도로 많은 관심이 쏠리다 보니 확실하지 않거나 논란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강철비>와 <변호인> 등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 곽도원이 한차례 유언비어로 성추행 의혹을 받은 게 그 예다.


 당시 곽도원은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어 논란이 되자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게시자는 슬그머니 글을 삭제했다. 이 사건이 있은 직후 ‘미투 운동이 악질적인 루머를 만드는 데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식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때 배우 곽도원과 마찬가지로 큰 논란을 겪는 인물이 한 명이 집중 조명을 받았다.


 바로, 배우 오달수다.



 배우 오달수는 영화를 모르는 사람도 아는 이름으로, 그가 출연한 영화는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욱이 그는 영화 내에서 뛰어난 연기만 아니라 평소 인간성이 좋은 배우로 평가를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오달수가 성추행 사건에 서게 된 건 충격이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오달수 측이 전한 “성추행 결코 사실 아니다.”라는 입장에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모습은 평소 오달수가 보여준 모습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소식을 접하더라도 ‘설마?’라며 걱정했던 증거다. 하지만 오달수의 입장 표명 이후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주장하며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오달수 측은 재차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여론은 오달수가 거짓 변명을 했다고 판단해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오달수가?’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었다. 그만큼 ‘오달수’라는 배우가 가진 영향력은 사람들에게 컸던 거다.


 여론이 오달수를 몰아붙이며 또 한 번 사과문을 받아냈지만, 한 번 뜨겁게 달궈진 냄비 같은 여론은 오달수의 두 번째 사과문에도 진정성이 없다며 열심히 오달수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천만 영화배우 오달수는 이제 두 번 다시 영화계에 발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끝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여론은 다시 한번 더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달수의 전 매니저라는 인물이 오달수를 변호하는 글을 써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거다. 여전히 여론은 ‘오달수 자신이 시인했으니 범죄가 맞다.’라며 전 매니저의 글을 일축했지만, 또 한 번 오달수의 35년 친구라는 사람의 글이 올라와 판을 흔들었다.



 현재 배우 오달수의 성추행 사건은 진실 공방이 벌어지며 서서히 여론이 나누어지고 있다. 만약 다른 배우라면 이 정도의 논란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독 오달수가 이렇게 여론의 대립을 받는 이유는 그가 천만 배우인 동시에 평소 행실이 절대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 지지를 받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오달수는 정말 가해자인 걸까?


 현재 여론이 오달수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평소 오달수가 가진 이미지의 영향력이 크다. 평소 그가 악성 루머가 자주 도는 삼류 배우였다면 이런 논란이 일 필요 없이 ‘가해자’라는 이름이 착 붙는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달수는 그런 삼류 배우가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였다.


 배우 오달수의 상황을 보면 문득 영화 <골든 슬럼버>의 강동원이 연기한 ‘김건우’라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김건우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착하게 사는 인물이었는데, 그는 정치 공작에 의해 한순간에 ‘명예시민’에서 ‘대통령 후보 암살범’으로 몰려 쫓기게 된다.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론은 ‘명예시민’이라는 착한 이미지가 있던 인물이 ‘대통령 후보 암살범’이 되자 아주 매몰차게 그를 비난했다. 평소 가진 믿음이 깨진 배신감에 사람들은 혀를 차며 김건우를 욕했고, 김건우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준 건 그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건우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며 믿었고, 건우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마치 지금의 오달수를 보는 것 같다. 현재 오달수를 바라보며 시민들은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며 망설이고 있고, 주변에서도 조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가운데 친구와 지인들이 앞으로 나서고 있다.



 이건 어디까지 이미지의 문제다. 배우 오달수가 평소 가진 이미지와 미투 운동을 통해 지적된 오달수의 이미지가 충돌하며 갖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오달수에 관한 보도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또한 ‘배신감’이라는 치명적인 자극제와 ‘가해자와 2차 가해’라는 아주 좋은 밑밥이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둘 중 누구의 편을 드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르는 법이라 경솔하게 앞으로 나섰다가는 금방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오달수의 친구는 앞으로 나섰다. 덕분에 대중은 댓글을 통해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며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배우 오달수는 정말 가해자인 걸까?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가 없다. 어떤 인물처럼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의 눈물 어린 간절한 호소뿐이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면 오달수는 나쁜 사람이지만,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오달수는 아직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일 뿐이다. 미투 운동은 절대 증오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때 대학교수님이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평소 친구와 살갑게 지내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시험을 치는 날에 감독을 하다 그 여학생이 시험지를 빈칸으로 채운 것을 보았다고 한다. “좀 열심히 하지.”라며 어깨를 툭툭 쳤는데, 그 여학생이 “선생님! 왜 성추행해요?”라며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고 한다.


 대학교수님은 이 사례를 말하여 ‘이렇게 교사와 제자의 정은 끝났다.’라며 안타까운 한숨을 쉬셨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결국에는 해석의 문제다. 당사자 간에 친근한 감정이 평소에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오달수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미투 운동은 더욱 커지며 곳곳에서 혼자 끙끙 앓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들의 용기를 나는 절대 폄하할 생각이 없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여론이 미투 운동을 가십거리로 이용해 악질적으로 증오를 부추기는 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건 본말전도다.


 사건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 이 때에, 과연 배우 오달수 사건은 어떻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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